Honey_licious worlD

한국가기 6일 전. D-day 세는 거 싫은데.

내 마음 속 양파 한 껍질 한 껍질 벗겨낸다. 정말 한국 가기 싫으니? 아니. 가고 싶다. 내 나라. 그러다가도 갑자기 확 마음이 바뀌어선 가기 싫다.

그래, 그냥 이대로 있고 싶다. 왜 이 곳이 peaceful 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요즘. 가족과 그렇게 붙어 있고 싶고, 보고 싶다가도 한국사회에서 오는 압박감이 날 스스로 존재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것만 같아 괴로움이 몰려온다. 그러나 내 안에 가장 중심에 계신 분은 평안함과 고요함 속에 나를 거하게 하신다. 다시금.

싱숭생숭하지만 평안하려고 애쓰고 있다. 내 머릿 속은 취업에 관련된 여러 불안한 생각들로 가득차면서도 그럼에도 내가 낙망하지 아니함은 하나님께서 모든 걸 주관하신다는 믿음에 있다. 내 믿음이 크건 작건 그 분에게 모든 게 달려있다는 걸 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묻는다. '싱숭생숭하지?' 그렇다. 아, 이 때 마침 샘킴의 mama don't worry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온다. 아련아련.

사랑한다는 메시지에 나도 사랑한다고 보내온 엄마의 문자. 이젠 엄마를 직접 볼 수가 있고, 부둥켜 안을 수 있는 날이 코 앞이다. 코 앞인데..

요즘 정말 정말 갑자기 몇 일 동안 취업이란 두 단어가 내 뇌리를 스치며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를 준다. 아마도 얼떨결에 받아든 이력서 때문일거다.

현실을 직시해야하지만 오랫동안 외면했던 스펙이란 두 글자가 갑자기 다시 내 발 앞에 두둥하고 자기 자리를 되찾아와 공갈협박을 하는 느낌이랄까?



'점수 좀 올려야지?'

'한국에선 토익 점수 없음 안 돼'

'오픽 점수도 높여야지?'

'부지런해져야지?'

'컴퓨터 자격증은?'

'너 나이 27임'


온갖 부정적인 사실들이 내 눈 앞에 들이닥친다.

관점을 달리할 때.이다. 멀리보자. 머얼리. 내 모토 Slowly but Surely.



10월 6일

코워커 멕시칸 앤디와 콜롬비안 칼로스를 만났다. 진짜 너무 좋은 친구들. 남자들에게 이렇게 사랑받는 여사친이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나를 많이 우쭈쭈해주었던 친구들. 사실 이들과 한 달, 아니 한 달이 뭐야. 두 달 정도 전부터 계속 '놀자, 놀자' 했었는데 취소되고, 미루고 그렇게 결국 가기 전이 다 되어서야 보게 되었다.

내가 그들을 각각 처음 본 때가 생각난다. 앤디는 처음 자기소개를 하고 몇 시간 일했을 뿐인데 너무 착하고 재밌는 친구라는 걸 느꼈고, 우린 그렇게 몇 일 만에

"So rude!!"를 서로 외쳐가며 친해져 있었다. 아마 뜬금없이 그리워질 순간이 있다면 덩치와는 상반된 앤디의 하이톤 목소리로 'You are so rude! Always!'라는 소리를 들었던 때였을 것이다. 나도 그 친구에게, 그 친구 역시 나에게 서로 그렇게 태클을 걸면서도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다.


콜롬비안 칼로스를 처음 봤던 건 스타벅스 앞 쪽에 커다란 투명창 앞 테이블에서 칼로스1(매니저)과 앉아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때 였다. 그 때, 솔직히 난 위기감을 느꼈다. '젠장, 왜 내가 가기 3개월이 넘게 남았는데 새로운 사람을 뽑지?' 그런데 칼로스가 투입되기 전에 뜬금없이 앤디가 먼저 왔고 그 둘이 거의 동시에 들어오고 또 이어서 프렌치 스테판이 들어오고. 내 입지가 생기나 했더니 그대로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매니저님의 실수로(작은 규모의 스타벅스라 사람이 필요 없었는데 자꾸 고용은 하니까 코워커들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근데 입으론 이미 뱉었고, 주워담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내 밑으로 새로 3명이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결국 난 워홀 내내 정기적으로 30~40시간을 쭉 받아본 적이 없다. 가난하게 워홀 생활을 했다. 나만이 아니라 당연히 나와 함께 일하는 코워커들(내 밑으로) 전부가 조금씩 조금씩 선배들이 주 40을 받고난 후의 쉬프트를 받았으니 말이다.


다시 그 친구들 얘기로 돌아가서, 한 일주일 지났을까. 내가 쉬프트를 더 못 받을지언정, 정말 정말 좋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게 된 사실에 그냥 기뻤다. 내가 해외에 나와 생활하며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은 딱 저런 친구들이었다. 유쾌한 친구들. 일은 못 해도, 게을리 해도. 같이 있을 때 즐겁고 흥겹고 재밌는 그런 친구들. 인생 얘기를 훅훅 던져가며 할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난 너네같은 애들을 여기서 만나고 싶었다고. 다행이라고. 그 말을 정말 같이 일한 지 얼마 안되서 말해줬었다.



이들의 상황은 나와 다르다.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긴 하지만 집값이나 학비는 부모님께 받아 쓴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힘듦이 분명 있다.

어제 대화를 나누며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건 해외에서 학교 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는 것. 그러나 그만큼의 성장도 동반된다.

그냥 단순히 일상회화가 아닌 아카데믹 단어들을 공부해야 하고, 교수님들은 영상 하나씩 띡띡 보내주며 바로 시험평가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시스템이라고 하더라. 그건 내 생각 밖이었다. 프랙티컬한 건 맞지만, 어쨌든 대학 졸업장 하나 따기 참 어렵다고.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친구들에겐 그걸 따라잡기가.......휴. 말 다했지. 생활영어도 알아듣기 이렇게 힘든데, 교수님들의 전공수업은 어떨런지.. 새삼 한국에서 대학다닐 때 중국유학생들이 한국어 잘 못 알아듣고 자기들끼리만 어울렸던 것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확실히 한국처럼 고등학교 때 시험을 쳐서 대학가기 엄청 어렵고 졸업하긴 쉬운 그런 시스템은 아니다. 오히려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가 어렵다더라. 또 대학 코스를 신청하고도 신청인원이 차면 못 넘어가고 다음을 기다려야하고.

자세한 이야기는 그들의 인터뷰를 따로 포스팅할 때 하겠지만.. 해외에서 공부한다고 해서 마냥 '아 부러워!'할 건 아니라는 점. 물론 부럽지만..

얼마 전 가족같은 중국인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었는데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려고 갔지만 지금 나와 같이 굉장히 길을 잃은 듯한 좌절감을 느낀다고.

더 최악인 건 친구도 없고, 와이파이도 잘 안된다는 것.이라며 우울해하는 소식을 전해왔다. 예전같으면 넌 그래도 은수저 정도 되잖니.라고 말하겠지만 누구나 자기 시점에서 어려운 상황이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해외에서 외롭게 생활해봤을지라도 또 다른 타지에 가서 새롭게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다른 언어를 쓰고..

지치는 순간이 꽤 많이 찾아온다는 것.



또 하나는 그럼에도 우리 앞에 놓여진 상황들이 참 감사하게도 외국에서의 생활. 아무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해외생활이라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가 여기서 보내는 시간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인데 우리는 종종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왜 와있는지, 처음에 왜 오려고 했는지 그런 것들을 너무 쉽게 잊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라는 말에 100퍼센트 순응할 수 밖에 없으리만큼 빨리 적응해서 그 소중함을 잊는다고.

그러면서 내가 여기서 하니 너를 만난 것도 여기가 아니었으면 안되었을 소중한 만남이고. 우리가 같이 일하게 된 것도 그렇다고. 맞는 말이다.






10월 7일


캐나다워홀카페를 통해 만나 알게 된 진아를 만났다. 윗 글에 이어서, 내가 밴쿠버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또 핸드폰요금을 받기 위해 이 워홀생활을 기억하기 위해 꾸준하게 글을 쓰지 않았다면 못 만났을 인연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진짜 감사한 인연이다. 게다가 하나님으로 이어진 우리는.... 사실 딱 2번 만났지만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처음 만나자마자 정말 많은 정보도 없이 만났지만 2-3시간동안 수다를 마구 떨다보니 굉장히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란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고 계속해서 '나도!!!'를 외치는 대화를 이어가게 되었다. 정말 미안하게 4달 전 그 날 진아가 처음 밴쿠버 땅을 밟았을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가 면목없이 또 떠날 때가 되어서야 연락을 했다. 환절기라 감기를 앓았다는 진아는 그래도 많이 평안하고 행복해보였다.

캐나다에 와서 내 신앙은 바닥을 쳤었는데 이 친구의 신앙은 점점 올라가는 게 대화를 하면서 강하게 느껴졌고, 내가 옛날에 제자훈련을 받고 순장이 되었을 그 시기가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교회 중심으로 쭉쭉 들어가고 있었을 그 시기.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자기의 살아있음을 또 보여주신다.


우리가 나눈 대화 중 하나는 워홀러들이라면 하나같이 다 느꼈을 부담감에 대한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이제 영어 좀 하겠네?'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

영어를 1년동안 집중해서 공부했기에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와서 가차없이 깨지고 말은 통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딱 기본만 할 수 있는 정도구나. 하며 좌절했고, 그 이후로 억지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게 되었던 나는 어느새 저 부담을 조금 내려놓았었다. 한국에 들어가면 또 압박감이 느껴지겠지만 그것 역시 내 선택이고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겠지. 그러면서 앤디랑 칼로스와 나누던 이야기를 했다. 각자 삶이 너무나 다른 만큼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고 만나고 했던 모든 그 순간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걸 성공이다, 실패다 말 할 수 없는 거라고. 자기 기준에서 Okay이면 그걸로 된 거라고. 또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고 해도 그 전체가 실패로 규정되는 건 아니라는.. 진아와의 대화를 통해선 그런 생각들이 계속 들었다.


아무리 울고 실패하고 스스로 어두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을 했지만, 끝에 와서 돌아보니 이 정도 어두운 시간이었어서 다행이다,라는 이상한 안도감까지 드는  건 뭘까. 무엇보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소중한 무언가를 일깨워주는 1년을 보낸 것에 그냥 만족하면 안될까? 물 흐르듯 그렇게.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그 테두리 안에서 만족하는 법 역시 배워야 한다.


친구는 한국 사회가 되게 재밌다고 그런 이야길 했다. 왜냐고 물었다. 그 조그만 나라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붙어 사는 것도 신기하다고 했다.

멀리 나와야만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때 갑자기 카페 안에서 굉장히 큰 소리를 내며 다니는 아줌마가 책상을 막 끌어와 붙여서 앉았다.

친구가 중국인 아니면 한국인이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갑자기 한국말을 내뱉으시는 아주머니. 저게 잘못 됐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이젠 우리에게 그런 감이 생긴 것이다. 어디에서 태어나 자랐는지에 따라 행동습관이 티가 나는 것. 그게 그 종족의 특징이 되는 것. 

밴쿠버는 그렇게 정말 다양한 곳에서 자란 사람들이 모여 또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가고 있다. 늘 말하지만 정말 주토피아같은 곳이다.

초기만 해도 그게 그렇게 별로였고, 한인하고는 멀리 떨어져 지내고 싶다란 생각이 강했는데 이젠 아니다. 여기서만 만나질 수 있는 모든 인연에 눈을 초롱초롱 뜨고 무언가 배우고 느끼는 것에 더 에너지를 쏟는게 맞다. 그런 것들이 자연스러운 사회가 바로 이 곳이니까.



또 우리는 새로운 나라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전 날 라틴소울이 가득한 앤디와 칼로스를 만나서 자꾸 그 친구들 얘기를 하게 되는데

진아 역시 스페인 쪽으로 가서 그 마인드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아, 까먹기 전에 또 적어본다.

앤디와 칼로스는 정말 대학생활하면서 초반에 많이 외로워했던 것 같다. 어학원에 가서 생활할 때와는 확실히 다른 걸 말하고 싶어했다.

외국이고, 다양한 사람들이 그 외국을 즐기기 위해 온 같은 이유가 있는 어학원 사람들 사이에선 외로움을 느끼기보다 그들과 어울리기에 바빴다고.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캐내디언의 친절한 겉모습 뒤에 있는 매몰참을 보게 되고,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인들끼리 또 그 안에 세분화되어 한국인은 한국인끼리, 일본인은 일본인끼리, 중국인은 중국인끼리, 라틴계 역시 라틴계끼리 그렇게 나눠지는 걸 보게 되었다고.

그리고 상상하고는 많이 다른 걸 깨달았다고 한다. 학교에 소속되지 않는 나 역시 느끼는데 그 안에선 얼마나 더 외로울까. 성격이 소심하다면 또 잘 적응하지 못할 수 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자기들은 캐내디언이든,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친구면 친구인거고. 다같이 어울리고 싶어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뼛속부터 있다고. 근데 그 문화 역시 라틴계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다른 건 인정하지만 여튼 캐나다라고 해서 모든 캐내디언들이 또 이 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포용성과 수용성을 갖고 깊게 연결되는 건 아니라는 점.





아, 또 하나 진아가 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가 시애틀을 가지 못하고 아마 남은 돈으로 사람들을 더 만나고, 선물을 사갈 것 같다고.. 그래도 내 마음 속엔 은근 여기까지 왔는데 미국을 못 가는게 후회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갖고 있는데 (사실은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ㅎㅎ) 시애틀 여행이 굉장히 좋았지만 그 이유는 같이 간 사람이랑 잘 맞았고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자기는 이제 정말 스스로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시간 외에는 혼자 여행가고 싶진 않다고.

알고 있지만 또 다시 꺠달음을 준 말이었다. 일이든, 내 삶이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하는 사람들에 따라 그 일이 싫어질 수도, 그 여행이 별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앤디와 칼로스, 또 진아와 한국가기 전에 만나 참 다행이다. 내 마음에 조금의 용기를 심어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다.

언젠가.. 다시 꼭 만나고 싶다. 그런 날이 꼭 오기를. 새삼 밴쿠버에 온 것에 감사....하게 된다. 그동안 내 잘못으로 인해 망쳐버린 날들이 많았다 생각했는데

그 와중에도 하나님은 이런 좋은 인연들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셨다. 결론은 다시,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끝!


 










 








2016.10.04



저녁 7시 반, 메인 스트릿 Cartems 도넛가게에 와있다.

뒤로는 아마추어싱어들의 라이브연주가 이어지고 있고 바로 내 시야 앞에 화분이 있어 감사한 밤이다.

어제는 게스트하우스 인연 민혜언니를 만나서 리치몬드에 다녀왔고, 오늘은 사실 리디아와 다나(스타벅스 인연)랑 밴쿠버 아트갤러리에 다녀오려했으나 가지 않았다. 리디아가 사정이 생겼고, 다나도 몸이 그냥 그렇다길래 나도 괜히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오늘도 NO PLAN.

대신 짐을 싸기 시작했고, 이민가방 하나를 한 시간만에 뚝딱 쌌다. 내 공간이었던 곳을 비워내고 다시 짐을 싸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짐을 싸려고 했을 때 한 달 전부터 엄청 요란을 떨었던 게 생각나는데, 다시 돌아갈 땐 하루 전까지는 싸지 않을 것 만 같이 그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돌아가기 싫은 걸까? 아니, 분명 돌아가고 싶다.

칼텀스의 넓은 창가 앞에 앉아있는데 뻥 뚫린 투명 창을 통해 보이는 도로가, 버스가, 내 귀에 들려오는 낯익은 언어들이 이제는 어느덧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는지 이상하지 않다. 처음엔 간판 하나, 표지판 하나 신기했던 것들이 이젠 일상의 조각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10월 13일이 떠나는 날이고, 10월 1일까지 스타벅스에서 일을 했다.(나름 빡센 일정이지만 파트타임이라 그렇게 쉬프트가 많지 않아 사실상 워킹/홀리데이의 균형을 제대로 이룰 수 있는 스케쥴이긴 했다.) 그리고 9월 17일부터 24일까지 총 8일을 오프로 내고 밴쿠버로 놀러온 사촌언니와 함께 밴쿠버탐방, 밴프여행을 했다. 떠나기 전에 나도 여행자의 자세로 충분히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날씨가 오락가락했지만 결국엔 하늘이 우리 편이 되어주어 맑은 밴프를 볼 수 있었고, 여름날의 밴프가 아닌 정말 초겨울같았지만 자연 그대로를 느끼며 그렇게 긴긴 시간동안 자동차여행은 해보지 못했어서 너무 좋았던 여행. 캐나다에서 스스로 많이 무너졌던 시간들이 많았는데 그 시간들에 대해 밴프여행은 '그래, 너 마지막까지 잘 있었다. 잘 버텼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달까. 속시원하게 뻥 뚫린 도로와 쌀쌀하지만 마치 달력표지사진이나 둘리와 빙하를 연상시키는 만년설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진 걸 보면서 그래도 잘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든 것이 다행이었다.



그리하여 떠나기 9일 전, 오늘의 지금, 아직 밴쿠버에서 잘 살아 숨쉬고 있다.

참, 또 하나의 근황이 있다. 밴프여행에 다녀온 이후로 친구가 추천해준  JTBC 드라마 '청춘시대'를 쭉 봤는데 어제 딱 마지막화까지 끝냈다.

중간에 강이나역을 맡은 류화영의 인터뷰를 살짝 훑어보고, 다시 드라마를 정주행하는데 옛날의 강이나와 이별하는 지금의 강이나를 표현한 수중촬영장면이 내 마음에 쿵-하고 와닿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다시 또 다시 힘을 내고 여기서의 생활들을 토대로 또 한국에서의 생활에 다시금 희망과 소망을 가져보려는 움직임이 꿈틀거린다. 한편으론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조선'이라 하는 그 세글자가 내 마음을 더 짓누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 사실이나 나를 만든 하나님은 '누가 너를 지었으냐'라고 물으신다. '누가 너의 입술을 만들었지?' '하나님이요,'

캐나다에 와서 첫 연애를 했지만 사실 내 스스로 고독한 느낌이 들 때마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의지하려 할 때도 내게 가장 의지가 된 건 코워커도, 남자친구도 아닌 하나님이다. 음.. 맞다. 캐나다에서 딱 하나 깨닫고 가는 건 난 형편없는 아이라는 것. 전제조건은 하나님이 없을 때의 나.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분이 나와 함께 한다면 다시 내 심장이 뛸 수 있고, 올바른 길로 끊임없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래, 딱 그거 하나다.

내가 내 것을 아까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직도 어리고, 베풀지 못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렸을 때 아, 이건 예수님이 나에게 해주신 사랑에 비하면 손톱만큼도 되지 않지,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행동은 마이너스였으나 믿음이 플러스로 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더 이상 행동이 마이너스이지 않고, 다시 신뢰하는 것. 내 앞 길을 예비하실 그 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그 길로 가야하는지... 잘 모르겠다.솔직히. 그런데 그냥 그런 친구의 기도가 떠오른다.

한국에 있든 캐나다에 가든 한 길 가운데 너와 함께하고 이끌거라는. 맞다. 그러니까 우울해지지 말자. '괜히' 우울해지지 말자. :-)



밴프 여행기를 쓰려고 카페에 왔는데 그냥 지금 내 감정과 상태를 줄줄 늘어쓰고 있다. 하핳헿헤..

이렇게 또 하루 저물어가고 내일은 한국 가기 8일 전이다. 참 이상하다. 이상도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

여튼 떠날 때가 다가올수록 딱 한 달만 더 있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또 한 달 더 있으면 뭐가 달라질건데? 그냥 가자- 라는 마음도 있고.

그냥 현실을 회피하고싶은 마음이다. 백퍼. 마주하자 그냥. 어차피 마주해야할 현실. :-> 당장 27살 10월, 취업시장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이 그렇게 기쁘지만은 않다. 두근두근 거리고 싶다. 그런 마음이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그렇게 세뇌시켜야지. 또 우연스러운 일들이 생기겠지.

언제나 인생은 그래왔으니까~ :) 한국가기 전 '언제오냐' '오면 바로 보자' '날짜 알려달라' 라는 친구들의 문자가 쇄도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말 웃긴게 여기서 친구를 그렇게 많이 사귀지 않았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어떻게 그렇게 친구를 많이도 사귀었을까 싶고, 고맙기도 하고. 근데 지금은 일단 모든 연락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잠수 타고싶........다..........










나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워홀생활을 하고 있다. 대형마트 안에 위치한 매장에 비해 규모가 작은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위치가 다운타운, 그것도 바다 근처에 있는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매장 자체가 그렇게 바쁜 곳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 '지루함'을 이겨내고자 영수증종이를 기계에서 쭉 뽑아서 계획, 목표, 소망 그런 것들을 적고는 한다.

일을 안 하고 뭐하냐 묻는다면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한국인으로써 열심히 할 만큼 했고, 그럼에도 시간이 남을 때 저런 것들을 한다고 말해드리고 싶다.

내가 적어내려간 리스트들은 개인적인 경험 + 누구나 캐나다에서 (밴쿠버에서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느낄 수 있는 것들이 합쳐진 거라고 보면 된다.

워홀을 생각중이거나, 그냥 타지 생활 또는 캐나다 생활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






- 교통수단이 다양하다. (무인지하철, 버스, 페리, 비행기, 헬기 등)

- 노약자, 아이 동반 부모님, 자전거 이용자 등 교통약자를 배려한 교통시스템이 잘 되어있고, 기사, 승객들 역시 배려가 돋보인다.

- 버스 기사분들의 서비스 마인드는 진짜 수준급이다. 마치 친절도 자격증이 있는 듯 정말 친절하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평소에 '엇! 친절한 기사분이다!'하고 알아챌 때가 많은데 밴쿠버에 살면서 훈훈한 장면을 버스 안에서 많이 마주했다.


- 피어싱은 그냥 일상..., 타투 역시 그냥 일상...,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학생은 좀 덜 하지만 케이스바이케이스.

-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거의 필수인 편이나 종종 인종차별이 일어나기도 한다.(개인적으로 겪어본 적은 없음)

- 나이차이가 있어도 친구라 말할 수 있고 대할 수 있다.

- 좋은 학력이 꼭 높은 보수를 뜻하지 않는다.


- 시민들이 홈리스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그들의 일상에 홈리스는 자연스럽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듯 해 보이지만 그게 홈리스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전혀지지하거나 단순히 '불쌍하다'라고만 보지는 않는다.

- 홈리스 얘기가 나오니 쭉 해보자면, 홈리스들이 진짜 진짜 많고 젊은 홈리스들도 많아서 밴쿠버에 처음와서 그게 가장 신기한 것 중 하나였다.


- 팁 문화가 있다. 워홀와서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다면 무조건 팁 잡 추천.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 내가 같은 조언을 받았을 때, 경험이 우선이고, 일단 일을 시작

  하는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덥석 물고 쭉 하다보니 스타벅스를 1년 하게 됨. 다시 돌아간다면 당연히 새로운 도전을 하겠지만, 지금은 이걸로 만족.)

- 하우스가 많다보니 정원을 가꾸는 것이 일상이고, 그 덕에 꽃이나 나무를 직접 사서 심는 경우도 많고, 관심도 많다.

  자연 속에 있어 자연을 더욱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배운 것 같다.


- 보스와 직원이 꽤 수평적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같이 시간을 내서 놀기도 하고, 공식자리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것 역시 경우에 따라 다름.

-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중요시 여기고, 긴 홀리데이를 정기적으로 갖는다. 그러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인지 이혼, 독신도 많은듯하다.


- 여름 빼고는 비가 주기적으로 계속 온다. 1년 살아보니 비오는 날씨 역시 이젠 '끄덕'이며 받아들여지는게 왠지 신기하고 좋다.


-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멋드러진 진짜 산과 바다, 자연이 존재한다.

- 개와 고양이를 산책시키고 돌보는 일, 유아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일이 많다.

- 개 종류가 크기도, 색깔도, 종도 지이이인짜 다양함.


- 패밀리닥터가 존재한다. Oh_Oh


- 밴쿠버쪽엔 특히 아시아인이 많다. 특히 중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밴쿠버 안에 작은 중국 리치몬드가 있다. 그냥 차이나타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중국의 한 마을에 온 것 같은 규모이다.


- 우리가 생각하는 알바 직종을 직업으로 10년 이상 갖고 그냥 편하게 살기도 한다. 최소임금+ 연차가 붙을수록 붙는 임금으로만으로도 살만하다.

- 대학을 가지 않는 건 둘째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카더라 통신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비율보단 확실히 높을듯)

- 마약에 빠진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 마리화나축제(4.19)때도 정말 어려보이는 학생들이 마리화나를 합법화시키고,

  그 축제 자체를 즐기려 마리화나 문양이 새겨진 티를 입고 버젓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 실제로 내 주위에도 마리화나를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했던 사람들, 하는 사람들)


- 게이(남자든, 여자든)가 살기 좋은 곳이다. 특히 밴쿠버가 그렇다고 들었다. 정말 상남자인데 나시, 핫팬츠, 핫핑크 핸드폰 케이스(분홍색은 여자, 파란색은 남자라고

  구분짓는 것 자체가 편견이지만 남녀가 다른 건 맞다. 그러나 '나시+핫팬츠+케이스+높은 톤의 목소리'의 손님을 막상 보면 속으로 무척 당황스럽다)를 지니고 있다.

  물론 게이가 절대 다~ 그렇다는건 아니다.

- 길거리에서 술 마시는게 불법이라 많은 이들이 스타벅스에서 컵을 받아가 바다 앞에서 맥주를 마시곤 한다.


-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고, 비건이 상대적으로 많다. 또한 비건 제품이 대중화 되어있고, 식재료 자체에 글루텐 프리, 비건 제품 등 다양한 표시가 되어있다.

  * 여기서 식재료란 과자, 빵, 피자, 흔한 식재료 등 먹을거라면 모든 다 속해있음을 뜻한다.

- 커피값이 저렴해서 유명한 카페를 가도 커피는 한국보다 훠얼씬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좀 더 여유롭게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이건 정말....의문, 알아봐야겠다.)

- 다양한 인종이 있다보니 음식점 역시 다양하다.

- 정말 여러 나라에서 모인 캐나다에 사는 사람들을 보며 이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친절함을 발견했다.

  정말 흥미로운 사실은 어디에서 왔든 그 나라 전체가 가진 분위기가 서로 다른 하나하나의 특징들을 품는 동시에 친절함을 주입시키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다.

  (어? 캐내디언은 친절하네? 나도 캐나다에 사는 사람으로써 친절해져야지~ 꼭 이런 식으로는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혹은 자연스러워보이지만

  여기선 그게 미덕이야~ 이런 느낌으로 알게모르게 주입되는 분위기. 좋은 게 좋은거라고, 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젠 How are you? 라고 그냥 여기선

  '보통의 안부인사'를 묻는 것에 좋지 않아도 티를 내지 않고, 말하기도 귀찮아서 I'm good.이라고 대충 말해버리는 그 마음도 공감한다.)


-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진정 그게 사람답게 인간관계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영어를 기본만 할 줄 안다해도 외로운 게

  타지생활이다. 물론 정말 능수능란하게, 또 성격이 엄청 활달하고, 깊은 관계를 잘 유지한다면 또 조금 다를지도. 아니, 그래도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

- 고로 영어를 더 확실히 배우고 싶다. 천천히라도..(ㅜㅜ), 실제로 여기서 학원에서만큼 공부한 적은 단 하루도 없다. 내 선택이었고, 그냥 물 흘러가듯 하루를

  흘려보낸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나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다. 후회는 남는다. 근데 그렇다고 남은 한 달을 갑자기 빡세게 영어공부를 하진 않을거다.

  대신 주변 사람들과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될 것이다.


- 절대 절대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싶어졌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10년 넘게 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나 배움이 있는 곳,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하고 싶다.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속에 의외로 지루함, 외로움, 아무것도 없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워홀을 통해 알았다.

 그러나 그 조차 '용기'였다는 것도 안다. 나는 캐나다에서 내 주변 소중했던 것들의 진짜 소중함. 바로 알지 못했던 것들의 바로 앎의 기간을 가졌다.

 내 20대 중에서도 사실 가장 오랜 기간 우울함을 겪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도 많았다. 그리고 마무리 시점에 있는 마지막 한 달을 잘 보내고

 한국에 가서는 진짜 진짜로 중심이 더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건강의 중요성도 정말 많이 깨달았다. 진짜 진짜.

 기록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건 다음 다음 포스팅 쯤으로 미루어두고 오늘은 이 쯤에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밴쿠버에 처음 오고 일주일정도가 지났을 쯤 비오는 날이 점점 늘어갔다. 레인쿠버란게 이런거구나,했더랬다.

그럼에도 빗 속을 뚫고 관광자모드로 다운타운 이곳저곳 내 기분과 컨디션 에 전혀 상관없이 시간을 공간으로 채우려던 때였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란 생각에 조금 허무하기도 하고, 하루를 끝내고는 그래도 오늘은 개스타운을 갔었지, 스탠리파크 앞까지 갔었지,하며 나를 위안했었다.

그리고 거의 1년이 지나 다시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비가 주룩주룩 시원하게 내리는 밤이 묘하다.

시원섭섭함, 여기까지 잘 왔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마음, 뭐 그런 것들이 얽히고 설킨 감정같은 것이다.

갑자기 저기 저쪽에 지난 번 인터뷰했던 미워하진 않지만 괜히 애꿏게 느껴지는 오늘도 허무맹랑한 조크(베이-백화점에 갔는데 50%할인을 한다해서 자기가 어떤 옷을 해프만큼 잘라 공짜로 얻었다는.. Half-Half조크 / 내일부터 빅세일이라니까 Sale과 Sail을 갖고 조크를 치는 그런 언어유희를 주로 하신다.)를 하고 가던 존 할아버지가 보인다. 비밀인데 사실 나는 할아버지가 무척 반갑다.

클로징시간이 10분 남았다. 열심히 모든 일을 끝낸 후 짬이나서 영수증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왠지 울컥..한다.

자정이 넘지도 않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아닌 노동의 현장 스타벅스 계산대 앞에서 감성팔이라니.. 주책이다.

그러나 나는 또 이런 내가 좋다.(뜬금) 캐나다, 사실 캐나다라는 세 단어보다 왠지 밴쿠버란 나라에 온 것 같은 건 내가 다른 곳에서 지내지 않아봤기 때문이고, 처음으로 타지에서 1년이란 긴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일거다.




애써 글을 정리하기보다 그냥 놔두련다. 어제는 피부 습진+생인손(손톱이나 발톱 옆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차고 부어오르는 병) 때문에 진짜 갑자기 급우울모드+고독모드+엄마보고싶음 모드에 빠졌었는데 오늘은 밴쿠버앓이 모드인가요. 사실 앓이를 할 만큼, 너무 너무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상하게 1년을 살았어도 잠깐 여행했던 곳보다 애착이 가진 않는다. 다시 한국에 가봐야 느껴지겠지만 오래 살아서 이미 익숙해져 그 감사함과 소중함을 잃은걸까. 여튼 진짜 진짜 오랜만에 일상글을 올리고 잠이나 자련다. 편하게 잡시다-!!!!!!!!!!



정체모를 피부염, 1년 스벅순이가 만든 새니타이저나 세제로 인한 만성 주부습진+생인손, 일주일 전부터인가 생긴 귓 속 물집(처음 보는 넌 뭐냐), 변비 등...... 이래저래 주인의 잘못된 관리때문에 너 몸이 고생이다. 아껴주고 사랑해줄게. ㅠ^ㅠ마음부터 편안하게 먹자. 하하하하하핳ㅎㅎ

잘하고 있다. 오늘도 수고했다. 토닥토닥♥ 










#Day271

 in Vancouver

Writer : Hani Kim









2016.07.11



오늘 나는 닉부이치치를 떠올렸다. 그 분을 떠올리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냥 도움을 청해오는 세이프웨이 손님이었다. 정확히 어떤 도움을 요청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가슴까지 오는 키(참고로 나는 159cm로 ) 정도의 핸섬한 외국인분이 "여기서 일하세요?"하고 말을 걸어오셨다.  죄송한데 전 스타벅스에서 일한다고 하니 그럼 괜찮다고 하면서 돌아서시는데  칼퇴하는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붙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기요- 그럼 제가 다른 코워커 불러드릴게요!"하고 매니저님을 불러드렸다. 일반 손님이었다면 '아.. 피곤한데...' 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데 두 팔이 없으시고, 다리도 반 정도만 있으신 많이 불편한 분이셨기에 나도 모르게 더 친절하게 대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내 눈에 몸 불편하신 분들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부끄럽지만 이 나라에서 그 분들을 어떻게 배려하는지 보고 있기에 나 역시 그 일원이 되어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매니저님을 불러드리고 내 사랑 홀푸즈마켓을 들리고 집으로 가려고 랍슨에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왠걸 그 아저씨가 또 계시는거다.

아마 쇼핑을 마치고 타신 듯 했다. 괜히 반가워서 아는 체 하고 싶었지만 그냥 가만히 아저씨를 주목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무거워보이는 백팩을 메고 계셨는데.... 정말 보고만 있어도 많이 먹먹해지는 장면을 눈 앞에서 봤다.

정말 닉부이치치가 내 눈 앞에 나타나 그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못됐지만..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얼마나 많은 불평을 하고 사는지 또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아주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정말 그러지 말아야지, 남이 어려운 걸 보고 내가 감사하고 내가 불평을 멈추는건 아직도 비성숙하다는 얘기밖에 더 되나-싶지만 나란 인간은 이기적이게도 그 분을 보며 얼마나 힘들까- 하니야 너 왜 그렇게 불평하며 사는거니-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거니- 다리 좀 아프다고, 서서 일한다고, 그렇게 여기 캐나다까지 너가 원해서 와놓고 또 불평하고 있니-하는 소리들이 계속 내 마음을 후벼팠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더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건 그 분을 보고서야 내가 정신차린다는 거다. 그리고 한 없이 감사한 건 서로가 서로를 보며 영감을 받게 살게 하신 것. 좋게 말하면 그렇다. 스스로 끊임없이 더 감사할 필요가 있다.  



아저씨는 폴더핸드폰을 어깨로 어떻게 잘 조절해서 귀와 완전히 100퍼센트 밀착시켜놓고 통화하셨다. 그리고는 불편한 이들을 위해 배려한 첫 번째 자리에 자기 백팩을 내려놓으려고 하셨다. 그 와중에 옆에 중국 아주머니께서 안쓰러우셨는지 한동안 보고 계시다가 도와주시려고 했지만 괜찮다고 하며 알아서 잘 하시고는 마침내 의자에 앉으셨다. 정말 서계신 키가 딱 의자만큼이었다. 그러고는 아주머니께 감사하다하고 How are you-로 시작되는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하셨다.어떤 사연 때문에 그렇게 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역시 쭉.. 다운타운 중앙에 도착할 때까지 그 분을 보며 한 동안 생각에 잠기다 내렸다. 나는 얼마나 그 분의 삶에 공감할 수 있을까. 감히..



나는 감히 닉부이치치의 일상적인 삶을 상상도 못했다. 너무 멋진 분이시고, 희망이 되어주고, 도전하시는 분이라는 걸 안다. 영상에서도 봤다. 감동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감동을 너무나 쉽게 잊는 나는 마치 교회 설교에서 아멘- 아멘-하고 눈물을 주룩 흘리고도.. 뒤 돌아서면 다른 삶을 살아버리는 나였다. 기억공간에 제한이 있기에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그렇게 내 삶으로 내가 살지 않으면 수 많은 배움들이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라는 사실에 공허해진다. 다시 힘을 내야겠다. 징얼징얼-하기보다는 다시 굳건히 일어나는 법을 또 연약함을 채워가야하는 부분에 있어서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그 연약함을 서로 감싸주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원이 되고 싶다. 그저 워홀러-라고 표현하기에는 여기서 맞이하는 공기 한 움큼, 물 소리 하나- 새로 맛 보는 스낵 한 줌, 버스킹하는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선율 하나 그 모든 게 '그냥'이지 않다는 걸 나도 그리고 당신도 알아야 한다.

내 어깨에 지금 달려있는 팔 두 개. 그리고 이 글을 쓸 수 있는 손가락의 근육, 신경, 세포. 여기까지 편하게 걸어온 두 다리.

그 모든 게 있음에 감사해야할 타이밍이 바로 우리의 젊은 일상적인 삶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어떤 이가 쓴 한국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는걸까요-하며 한국은 더 빠르고, 더 자동적인 그런 좋은 시설 속에서 살아감에도 늘 핵조선이라 하며 스스로의 국가를 비난하기 바쁜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사는지.. 그건 정말 외적인 것에만 문제가 있는건지 우리 안에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 올가두는 것이 문제가 있는건지. 그런 글이 이슈가 됐었다. 둘 다에 이유가 있고 전자에 더 큰 이유가 있을거라고 하는 그것 역시 어쩌면 내 마음이 궁핍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걸 바로 잡기 위해 스스로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국가의 희망이 될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국가까지도 안 간다. 내 삶의 희망 정도로 목표를 잡아도 충분하겠다. 한 명 한 명이 제대로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순간들을 만들어갈 때 그 공동체가 그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갈 테니까 말이다.



글을 마무리 하기 전에 도종환의 유명한 시 하나를 공유 하고 싶다.





같이의 가치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끝맺음이 되는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내가 그 아저씨를 보면서 느낀 건 내 스스로 감사가 부족하고 불평이 많다는 걸 인정하면서 나의 약함, 당신의 약함을 서로 보듬어가며 그렇게 세상을 지으신 분에 의해 세상이 바르게 흘러갈 수 있도록 잘 살아보자- 따뜻하게 살아보자-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 잊을까봐, 금방 잊고 세상에 물들어 내 이기심이 가득한 채로 세상을 살아갈까 두려워 다시 이 글을 쓴다. 그러니 다들 자신의 약함을 안고 오늘 하루도 힘내보자 yay :D!




 


















#Day261

 in Vancouver

Writer : Hani Kim





[2016.6.26 -잉글리시베이]



2016.07.01


캐나다 데이, 나의 하루

7월의 첫 날, 캐나다데이다. 캐나다 플레이스에서 열리는 캐나다데이 퍼레이드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니.....oTL..분명 아쉬울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솔직해지자.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일찍 일어나서 아침 10시부터 미리 축제 좀 즐기고 올 걸.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오전 11시에 일어나서 잠깐 유투브를 한 눈 팔렸다가 성경책을 폈다. 12시에 퀸엘리자베스파크에 올라 운동겸 영상을 찍었고 들어와서 아침식사를 했다.

참, 오늘은 호스트 매를린아주머니의 생신날이기도 했다. 아침에 얼굴을 보자마자 'Happy B-day!'라고 말씀드렸더니 고맙다하시며 아침 6시부터 일을 나가셨다가 점심에 들어오셔서 이제 첫 식사를 하신다며 배고프다하셨다. 오늘 생일인데 계획있으시냐 물어봤더니 nothing이라고 하셨다. 생일에 대한 감흥이 점점 줄어든다는 걸 너도 나이 먹어보면 알거라고. 맞는 말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쯤 특별하게 내가 태어난 것에 대해 축하해주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늘 내 하루를 돌아보고는 내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1-2년 전.. 아니 캐나다 오기 전만 해도 '후회없이 다 즐길거야!!!!!!'라고 하고 왔는데 '다리 아파, 어깨 쑤셔. 내일 새벽 출근이야. 사람이 무슨 저렇게 많아.'하고는 돌아선 것처럼 말이다.

몸이 늙으면서 내 생각도 그렇게 변해갈 수 있고, 생일이, 내가 또 뭐라고 호화롭게 축하받고 싶어하고 반드시 거하게 식사를 해야하며 선물을 꼭 받아야하는가. 그저 태어난 것에 대해 부모님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느때와 다르지 않게 식사 한 번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하게 된다.

 


실은 "하루종일 시간을 죽이고(말그대로 킬링타임) 내일 새벽 일을 나가기 위해 기다린 그런 느낌이 든다.' 라고 쓰려고 했다.

근데 지금은 불끈불끈!! 글을 쓸 기운이 생긴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왜? 4가지 이유가 있다.


1. 캐나다데이를 즐기기 위해 몰린 많은 인파 사이에서 축제를 즐기고싶지 않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2. 계획에도 없던 귀염둥이 동생들과의 페이스톡을 즐겼다.

3. 비와이라는 래퍼를 알게되고 우연히 그의 곡을 하나하나 들어보다가 하나님이 여전히 내 곁에, 내 위에, 내 뒤에 계시단 게 느껴져서 너무 감사했다.

  *듣고가는 센스* :->

  비와이 - Forever

  https://www.youtube.com/watch?v=jzZ8AB6qNzg

  비와이 - Thank god

  https://www.youtube.com/watch?v=U214ALFn1Xk

  비와이 - So what 

  https://www.youtube.com/watch?v=7igLOsWwm1g

4. 40불치사면 10불 할인해주는 쿠폰을 사용하려고 배스앤바디웍스에 갔다가 그냥 하나만 사도 그 다음에 쿠폰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나만 빼고 다 아는 정보)을

   알게되고 쿠폰 받아서 괜히 행복했다.


위의 1,2,3 세 가지 이유를 쓰다보니 별 거 아닐 수 있는 4번 이유가 생각났다. 역시 감사도 연습! :-D









솔직하자.


어쩌면 1년 내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려고 온 것 같다. "하니야. 너 이거 좋아? 싫어? 할래? 말래?" 그리고 이 말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 "솔직하자."

누군가 그랬다. 눈을 뜨자마자 선택의 순간이 온다고. 물을 마실까? 밥은 뭐 먹을까? 눈 감기 전까지 무언가를 선택하다 잠든다. 끄덕일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하시는걸까?라고 묻고싶다. 때론 너무나 우유부단하고 선택장애인 내가 싫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라듯 때론 내 길도 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 그렇게 생각하다가 결국 진저리가 나니까.

그러다가 금세 '감사합니다'라고 고개 숙이게 되는 순간들이 다시금 찾아온다. 예를 들면 밴쿠버의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고, 눈 앞에 살아있는 자연 그대로를 마주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때가 그렇다.


1년 전 나는 이 선택이 조금 이기적이지만 내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고 확신했다. 너무도 분명히 길을 열어주신 게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막상 1년을 보내며 내가 뭘 원하고, 여기서 뭘 할 수 있을지 돌아봤을 때 많이 답답했다. 부족한 나인 걸 확인하고 자존감이 오히려 낮아졌고, 그냥 내 안에 나약한 인간을 바라보는 시간이었어서 괴로웠을 뿐인데 도대체, 도대체 왜 이 길을 택하게 만들었냐고 적반하장으로 불평을 하기도 했다.

8개월 반을 보내고 있는 지금. 여기 오기 전에도 충분히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이젠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용기를 가졌었다.

그 용기를 갖고 이 땅을 밟았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내 유년시절, 사춘기, 청년시절을 돌아본다. 나쁜 말하는 거 진짜 별론데 '개별로'인 시간들도 너무 많았고, '개찌질'한 시간들도 너무 많아서 후회가 많이 남았고 나는 그걸 청년시절이 되어 깊게 돌아봤다. 다 돌아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괜찮다고 생각한 나 자신도 사실 너무 안 괜찮고 그걸 숨기고 살아왔던 걸 돌아보게 되었다. 솔직한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간단한 결정들이 내 복잡한 생각 사이 사이로 얽히고 설켜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겟거니 했지,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게 이렇게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누군가에게 욕먹을까봐, 누군가에게 부끄러울까봐, 누군가에게 미안할까봐 내 스스로에게 가장 욕먹고 부끄럽고 미안하게됐다. 아니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 하나님께 더 그랬겠구나.


'들어준다, '배려한다''는 명목하에 내 스스로 나를 너무 감추었던 인간관계도 있었고, 내 판단 아래 사람들을 두고 오만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더 깊게 다가가려 하지 않았고. 받기만 하고 줄줄은 몰랐던 이기적인 관계도 있었고. 모든 관계에서 너무 미숙하고 어리숙했다.

누군가를 욕하거나 취하는 자리가 싫어서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어쩌면 그냥 단절해버린건 아닌지. 적어도 난 내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관심은 갖았는지 스스로 묻게 되기도 했다. 난 사실 모든 면에서 단순한 결정과 사고를 할 수 있었고, 단순하게 그들을 대할 수도 있었다.

무울론 누군가를 욕하는 자리에 같이 욕하고 싶지 않았고, 취하는 자리에서 같이 취하고 술맛을 알아가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행동했으니 그거에 대해선 뭐 반대로 어울리고 싶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그렇게 같이 있던 친구들의 삶에 진실되게 관심을 가지는 친구였나 돌아보는거다.

친구뿐만 아닌다. 딸로서, 누나로서, 언니로서의 책임 역시 짊어질 것들이 분명 있는데 어느 순간 내 이기심에 그 책임을 나쁜쪽으로만 받아들이고 회피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이 정도면 돌아보기, 자아성찰의 달인ㅋㅋㅋㅋ)






캐나다데이를 맞이해서, 캐나다데이를 거리에 나가 즐겨야했지만 이 나름대로 나만의 캐나다데이를 기억하려고 글을 썼다.

실은 캐나다데이를 즐겨보려고 4시 반쯤 캐나다플레이스에 도착했다. 내 등엔 넷북이 든 백팩, 내 머릿 속엔 깜빡하고 잊고 온 핸드폰 생각, 내 손엔 보고싶은 퍼레이드는 저녁 7시부터라고 알려주는 팜플렛이 있었다. 요즘 이상하게 핸드폰만 와이파이가 잘 안터져서 3G로 전환되어 데이터가 나갈까봐 무서울 때가 있는데 집에 두고 온 핸드폰이 자꾸 생각나면서 축제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감사하게 딱 Jam 공연 하나를 볼 수 있었다.(그와중에 짱 잼!)

날은 더웠고, 쑤시는 다리도 어깨도 조금 피곤했다. 나이탓 안 하고 싶지만 이젠 나도 하루진종일 돌아다니기엔 너무 체력이 없음을, 나이 믿고 투잡 쓰리잡하던 때는 지나갔음을 인정하게 되는 요즘. 마음 속에서 스몰스몰 이 축제를 직접 나와 즐기는 대신 그냥 집에 가서 할 일 하고, 치킨 먹고, 그렇게 내일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까 집에서 핸드폰으로 유투브를 틀어놓고 온 것 같아서 데이타폭풍요금 맞을까봐 두려웠다. 신나는 축제 풍경을 담아내고 싶은데 그럴수도 없다. 백팩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집에 오면서도 계속 고민헀다. 씻고 다시 나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돌아갔다가 결국 나가지 않았지만 진짜 나가려고 했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솔직하게, 정말 정말 솔직하게 나는 그 수 많은 인파 속에 들어갈만큼 그 축제를 보고 싶진 않았다는 것.

그게 결론이었다. 아쉬움 남길 필요도 실은 없다. 내가 내린 솔직한 선택이니. 그런데 이런 아주 자잘한 것까지도 이럴까 저럴까 몇 십분을 생각하고 1시간을 넘게 고민해보는게 과연 내가 평생 해야 할 의사결정과정이라면 이젠 두손두발 다 들고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고 싶다. 이젠 단순해지고 싶다.

복잡하게 살기 싫다. 엄마가 맨날 말씀하시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고. 윷놀이 할 때처럼 도 아니면 모. 설령 그 과정은 복잡하더라도 말이다.

나이키 광고 모토 중 JUST DO IT. 그렇게 심플한 모토를 갖고싶다. 의사표현도 더 정확하게, 심플하게 하고 싶다. 글도 그렇게 쓰고 싶다.



실은 이 글은 캐나다데이 퍼레이드를 볼까 말까,라는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고민에서 시작해서 내가 전에 쓰려던 '솔직해지기'란 주제와 연결되어 쓰고 있는 글이다. 그리고 캐나다에 와서 내가 배우고 가는 것.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 외에 가장 메인주제는 '솔직함'이다. 내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분명히 하기.

잘 안되도, 어려워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보기. 앞으로 캐나다에서의 나의 하루하루는 그 노력들로 채워갈거다. 꼭. :>

흔들릴지언정 확고한 중심은 잃지 않는걸로. 그리고 언제나 그 과정도 결과도 내 손이 아닌 하나님 손에 있다는 걸 1초라도 잊지 말자고 말해주고 싶다. 제에발.


이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Happu Canada Day to myself!

이 글을 썼기에 더 뿌듯한 해피캐나다데이다. 땡갓
























#Day249

 in Vancouver

Writer : Hani Kim




2016.06.19 


6월 19일, 주일이다. 교회 끝난 후 오랜만에 주일에 자주오던 스타벅스에 왔다. 근 1달 간은 스케쥴이 왔다갔다해서 교회도 토요일날 가는 날이 많았고, 드디어 주일에 교회를 가다니 예배를 더 제대로 드린 느낌이라 감사하다. 아, 근데 자꾸 배가 슬슬 아프기 시작헸다.

제발 오늘 일에선 안 아파야 되는데.... 긍정긍정! 아프지 않기를..ㅠㅠplz.....  아까 여기 도착하자마자 세이프웨이에서 몇 일 일하고 그만두신 한국인 언니를 만났는데 역시 밴쿠버는 좁다. 마치 종로, 명동같은 규모같달까? 그것보단 크겠지만 여튼 같은 사람 또 보고 또 보고 할 때가 꽤 있다.


.......4줄 쓰고 배가 급 아파져서 화장실을 가려했으나 화장실 기다리는 줄까지 생길 정도로 너무 많아서 쿨하게 스타벅스에서 나와 세이프웨이로 왔다^^... 

이렇게 내 인생은 날 가만두지 않는다. 코미디다 코미디. 아무튼 오늘도 역시 클로징을 4시에 시작해서 9시에 끝내는 5시간 쉬프트인데, 잘 할거라고 믿는다.

아자아자, 갑자기 볼일 보던 중에 아빠한테 카톡이 와서 울컥했다. 울컥하는 순간도 무슨 코미디임ㅋㅋㅋㅠㅠㅠㅠㅠㅠ웃프다.


"아프다며"

아빠의 나름 쿨한 4글자와는 다르게 엄마에게서도 카톡이 와있다. 뭐 챙겨먹고, 뭐 챙겨먹고 옷 따뜻하게 입고 #*#&$~~

결국 두 분 다 날 걱정하고 있다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보내신 메시지. 마침 오늘은 Father's day. 아빠께는 어제 홀스푸드에서 샀던 Happy father's day 당근케익 찍었던 사진을 보내드렸다. 아빠께선 어제 강산이(남동생)랑 너 얘기를 좀 했었다고, 그 녀석이 널 경외하더구나,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울컥한 부분은 사실 바로 이 부분이었다. 우리 삼남매는 진짜 진짜 진짜 친하다. 9살, 11살 차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치한건지 걔네가 성숙한건지 (아마도 전자이겠지만) 어찌됐든 감사한 건 정말 친하다는 사실인데 요즘 호텔알바를 나간다던 고딩남동생은 너무 힘들어서 이제 안 하려고 한다고 하고, 막내는 평균이 80점을 넘겼다며 축하를 바라는 그런 귀염둥이들이다.


이 얘기를 갑자기 왜 꺼냈지? 그냥 이곳저곳에서 Father's day하니까 가족이 보고싶어지는 그런 날이었나보다.

그도 그럴것이 같이 일하던 리디아는 가족들이랑 디너를 한다고 했다. 엄마아빠께서 이혼을 하셔서 두 가족이 있는데 양쪽 아빠를 다 챙겨드리는 모양이었다.

2개의 카드를 준비했는데 하나는 꽤 성의있게 글을 썼고, 하나는 그냥 LOVE YOU라고만 써있던 게 괜시리 내 마음을 쿡쿡 찌른다.

그냥 온전한 가정이어도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자라는가, 생각해봤을 때 갈라지고 깨진 가정에서 나오는 상처들은 분명 그 이상으로 힘든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것도.. 점점 자라면서 느끼고 있다. 자녀의 입장에선 조금 더 많이 자라봐야 그 이별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리디아가 오늘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저녁은 내가 다 사야돼. 오마이갓!!!!!! 돈 엄청 나갈 거 같아.ㅠㅠ또르르.." 레스토랑에 들러서 차이니즈푸드를 싸가서 먹을 예정이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우엔 어버이날이라고해서 부모님을 한 번에 축하해드리는 날이 있다고 하자(사실 어머니 날 때도 말했던 적이 있지만 ㅋㅋㅋㅋㅋㅋ)리디아 특유 리액션을 하며 우리도 그렇게 한 날에 축하하는 날로 바뀌어야한다며 극공감을 해주었다. 


또 나는 반대로 엄마 따로, 아빠 따로 축하받는 일 역시 굉장히 좋은 일이구나 싶었는데 말이다. 조금 더 집중해서 엄마의 날엔 엄마에 대해서만, 아빠의 날엔 아빠에 대해서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해서 말이다. 그런데 서로가 불편한 일일 수 있거니와... 


 



 



#독자와의 만남

  (캐나다워홀카페에 연재중인 내 게시판에 댓글을 달아주신 고마운 분, 그리고 지금은 동갑내기 친구!)



2016.06.06 월요일



캐나다 워홀을 시작하는 동시에 블로그와 네이버 캐나다 워홀카페에 꾸준하게 글을 올리고 있다. 

뜸하게 올리 때도 많았지만 8개월째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올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칭찬하게 되는 요즘이다.

6월 초쯤 글 3개에 연달아 댓글을 쭉 달아주신 분이 계셨다. 누가 댓글달면 내소식 메뉴에서 딸랑-하고 알람이 뜨도록 되어있는데 내리 똑같은 닉네임을 가지신 분이 '잘 보고 있다, 공감간다, 감사하다'라며 댓글을 달아주셔서 너무 고마웠었다. 근.데 오잉? 갑자기 쪽지가 왔다.

그것도 나름 긴 장문의 쪽지. 단순히 워킹에 대한 정보나 경험 얘기가 아니라 진실한 내면을 보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보면서 눈물이 났다. 시간이 되면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좋겠다.' 나도 그 쪽지를 보는데 울컥했다. 온 지 3일밖에 안되었다는 워홀러의 쪽지에 왠지 내 힘들었던 시간을 누군가 알아주고 이해받는 느낌이었달까. 또 하나 우리의 공통점은 신앙이었다. 만약 그 얘기가 없었다면 만나는데 주저했을지도 모르겠다.





Tada!!!! 결국 만났다. 감사하게도 서로 근처에 살고 있어서 귀차니즘따위 없이 나갈 수 있었다. 

막상 만나서는 부끄러워 얘기 안 했었는데 첫인상은 완전 패셔니스타(엄지척^0^b)였다. 개인적으로 옷 특이하게 입고 잘 입는 사람 구경하는 거(힐끔힐끔) 되게 좋아하는데..,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옷 잘 입는 사람들 보면 그 다음에 그 사람의 스타일이 어떤지 유심히 보게 되는 그런 거.. 그러고 싶었던 친구였다. 

그리고.. 왠지 글로만 소통하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만난다는데 추레하게 나가면 안될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편하게 입은듯 화장은 다 하고 렌즈까지 끼고 나갔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고 있는 나도 뭔가 웃겼다. 원래 오래된 남자친구 만나러 나갈 때보다 여자들끼리 걸스토크하러 나갈 때 더 꾸미는 법!



동네에서 만나니까 캠비 쪽(브로드웨이 방향)이나 메인스트릿으로 가면 좋겠다싶어 얘기하다가 메인스트릿으로 결정!

워낙 유명한 카페들도 많고, 아기자기한 소품, 팬시샵, 북스토어, 맛집도 많은데 사실 나도 가본 데만 가봤지 잘 안 가봐서 어딜 데려가야할 지 모르겠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스트릿에서 꼭 한 군데를 데려가야 한다면 49th Parallel Coffee & Luckys Doughnuts 아니겠는가?

가는 길에 10분 정도 걷는데 아직도 기억나는게 넘나 더워서 , 일부러 밤에 샤워 안 할라고 급하게 씻고 나왔는데... ㅠㅠ

그렇게 메인스트릿에 도착해서 3번 버스를 타고 갔다. 길치인 나는 반대방향으로 인도하다가 '엇. 잠깐만 반대로 가야된다'하고는 조금 더 걸어 도착!



여기서 잠깐, 도넛 맛에 대해 예찬하고 넘어가야겠다....★

올드훼션드랑 마차 도넛을 뙇!!!! 시켰는데......................녹차맛 도넛이 이렇게 맛있다니.....................

일단 녹차맛 도넛은 난생 처음 먹어보는 거고................... 쫀득한 도넛 안에 녹차맛 크림까지 모든게 완벽한 맛이었다. ㅠ_ㅠ♥♥

이 날 이후로는 요 도넛을 계속 먹고싶어하다가 어제(6월 22일) 드디어 재회하러 갔는데 역시나 맛있다. 1인 2도넛 정도 해줘야 만족할 정도로 맛있는 도넛집 강추!

물론 커피도 맛있다. 냠냠.. 스타벅스에서 일한다해도 원두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이건 좀 다른 맛이다. 더 맛있다.'정도만 느낄 수 있는데 원두 자체가 그냥 다른 느낌. 넘나 맛있다. 같이갔던 독자분(친구) 경우에는 이미 커피에 대해 훨씬 많이 알고 있는 듯 해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한국에서 카페 직원이었단다. 역시 bbbbb!!!




내 글을 읽는 독자와의 만남이라니! 오묘한 느낌

비슷한 사람을 만난 반가움(격한 공감, 게다가 동갑!)

타지에서 처음 만나 신앙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다는 것

미리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눌 수 있고, 알려줄 수 있는 정보나 경험들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러쿵저러쿵하기보다 우리의 만남을 저 4가지의 문장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내 글을 읽는 독자와의 만남이라니! 오묘한 느낌.


예전에 패션매거진의 피처에디터를 꿈꾸며(지금도 한 쪽에 갖고 있는 마음이지만) 한창 열심히 패션이건 뷰티건 그냥 그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밤새며 작업하던 시절이 있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고, 어설픈 리뷰를 적어가던 그 때. 생각해보니 엘르에서 주최하던 그 때 그 엘르엣진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대인관계를 넓혀갈 수 있었고, 학교 안 울타리에서만 만나는 친구나 선배, 후배가 아닌 조금 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이나 언니, 동생들을 많이 만났었다. 물론 안타까운건 일회성 만남이나 그냥 몇 번의 만남 이후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글을 쓰면서 그 때 나에게 없었던 것이라면 그런 인맥들의 소중함을 몰랐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거나 눈에 띄게 행동하거나 그러질 못했다. 용기도 없었고, 날 사랑하는 마음 또한 많이 부족했기에 그 누군가를 품을만한 사람 역시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젠 나의 나됨없이, 또 사람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아는 지금. 나는 조금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내 글에 댓글을 달아주고, 쪽지로 관심을 보여준 친구를 만나는 것이 더 이상 불편하거나 흥미없지 않고, 오히려 두근두근 거리는 걸 보면 :D



그런데 실은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하다니...'였다. 그럼에도 내가 나눠줄 이야기들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가 없었다.

그 친구는 이제 막 시작한 3일차 워홀러, 나는 8개월을 산 워홀러이기 때문에 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완전히 무의미하진 않다는 것.

게다가 이젠 타지에서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난다면 그게 한국인이든, 캐내디언이든, 아시안이든 그런 게 다 뭐가 중요한가라고 내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

오기전까지만 해도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하고만 지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젠 나름 나이 먹었다고 언제 어디서 그 사람들을 다시 마주칠지 모르고, 어떻게 영향력들이 오고 갈지 모른다는 게 내가 진짜 사는 삶이라는 걸 인식하게 된 것 같다. 또 가장 솔직한 이유는 '내가 외로워서' '내가 그만큼 내 이야기를 완전히 터놓고 할 친구가 필요해서'이다. 


이야기가 새기 전에 얼른 마무리 하자면 이 만남이 그냥 친구소개로 만난 친구와의 만남이 아니어서 더 신기하고 새로웠다.

난 그냥 수많은 블로거중 하나이지만, 내 글을 몇 개라도 읽어주고 공감하고 눈물까지 흘렸다는 독자(?)와의 만남. 돌아보니 엘르엣진 때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진 사람들하고의 만남이 아니라 정말 이건 1:1 순전히 워홀카페의 글을 통해서만 만난거라 더 특별했던 것 같다. 나름 뿌듯하기도 하고,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단 한 명만 있어도 그걸로 내가 글쓰는 행위가 가치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게 현실로 다가오다니, 조금 더 벅차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한 마디로 동기부여가 되었다. "아, 그래 누군가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있구나. 위로가 되고 있구나. 내 무너졌던 시간들도 다시 일어난 시간들도 공유하면서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구나"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나는 떨리고, 신나고, 살짝 두렵기도 한 그런 오묘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비슷한 사람을 만난 반가움(격한 공감, 게다가 동갑!)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대할 때 우린 '공감대'를 형성하려고 알게 모르게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대화해도 척하면 척- 알아듣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끼리끼리'만난다는 말 있지 않은가. 마치 그 말처럼 정말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인데 너무 비슷해서 '소오름'이 돋았다.

그래서 감사했다. 만난지 몇 시간만에 우리의 대화에는 신앙 얘기, 친구관계 얘기, 워홀을 올 떄의 심정에 관한 얘기, 주변 반응 등에 대해 깊게 깊게 나누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역시 비슷함에서 나오는 친밀함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느새 내 주변 인간관계를 돌아보니 '모 아니면 도'의 느낌으로 친한 사람들이 갈린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한 쪽은 나와 꽤 비슷한 사람들이고 다른 한 쪽은 나와 정 반대의 사람들로 나에게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고 때론 정말 쿡쿡 쑤시는 말들로 내 마음까지 후벼파는 상처들을 남기기도 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몇 년을 알고 지내니 그들이 했던 말들이 결코 내가 무시해야하는 말들이 아니라 나에게 약이 되는 말들임을 깨닫게 되는,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런 친구들하고만 관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지해주고, 용기를 주는, 너무나 비슷해서 같이 힘들어하다가도 곧 또 힘을 내게 되는 비슷한 사람들도 있다.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간다. 이 친구는 나랑 완전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에 정말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그렇게 나는 이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공감의 힘을 또 느꼈다. 내가 계속 무언가 창조하고, 글을 통해 표현해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 공감의 힘. ;>

그 공감 속에는 위로라는 힘이 있고, 또 새로운 영감의 통로가 존재한다. 앞으로 우리의 연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친구의 연이 되어 나중에 한국가서도 쭉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되고싶다. 또 서로의 성장을 응원해주는 친구가 되고 싶기도 하다. 아마 우리 둘 다 각자의 1년을 보내고나면 또 격하게 공감할만한 이야기들이 샘솟지 않을까. 




타지에서 처음 만나 신앙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다는 것


긴긴 시간동안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내 신앙생활에, 아니 따로 구분 지을 것 없이 그냥 내 삶에 큰 건지 전에는 전-혀 몰랐다. 아무리 내가 공부를 하는 시간이 많아도 주일 단 하루동안은 계속해서 교회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랫동안 인간관계를 맺어온 교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시간들의 소중함을 2014년도 2월~2015년도 1월까지 영어공부를 하면서도 많이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먼 땅에 홀로, 교회 공동체 없이 산다는 게 힘들다는 걸 어쩌면 이 순간들을 통해 더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초반엔 왜 그럴까 왜 그럴까하는 생각들이 날 힘들게 했다면, 이젠 그것들이 왜 그랬고.. 내 실수로 인한 것들, 또 내가 묶여있던 것들이 뭔지 다시 스스로 보게 되고 또 그걸 극복해내고 있는 나를 보면서 다시 용기를 갖고 평안한 마음을 되찾은 요즘이었다.

그 와중에 이 친구를 만나 다행이다. 어두울 때 만났으면 만날 마음도 없었을테니까. 


타지에서 신앙 이야기를 할 만한 친구들이 없다는 건 힘들다. 물론 한인교회를 추천 받아 거기서 잘 생활하는 것이 꽤 일반적이긴 하지만 내 경우에는 한인교회 몇 번을 가보고 그냥 이번 1년은 현지교회를 다니며 혼자 생활하게 되어버렸다. 다시 시간을 돌린다면 이것저것 고쳐서 생활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일단 생각하지 않을거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주신 것들을 미션으로 여기고 잘 살다가고싶다. :D


여튼 이 친구의 쪽지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접하게 되었고 그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나 역시 여기에 와서 처음으로 연애를 하게 되면서 힘들었던 마음들을 나누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왜 나를 여기로 부르셨을까, 굳이 그런 것들을 경험케 하셨고,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신앙 이야기를 터놓고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진 것에 대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오히려 이 시간들을 통해 내가 한국에서 누렸던 공동체 속에서의 사랑의 소중함을 더 사모하게 되었다. 반대로 교회에 처음 나갔을 때의 어색한 분위기, 내가 새로운 공동체에 낄 때의 내 모습, 현지교회에서의 예배 분위기 등 새로운 느낌도 배웠고, 아주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건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과정이라는 걸 느낀다.


이 친구는 일하는 곳에서 보스가 크리스찬이라 나가게 된 경우라고 했는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은 내 생각보다, 내가 제한하고 있는 나의 아주 작은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이라는 걸 내가 무시하고 있진 않았는지.. 또 내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하나님을 전하지 않으면서 '선교'를 생각하고 갔던 것 역시 달리 생각해보면 정말 아이러니였다는 것도..(이건 좀 전에 한국설교 들으면서 느낀거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이 통로, 저 통로를 통해 일하심을 느꼈다.






미리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나눌 수 있고, 알려줄 수 있는 정보나 경험들


특별한 경험을 위해 왔지만 실은 이 곳도 별 다를게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게 워홀러들이 조금 정착하고나서 혹은 얼마안되서 느끼는 부분이다.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별 다를게 없구나' 나는 2015년 10월, 밴쿠버에 발을 딛자마자 오자마자 오락가락하다 좋았다 나빴다하는 변덕같은 날씨에도, 우중충함과 우울한 날씨가 반복되었던 레인쿠버일 때도 열심히 다운타운을 돌아다녔었다. '그래도 이렇게 멀리까지 1년 살아보려고 나왔는데-'라는 마음에서였다.

하루하루 아까울 것 같았다. 무울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제발 그런 마음으로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헌데 이 친구는 오면서도 그렇게 '우왕- 해외다!!'하는 마음보다는 이미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크게 다를까하는 마음, 또 별 감흥이 없다고 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나니 이젠 어딜가도 '사는 사람'처럼 살면 정말 별 게 없겠구나싶기도 하다. 그냥 다 똑같이 '의식주'의 반복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얘기 왜 했지? 그냥 쓰고 싶었다. 썼다 지웠다했는데도 자꾸 쓰게 되서 그냥 적어놓기로.



소제목처럼 내가 200일 정도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이 친구에게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 경험이 성공이다- 실패다-라고 규정할 수 없지만 그냥 단순하게 말하면 내가 만족하느냐 아니냐에 대한건데 원래 생각했던 내 워홀생활이랑은 전~혀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생각하지 않지만 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스스로 피드백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했다. 그래서 그렇게 다들 경험 경험 하나보다싶다. 잘했든 잘못했든 거기서부터 배움이 시작된다면 버릴 게 하나도 없구나 뭐 그런거다. 그러고보니 어제 봤던 김혜자 선생님의 '디어마이프렌즈' 드라마 관련 인터뷰 속 내용이 생각난다.

다 지나고보니 삶의 어느 부분도 하나 버릴 게 없었더라는. 그렇게 떠올릴 수 있는 인생이면 좋을 것 같다.

이 워홀생활도 나중에 다 지나고나면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자꾸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데... 결국은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적은 쉬프트때문에 스트레스 받았던 것, 내가 내 권리인줄도 모르고(망각하고^^) 착한척했지만 결국 내가 바보가 아닐까하고 생각했던 경험, 연애 경험 등...ㅋㅋ

거기로부터 뭘 배웠는지 나누기 위해서 그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습관 역시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니 소소하게 사진이라도, 일기라도 적어보자.







이 글을 시간날 때마다 조금조금씩 쓰다보니 열흘을 썼다. 헐?..ㅠㅠ 사실 지금 6월 28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10분이당...ㅋ

드디어 낼은 오프!! 밀린 포스팅 언제 다 쓰냐아아아앙아아 싶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써보자!

Anyway! 이 글의 결론은 '독자만나서 행복한 하니' '게다가 동갑이고 잘맞는 친구라 더 행복한 하니' '역시 언제 어디서 인연이 될지 모른다는걸 깨달은 하니'....★

캐나다 워홀카페에 급 감사를 전해드리며 이 글을 마치겠다. 감사합니다♥ 진아야 용기내서 쪽지준 거고마웡♥ 


















#Day248

 in Vancouver

Writer : Hani Kim






2016.06.18 _ 11:50 A.M



태그로 정리하던 근황을 잠깐 멈추고, 진짜 뤼이이이얼, 지금 이 순간의 근황을 적도록 하겠다.

여자라면 한 달에 한 번 겪어야 하는 그 날이 시작됐다. 그래서 사진에서 보듯이 핫팩을 배에 갖다대고 있음.. 

어제부터. 5월 말-6월 들어서 솔직히 내 들쑥날쑥했던 마음도 많이 평안해져갔고, 그.래.서 더욱 이번에 찾아오는 '그.날'은 나름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래, 이 쯤이야.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데 뭔들 못 이겨내겠나- 니체의 말처럼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Whatever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하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사실 나는 그 날 때마다 설사를 죽죽- 하는데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줄곧 그래왔다. 꽤 오래되었고 말이다.




집을 나섰다. 남자친구랑 같은 시간대라 동시에 출근을 했는데 처음엔 화이팅- 넘치다가 갑자기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가는 도중부터 "아.. 진짜 힘들다"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온도조절이 안되는 걸 느꼈고 급기야 예일타운역에 다와서는 주저앉았다. 다시 힘을 내서 역 밖으로 나왔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면서 힘이 쭉- 빠지고 무조건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마음 뿐이라 남자친구에게 먼저 가라고, 나는 화장실부터 가봐야겠다고 식은땀을 흘리며 그렇게 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타야할 C23번 버스가 이 절묘한 타이밍에 딱 도착을 해야했고, 화장실을 쓰더라도 세이프웨이에 가서 직원용 화장실을 쓰는게 낫겠다싶은 마음에 일단 그냥 타기로 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앉아갈 수 있었다. 앉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는 거리가 어디인지 보기도 싫어졌다.

정말 아프고 괴로웠다. 계속해서 하나님, 하나님, 저 얼른 낫게 해주세요. 이제 진짜 잘못 안할게요.라는 급한 회개기도까지 나왔다. 그리고나서는 앞서 말했던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제가 이런다고 해서 죽거나, 쓰러지지 않을 거 아는데요. 진심 너무 괴롭잖아요!!!!!!! 으아우가유가갸갹!!!"하며 속으론 진짜 미칠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며 그렇게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내 몸과 영혼을 맡긴 채로 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진짜...HA? 거의 영혼이탈)


지금까지 캐나다에 있는 8달 내내 당연히 나름 규칙적으로 생리도 해왔고, 생리와 동반되었던 설사 역시 죽-죽 해댔지만 그래도 나름 잘 버텨왔고 일도 2번 정도 빼곤 아파도 다 나갔었는데 유독 왜 이러는지 나도 아프니까 마음이 안 좋았다. 여튼 일단 내가 해야할 건 화장실에가서 배아픈 걸 해결하고 그 이후에 것들을 생각해야했다. 하지만 아픈 도중에도 오늘 당장 클로징을 혼자 할 자신이 1도도 없었고, 게다가 내일 오프닝을 해야한다는 건 말 그대로 최.악의 스케쥴이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와.. 이건 진짜 최악의 스케쥴이겠다. 생리통에 오늘 클로징에 또 몇 시간 안 자고 오프닝이라니. 그렇게 1초간 생각을 했다가도 '아냐. 이건 너무 부정적이야! 하나님이 계신데 뭐가 걱정이야? 즐겁게 하자. 견딜만하다면 그냥 불평없이 하자! 아자아자! 넌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가다듬고 분명 집을 나섰는데 나서자마자, 직장에 도착하자마자 이게 무엇인가..........? 



그러나 할 수 없는 거에 대해선 그냥 내려놓기로 하지 않았는가. 푸우-를 하면서 가방도 걸었다 내렸다 할 힘도 없어지자 가디건도 가방도 다 바닥에 내려놓고 지금 일하고 있는 리디아한테 당장 문자를 했다. 


I'm already here, Lydia. But I don't think I can do close tonight and open tmr.

I'm soo sorry could you please ask someone help me out? plzzz.

I feel like I'm crazy...TTTT


어제 오전에 리디아가 조금 일찍 나와줄 수 있냐고 해서 5-9시 쉬프트에서 4-9로 한시간 땡긴건데 일단 너무 미안했다.

오히려 내가 똥을 준 느낌..(ㅋㅋㅋ자꾸 똥똥거려서 죄송합니다♥ 요즘 요 표현에 매료되서ㅋㅋㅋ..)

결국 리디아는 8시간 + 1시간(오버워킹) 총 9시간을 일하게 되었고 내일, 그러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나 대신 오프닝쉬프트를 커버해주기로 했다. 

Thank god.. 정말 고마웠다. 진심. 그동안은 내가 다른 사람들 쉬프트 커버해주는 역할을 했다면 이젠 나 대신 커버해주는 일도 꽤 생기는구나,하고...

결코 그런 것들에 대해 불평할 게 아니라 이심전심으로 서로 도와야할 타이밍에 돕는 것도 팀이 할 일이구나,싶었다.(이와중에 이런거 깨닫는 나ㅋㅋㅋㅋ진짜 자아성찰 bbbb)



그리고 막 걱정해주시는 초아저씨(높으신 매니저님인데 진짜 너무 자상하고 따뜻하시고, 늘 바른 말 하시는 분이라 존경스러운)까지.... 다들 너무 감사했다.

창백한 얼굴로 화장실가는데 헤이데얼- 하면서 인사해주셨던 할아버지분도, 또 너 괜찮냐고 물어봐주시는 아멜리아 아주머니? 할머니?도.. ㅠㅠ

아플 땐 가족생각도 가족생각이지만, 이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위로들이 더 크게 느껴진다.

예전 같으면 더 외로웠을텐데 이젠 그 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신경쓰게 된 걸 보니... 세이프웨이 사람들이 지금 내 삶에서도 꽤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구나,싶은 마음에 따뜻해졌다. 캐나다 사람들, 참 따뜻하다. 캐나다에 모인 사람들이라고 해야 더 맞는 얘기겠지만... 참 따뜻하다. 정말 T^T



그렇게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닭똥같은 눈물도 흘렸다 괜찮다고 걱정말고 푹 쉬라는 리디아와 초아저씨 앞에서 또 웃었다가...(울다 웃으면 똥꾸멍에 털난다했는데..응?) 생리통약과 설사약을 입 안에 한 번에 털어넣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러 갔다. 

어제 아침에 계란죽을 해먹고는 24시간 물 딱 한 잔 빼고 아무것도 먹지 않아 조금 전에 다시 그 계란죽을 김치와 함께 떠먹었다. 분명 맛없었는데 맛있게 느껴진다.

하하하핳ㅎㅎㅎㅎ... 




그 와중에 이렇게 아픈 날에 날 챙겨줄 남자친구가 있음에, 또 위로해주고 직접 도와주는 코워커들이 있기에 마음이 너무 많이 든든했던 순간을 겪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토론토에서 친한 동생이 다음 달 요 맘 때쯤 오기로 했는데 아프면 신나게 못놀아주기도 하고, 같이 방쓰게 될 입장에서 좀 불편하고 걔도 불편할 수 있어 날짜를 다시 조정했다.





그리고 아픈 날 전전전날에는 밴쿠버의 한 어학원에서 만나 3-4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친구가 밴쿠버로 신혼여행을 와서 같이 식사를 했었다.

그 날 더플라잉피그라는 밴쿠버내 맛집으로 유명한 곳, 그리고 밤 7시부터 새벽 1시까지만 여는 신기한 치즈케이크 맛집도 다녀왔는데 그건 나중에 포스팅 해야겠다.

어제는 쨍-하고 밝더니 고새 또 레인쿠버로 돌아온 오늘. 요즘은 흑색 구름이 몰려왔다가 다시 쩅-하고 해가 떴다가 조금은 쌀쌀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토론토에 있는 언니랑 잠깐 통화했더니 거긴 아직 여름도 아니라고 한다. 여름 옷 안사도 될거같다고..ㅎㅎ 

어쨌든 오늘까진 편히 쉬고, 어제 못 먹은 밥 냠냠 먹으면서 지내도록 하자! 화이팅! <3 <3 <3 감사하다, 아플 때 쉴 수 있음에!



+


참!!ㅋㅋㅋ어제는 막내동생이랑 페톡을 했다.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 내동생!!! 한 달 되었는데 아직 데이트 1번을 못했다는..... 귀여운 중학생이다. 보고싶다 많이.. 







 










#Day244

 in Vancouver

Writer : Hani Kim





2016.06.10


#심상치 않았던 꿈/십자가

#WHOLEFOODS #건강(식도염인건가?)

#새로운 코워커들의 등장(멕시칸, 콜롬비안, 프렌치)

#독자와의 만남

  (캐나다워홀카페에 연재중인 내 게시판에 댓글을 달아주신 고마운 분, 그리고 지금은 동갑내기 친구!)

#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여행준비(렌터카 알아보기)

#솔직해지기

#정리/심플/미니멀리즘의 미학





#새로운 코워커들의 등장(멕시칸, 콜롬비안, 프렌치)



약 한 달 전쯤인가, 새로 바뀐 매니저(전 세컨어시스턴트)의 소개로 멕시칸인 앤디가 왔다. 지난 번 포스팅에도 썼었는데 굉장히 재밌는 친구다.

물론 중간중간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려서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친구이기도 하지만, 그거빼곤 정말 내가 너무나 바라던 유쾌한 그런 코워커를 만나게 되어, 또 그 친구가 내 뒤로 메꿔주는 친구여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너무 편해서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굴게 되는데 그건 정말 그 친구의 장점인듯하다. 

어딜가나 꼭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개그감 엄지척에다가, 편한 친구들이 있나보다. 



그리고 갑자기 바로 콜롬비안인 핸섬한 코워커 칼로스(멕시칸인 매니저님 이름도 칼로스라 2명의 칼로스가 있는셈..ㅋㅋ게다가 세이프웨이 안에 야채코너에서 일하는 나름 친한 칼로스까지 합하면 총 셋..)가 들어왔다. 멕시칸 앤디의 친구이며, 둘 다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비즈니스(앞에 뭐가 붙는데 까먹음..붕어 기억력..)전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앤디는 여기서 자리잡고 살고 싶어하는 것 같아하는 반면 콜롬비안 친구는 남은 3년의 대학생활을 끝내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손님들이나 매니저님도 '잘 생기지 않았어?'라고 하는거 보면 응.. 보편적으로 잘생긴 페이스 이 친구. 얼굴가지고 이런저런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라 게이 3명과 일하고있는 나로써는 그들이 바라볼 때 '잘생겼다'는 기준도 사실 여자가 보는 것과 그리 다르진 않다는 걸 느낀다. 사람 눈이 다 그렇지 뭐. 

진짜 중요한 건 내면이라는 걸 2016년 들어서 더 확실히 느끼고 있다. 이 친구와 처음으로 클로징 업무가 있던 며칠 전, 나는 그의 깨끗함에 깜짝 놀랐다. 

딱 두 번째 날임에도 불구하고 싱크대 안에 커피로 인해 더러워진 자국들을 지우기 위해 블리치를 사용하려는 것도 그렇고(전 날 다른 코워커가 하는 걸 보고나서), 정말 깔끔깔끔하게 클로징을 서브하는 것 보고 놀랐다.

멕시칸에 비해 조금 더 침착하고, 꼼꼼한 느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각 나라가 가진 문화가 다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차이도 분명 있다.

내가 그렇게 '공부형'이 아님에도 아주 전형적인 한국인답게 스타벅스를 시작할 때쯤 미리 한국에서 일했던 동생에게 레시피를 알려달라하고, 커피노트까지 만들어 기계까지 그리며 어떤 블로그(그 분이 더 대단...ㅎㅎ)에 나온 스타벅스 알바생이 자세하게 설명해놓은 정보들을 빼곡히 적어두었던 걸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리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차이, 지금까지 자라온 환경차이에서 비롯된다. 

여튼 나는 앤디와 친해진 것처럼 칼로스랑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공감대를 이끌어내고자 예전에 밋업에서 만났던 콜롬비안과의 대화를 꺼냈다. 그들의 문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다. 주제는 '음식 남기는 것에 대한 다른 태도'였다. 부하든 가난하든간에 음식을 버리지 않고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먹거나 최대한 버리지 않는 걸 못사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너네 나라든(한국) 일본이든, 여기 밴쿠버처럼 그렇게 쉽게 남은 음식을 버릴거라고 굉장히 흥분하며 또 흥미있게 이 주제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그 어린 콜롬비안 친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정말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한 것이 이젠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사회를 살고 있진 않은건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아주 당연하게 버려지는 음식물들이어야 하는가? 이 이야기를 칼로스에게도 하니 그거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밴쿠버만 해도 버려지는 음식들이 너무나도 많고, 아끼지 않고 그냥 버려지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부모님이 경제적인 뒷바침이 되어주어 여기에 온 유학생들 역시 그렇다. 하물며 자비로 온 나도, 힘들게 산다고 나름 골골거리지만 실은 '살아가기에는 충분한 돈'을 벌고 있는 나도 그렇다. 필요한 양에 비해 더 많이 사온 재료들이 썩어져 버리게 될 때마다 '한국에서 식구가 많았어서 많이 사던 버릇이 남아있다'고 변명하지만 실은 음식 아까운 줄 모르고, 또 정말 없는 사람들 생각 안 하고 사는 게 맞는거다. 아무리 돕는다, 돕는다해도 아주 작은 것부터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그렇기에 반대로 그런 국가에서 온 이들이 이렇게 넓은 세상을 마주했을 때 오는 회의감도 클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온 나도 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질 정도인데, 빈곤층이 정말 정말 많다는 콜롬비안 코워커는 또 어떤 다른 세상을 마주하고 있을까.




마지막으로는 프렌치. 이름이 스테판인데.. 모델 스테파니, 가수 스테파니가 자꾸 연상되서 완전 여자이름같다고 놀렸었다. 이 친구는나처럼 워킹홀리데이로 온 친구이자 세이프웨이 캐셔에서 스타벅스로 넘어오게 되었다. 인사를 주고 받는 정도로만 딱 친했는데 이 친구가 스타벅스에서 트레이닝 받던 첫 날, 내 눈은 휘둥그레해졌다. '너가 왜 여기있어?' 그랬더니 '오늘부터 트레이닝이야!'라며 지난 주에 일주일에 쉬프트를 4시간밖에 못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프랑스 계좌에 있는 돈까지 끌어서 썼다고..ㅠㅠ 안 그래도 그 친구는 잉글리시베이 근처인 우리 매장 가까이 살기 때문에 한 달에 550불 주고 사는 나에 비해 훨-씬 비싼 750불을 집값으로 내고 있다고 들었다. 그 말 듣고... 헐? 왜냐면 겨우 4시간갖고 살아갈 수 없다는 걸...잘 아니까. 물론 한국이든 여기든 그건 마찬가지겠지만 당장 집값도 없는 처지가 되는 건 '현실'이다. 나 역시 초반에 막 8시간 받고, 12시간 받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압박감을 잘 안다. 더 지내봐야 프랑스사람들의 문화나 특징같은걸 느낄 수 있겠지? 


유럽에도 많은 언어가 있는데 왠지 얘넨 영어도 다 잘할 것 같은 그런 편견같은 게 있다. 이건 아마도 내가 영어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는 한국이란 나라에 너무 오랫동안 세뇌당한 탓일거다. 무울론 같은 알파벳을 쓴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큰 이점이라고 생각하긴 하다만 각자의 언어로 인한 억양이 있고 그건 아시안이든 유러피안이든 다 갖고 있다. 2년동안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 워홀 규정이 나라마다 다 달라서 현재 멕시코의 경우 아예 체결이 맺어있지 않고, 프랑스는 2년, 한국의 경우 1년이다. 내가 이 친구에게 '불공평해!!! 왜 우린 1년이야!!'라고 생각없이 말했지만 멕시코 애는 나보고 '불공평해!!!!! 왜 우린 학생비자밖에 안되는거야?'라고 말한다. 


매번 말하듯 나는 불어에 대해 유독 애정이 많다. 봉쥬르 쥬뗌므 빼고 진짜 저언혀 아는 게 없는데..... 그냥 불어가 너무 사랑스럽고 좋다. 샹송을 들으면 귀가 녹아내릴 것 같다.처음으로 우리 집에 재워준 외국인도 프랑스인 훈남이었다.(그...ㄹㅣ운 그때의 떨림★사심폭발!?!)

아무튼 그래서 이 친구가 처음 등장하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불어는 너무 아름다운 언어인 것 같다며 그렇게 조금씩 친해졌었다. 워홀러는 워홀러들끼리만의 그런 힘듦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꼭 워홀러가 아니더라도 유학생은 유학생들끼리만의 공감대가 있는거고, 워홀러과 유학생 같은 게 상관없이 타지에 사는 사람들만의 그 외로움과 힘듦은 그냥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쉽게 친해지기도 하고.



요즘 은근히 재밌는 게 하나 있다. "Thank you, have a good day!"라고 손님에게 외칠 때마다 그 억양이 하나같이 다르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예시로는 뭐 여기서 태어난 이들의 발음이나 억양을 따라하는 것이 '배우는 입장'에서 가장 좋다고 할 수 있겠으나 사실 언어의 의미를 전달하는 거에 있어선 아무 이상은 없으니까.. 그.래.도 진짜 본토사람처럼 말하고싶은 욕심은 끝이 없는 거 같다. 여튼 앞으로도 다같이 일할 때마다 그 억양의 다름으로 인해 많이 웃을 예정. 

그리고 이들 모두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다들 남자라는거..........

전 매니저(리디아)랑 나빼고는....... 이제 다 남자다. 남자소굴. 남자소굴 속에서 절반 이상은 게이니까......뭐 그들 사이에선 다 남자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실은 이 부분이 굉장히 궁금하다. 왜냐면 난 호기심대마왕이니까..하하핳...)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사람이 3명이나 생기고.. 또 나 다음으로 들어왔던 가브리엘도 1-2주 안으로 에어라인 회사의 사무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해서 이별을 해야하고... 나도 떠나고... 이러니까 진짜 워홀생활이 마무리되고 있는 느낌이다. 분명 우리의 부드러운 코워커 새이건은 내가 한국갈 때 사갈 선물 생각한다니까 너 아직 엄청 많이 남았다고 말해줬는데.. 정말 꽤 많이 남았는데 여기저기서 나와 이별을 준비하는 느낌이랄까. 어디서 들었는지(물론 내 입에서부터 얘기가 흘러간거다.) 손님들도 "헤이 한~ 아이헐쥬유아리빙~~암거너미슈~~~"하며 완전 고마운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덧붙여서 자꾸 가지말고 여기서 남편 찾아서 눌러살라는 이야기까지 뺴놓지 않고들 한다. 이 부분에서도 할 말은 많은데 그냥 간단히 말하면 어떤 나라에서 왔건 상관없이 캐내디언들은 '자기 나라는 킹왕짱, 왜냐? 살기 좋으니까'식의 프라이드가 있다. 솔직히 인정..하게 되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특별히 육아나 노인들을 위한 배려면에서 더욱 그렇고, 임금에 비해 그래도 진짜로 살만하니까. 그래서 그렇게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또 자신있게 추천하는 건지도 모른다. 또 그만큼 자기들의 '허용력'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시라기보다 그냥 그렇게 교육이 이루어졌을거라 생각한다. 터부시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본다.





짠- 그럼 이 쯤에서 마무리 :D

두 챕터를 하나로 묶어서 글을 쓰려했는데 생각보다 한 주제당 너무 길어져서 이쯤에서 잘라야겠다! 뿅- 다음에 봐용!








 


 











 



 








#Day241

 in Vancouver

Writer : Hani Kim





2016.06.10


#심상치 않았던 꿈/십자가

#WHOLEFOODS #건강(식도염인건가?)

#새로운 코워커들의 등장(멕시칸, 콜롬비안, 프렌치)

#독자와의 만남(캐나다워홀카페에 연재중인 내 게시판에 댓글을 달아주신 고마운 분, 그리고 지금은 동갑내기 친구!)

#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여행준비(렌터카 알아보기)

#솔직해지기

#정리/심플/미니멀리즘의 미학




위에 꽤 늘어놓은 태그들을 보면 내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충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하며 나답게 참 복잡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대를 인터뷰하며 그들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내가 꼭 하고싶은 것 중에 하나였는데 반드시 하고 갈거야!라고 생각했던 개인 프로젝트가 이젠 사실상 100명을 채우겠다, 이런 목표도 흐릿해진지 오래다. 솔직해지자. 인정하자. 있는 그대로 내 삶의 살아있는 나를 살아내기 위해서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강박관념이 아니라 그냥 '관념'같은 걸 억지로 만들어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욕심 부리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몇 명 정도 외국인을 대상으로는 하고 갈 거다. 꼭!! 왜냐면 정말로 궁금하기 때문에.(오히려 한창 불붙었을 그 때보다 조금 더 진지하게 그들의 삶은 어떻게 다를까,하는 문화적인 차이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

최근 나는 3명의 새로운 코워커를 맞이했다. 새로운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다는건 너무 재밌는 일이고 유쾌한 일이다.

상사를 대하는 태도, 일하는 태도, 코워커를 대하는 태도 등 조금씩 조금씩 각 나라에서 온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인데 그걸 제 3자 입장에서 보는 게 굉장히 흥미롭다. 그들의 눈에 나 역시 그럴 것이다. 그래도 나는 조금 오래 됐으니까 모든 게 좀 편해지고 익숙해진 상태인데 코워커 3명은 사실 스타벅스 내에서 거의 비슷하게 NEW이기 때문에 각자가 다른 게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은 태그 순서대로 글을 써보려 한다.


 


#심상치 않았던 꿈/십자가


6월 5일 주일, 심상치 않은 꿈을 꾸었다. 전 날은 토요일, 요즘 주일에 자꾸 새벽부터 시작하는 풀타임이 잡혀서 일을 나가느라 교회를 가지 못해 토요일 예배에 나가던 3주차였다. 5시간 정도 잤던 이 날. 그 짧은 시간동안 아주 강렬한 꿈을 하나 꾸었다. 일어나자마자 눈물을 흘렸고, 내 왼쪽 다리를 본능적으로 만져보며 안도를 했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고백하게 만든 꿈. 살아있음에, 밴쿠버임에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배경은 일단 나도 모르는 집 방바닥에 그냥 누워있다. 그리고 왼쪽 허벅지부터 무릎쪽까지 정말 깊게 패여 마치 인체의 신비전 속 인간의 다리가 단면으로 전시되어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만큼 굉장히 징그러운 피부, 두꺼운 피부 속 혈관들, 근육들이 내 눈에 선명하다.

나는 매우 겁에 질려 마치 내 다리가 평생 붙지 않을꺼란 듯한 부정적인 마인드에 사로잡혀 있고, 한국에 있었을 때 가끔 심하게 가위를 눌리면 엄마, 아빠를 본능적으로 부르곤 했던 나는 꿈 속에서도 역시 엄마 아빠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근데 정말 이해가 안갈정도로 엄마, 아빠는 밍기적밍기적, 들은채만채.. 느릿느릿 반응하신다. 답답했다. 아니, 도대체 딸 다리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왜 저렇게 태평하시지? 속으로 너무 답답했고 막 눈물이 났다. 하나님,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란 말을 속으로 되뇌이며 겉으론 빨리 119를 불러서 처치해야할 것 같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일반 승용차의 뒷좌석 흔한 검정색의 좌석대에 누운 채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또 다른 배경. 병원이 아니다. 진짜 지금 뭐하자는 거지? 왜지?.. 도대체 왜 난 병원이 아닌 곳에 와있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냥 긁힌 상처가 아니라 다리가 거의 짤릴 것 같은 두께로 깊이 패인.. 그래서 빨리 처치하지 않으면 다리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 그런... 해괴망측한 상황에 있었다. 하나 말하자면 집이 배경일 때 내가 절대 서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에서도 내가 옷을 잔뜩 걸어둔 곳으로 가서 핸드폰을 찾아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부모님보다 오히려 더 걱정해주는 목소리였다. 그 부분을 다시 생각할 때 내가 얼마나 여기서 남자친구를 의지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들더라.

그렇게 다시 어딘지 모르는 그 배경은 꽤 웅장해보이는 교회였다. 정확히 잘 보이지 않지만 직감적으로 내가 십자가 앞에 누워있었다는 걸 알았고, 엄마는 나에 대한 관심은 ZERO인 채로 그냥 십자가를 바라보고 등져 기도중이셨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으셨다. 아팠고 두려웠다. 상처가 군데군데 아렸다. 

꿈이지만 그 느낌은 그대로였다. 실제로 그만큼 찢어졌으면 진짜 훨~~~~~씬 상상불가로 아팠을 테지만 거기선 그냥 전체적으로 따끔따끔 아린 정도. 

그래도 아프긴 아팠어서 일어나자마자 그 상처 확인하려고 왼쪽 다리에 손부터 갖다댔는지도. 내가 눕혀진 곳은 규모가 좀 있는 교회였는지 2층 쪽이었고, 1층쪽엔 예배가 진행중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또 다시 '엄마~'하고 불렀다. 엄마한테 어떻게 좀 해달라고. 그래도 아무 미동이 없으시다.

나는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오른쪽에 어떤 여자 분이 나타났다. 확- 나타난 게 아니라 그냥 슬며시 나타나셨다. 느끼기에 교회 사모님이셨다.

(왜 꿈에서 그런 거 있지 않나, 확실히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은 그런 등장인물이다,하고) 그리고 나를 안심시키기 시작하셨다.

"내가 고칠 수 있어. 많이 아프지? 조금만 더 찢어졌으면 큰 일 날뻔 했어."그렇게 바라던 따뜻한 말을 그 분에게서 듣고는 어떤 빨간색같은 액체가 깊게 패인 상처에 닿기 시작했다. 어떤 도구인지, 손이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꼼꼼하고 부드럽게 발라주셨다. 상처에 그 액이 발리는 내내 아릿아릿..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젠 괜찮을거야."라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신다. 그리고 갑자기 텔레포트를 탄 듯 나는 1초만에 잠에서 깼다. 

다시 꿈을 회상하며 이건 이렇게 해석되고, 이건 저렇게 해석되며 그 빨간약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피. 보혈..일거란 생각이 바로 스쳐갔다.

그러곤 훌쩍거리며 노트를 바로 꺼내 상세하게 이 이야기를 적어가고, 이미지를 그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근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 꿈은 내 신앙생활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꿈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제자훈련 중 서로를 향해 기도하며 드는 마음을 나누던 때 아연이가 내 손을 붙잡고는 '언니, 언니를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뚝뚝 흘리시며 돌아가셨대요'라고 말해주던 순간에 펑펑 울며 같이 기도하던 그 순간, 성찬오빠가 카톡으로 위로하며 공유해주던 영화 2개(부활, 신을 믿습니까?)로 인해 다시 십자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 밴쿠버에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 없이 답이 없는 나란 걸 절절히 깨달으며 다시 신앙을 돌아보게 된 워홀생활, 그리고 이 꿈 이후로 달라질 내 삶. 


하루하루가 왜 영적전쟁인지, 또 정말 직시해야할 문제들. 사회, 경제, 가족관계, 이성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후아아아아. 이 꿈을 통해 그냥 내 깊은 아픔들을 치유하실 분은 오직 한 분이시며, 다시금 내 안에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하는 순간이고 그 어떤 것에 대한 후회나 힘듦도 다 내려놓고 그냥 나는 예수님이 새로 주신 삶에 감사하며 올바르게 살려고 승리하며 그 분의 삶을 따라 살아야함을 느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또 금세 돌아설 수 있는 약한 나라고 매번 고백드리지만... 그런 마음까지도 단번에 돌리실 수 있는, 내 상처를 고치시는 분. 

고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실은 이 꿈을 꾸기 전 날 토요일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이 힘들었다. 인간관계를 하면서 내가 그 사람을 진짜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내 마음은 지금 어떤지 그런 걸 돌아보는데도 지쳤음을 느꼈다. 많이 무력해지기도 했고, 나에겐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냥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드렸다. 하나님, 지금까지 살면서도 늘 말했지만 저는 둔합니다. 늘 고쳐주시고 말씀하여주셔도 알아듣질 못합니다.

금세 죄를 지을 수 있는 약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셨지만 그럼에도 자꾸 넘어지고 의심합니다. 도와주세요. 도망가도 하나님 품인 걸 압니다.

그냥 저에게 어떻게든 보여주세요. 하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이끄심을, 하나님의 사랑을요. 꿈에서든,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하나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걸 증명해주세요,라고 어리광을 부렸었다.


그리고 그 꿈을 꾼 것이다. 물론 저렇게 기도할 때마다 보여주시지 않는다. 때로는 내가 정말 의지하는 나와는 많이 다른 똑부러지는 교회 언니를 통해서,

더 하나님의 마음에 민감한 그런 좋은 언니들을 통해서, 친구들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도 많다.


그 이후에도 많은 유혹은 있지만 잘 이겨내고 있다. 그래봤자 그 이후로 5일밖에 안 지났지만, 나는 계속 싸워갈 것이고, 다시 무너졌던 내 마음과 일상의 습관들과

또 무뎌진 비전에 관한 마음들, 균형잡기 등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려고 다시 내 힘이 아닌 그 분의 힘에 의탁하며 나아갈 것이다.

꼭 그러고 싶다. 내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모든 영역에 있어서 생기는 문제들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맞지만 그것보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바라봐야한다는 말이 정말 맞다. 예를 들어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정말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슬리브를 끼우거나 컵뚜껑을 씌우기도 힘드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고 서비스하는 것은 서비스정신에서 나온다기보다 더 낮아지려하는, 그 분을 닮아가는 내 삶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 삶에서의 행동과 생각들을 고쳐가다보면 후회보다는 감사의 흔적들이 많이 남는 인생이 되지 않을까한다.


또 길어질까봐 여기서 끝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그의 눈이 머무는 곳은 나의 슬픔과 고통 
고갤 들어 그의 눈을 볼때에 난 알았네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예수 나의 좋은 치료자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은 나의 상처와 아픔 
영원히 흐를 것 같았던 눈물 다 멎었네 
예수나의 치료자 


나 노래하리라 
천한 나를 돌아보신 구세주를 찬양해 
하늘 닿는 곳까지 내 손 들리라 
예수 나의 치료자 





나 넘어지고 흔들리지만 주님 내 안에 거하며 나를 붙드시니

내 생각을 주께로 돌리고 주시는 평강의 옷을 입습니다

주 약속 안에서 내 영혼 평안해

내 뜻보다 크신 주님의 계획. 나 신뢰해

두려움 다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해

주 안에서 내 영혼 안전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예전에 이 말씀은 분명 기본되는 말씀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조금은 지루하게 많이 듣던 그런 말씀 중 하나였다.

가장 중요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랬다. 그러면서 겉으론 엄청 신실한 교회 누나였다. 물론 마음은 그랬다.

그러나 지금와서 다시 돌아보는 건 부끄러운 나의 그 때의 모습, 또 다시 여기서 이 말씀을 새롭게 느껴지고 절절하게 느껴진다.

감사하다 :D 감사합니다! 감사하자. 







#WHOLEFOODS #건강(식도염인건가?)


요즘 내 스스로 솔직해지려고 많이 노력중이다. 내 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가서 내가 열정적으로 할 일을 찾고, 잡을 찾는다한들 나는 그걸 뒷바침해줄 건강한 몸과 마인드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을 스스로 한 지는 2-3년 된 것 같은데, 어쩌면 소화기관에 문제가 있는 이후로는 계속 생각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 문제이기도 했는데 지금와서는 이게 내가 하고싶은 일을 시작도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중요한 사실에 직면한 듯 하다. 


속은 계속 안 좋았고, 잦은 트름도 계속 되었는데 한약을 두 달 먹으면 되겠지(하루에 2번 먹어야되는데 아깝다고 1번 먹었었다ㅜㅜ 밴쿠버 오기 전 이야기), 또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급 생긴 변비증상이 만성으로 자리잡으면서 숫자로 세보니 무려 8-9년은 그렇게 위장이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던 걸 이제서야 다시 직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로 심각하게 말이다. 이러다간 정말 일하기도 힘들겠다, 이런 마음. 한국에서 야근을 하거나, 더 불규칙적이게 생활하는 환경에 놓이면 난... 그냥 일찍 죽겠다 싶은 그런 위험한 수준의 두려움에 이르렀다.


그래서 위장에 좋은 양배추를 갈아먹든 조금씩 먹든 열심히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과 맛물려 사실 밴쿠버에 온 이후로 여기 사람들이 아시안보다는 아무래도 지방이 많고 그래서 비만을 많이 볼 수 있듯 반대로 그것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여기저기에서 유기농을 외치고 유제품 중에서도 락토스 프리, 빵 중에서도 글루텐 프리를 그렇게 선호하는 문화에 나도 서서히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게 된 WHOLEFOODS.. 홀푸즈는 정말........ 오가닉 먹거리의 천국.(이말인즉슨 사실 어느정도 꽤 사는 부유층만이 이 곳에서 글로서리 쇼핑을 한가득 할 수 있다는 것도 뜻한다. 노프릴스에 가느냐, 홀푸즈에 가느냐.는 한국에서 홈플러스나 이마트에 가느냐, 롯데마트에 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가닉을 고집해야하는 이유. 건강한 먹거리르 우리 한 명 한 명 스스로가 관심갖고 그렇게 식단을 바꿔가야할 필요는 우리의 경제적 상황과 상관없이 무조건 YES라는 것. 그만큼 현대인들은 패스트푸드에 노출되어있고, 돌아보면 나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조차 몸에 좋지 않은 각종 안 좋은 군것질로 내 몸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도 자연스러워져서 과자, 사탕, 젤리, 등 이런저런 스낵을 내 입으로 꿀꺽꿀꺽 잘도 삼키며 지난 20년을 살아냈다.

아마 7살까진 그래도 그렇게 심하게 안 좋은 음식은 먹지 않았을거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경제적활동을 할 수 있는 시기(아르바이트)를 맞이하면서 그게 더 심해졌을거다. 사먹고 싶은 건 사먹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부모님 세대때부터도 그렇다. 감사하게도 엄마는 직접 손수 요리를 많이 해주셨지만, 그럼에도 간식거리(도넛, 빵 등)는 끊기지 않았고 우리는 엄마의 요리만으로 만족하기엔 이미 너무 안 좋은 음식에 많이 노출되었다.



그.래.서! 그냥 흐름을 따라가려고 건강하게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 빌린 책 '나는 살기 의해 자연식한다'라는 어떤 암투병하신 분이 낸 책처럼 정말 이젠 내가 잘 살기 위해, 또 내 가족들이, 친구들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올바른 먹거리를 지향하는 것. 그럴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이젠 실천할 때라는 걸 느낀다. 더 이상 야근하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로 초콜릿을 찾고 아무 생각 없이 뇌가 시키는대로 단 것을 내 몸에 투여하는 일은...

바라지도 않고, (사실 지금도 침흘리며 초콜릿을 너무 먹고 싶지만) 신앙에 있어서든 어떤 것에 있어서든 나쁜 습관은 버리는 것이 맞다.

훈련해야하는 것이 맞고.(맞는 소리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일단 시도부터, 너부터 잘하자는 생각이 절로 든다.)



마지막으로 다시 홀푸즈는 한국에 들어와야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에 100% 공감할 정도로 너무 사랑스러운 마트이고, 존경하는 마트이지만.

가격이 심하게 비싸고, 또 여긴 그나마 미국 바로 가까이 있는 캐나다라 가능하지만 한국까지 진출하게 되면 그 가격들은 어떻게 메꾸고, 또 그에 따른 파장은 어떨까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래서 그런 좋은 마트들이나 좋은 생산품이 많아지고, 또 그걸 소비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것들이 시민에게 부족함없이 채워지고, 유기농업 역시 살아나야하며, 불필요한 단계를 줄이고,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생기는 비리라든가.. 그런게 많이 사라져야할 것 같다.

아빠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농업이 대세다.' 농업이 얼마나 중요해지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죄송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빠의 뜬구름잡는듯한 아이디어들은 사실 아빠가 20대의 열정넘치는 대학생이었다면 이 시대의 청춘이었다면 오히려 받아들일만한 아이디어들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인문학을 중히 여기는 이 시대에 시조 짓기가 베어있는 취미였고, 책 읽기를 좋아하며, 아이디어가 샘솟는, 또 그림까지 기가막히게 잘 그리시는 아빠.

(.....이렇게 쓰고보니 아빠랑 뭔가 합작품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가 또 스물스물 올라온다.) 




그 말이 틀린 말씀이 아니었던 걸 느낀다.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의식주의 기본을 '빠름'이라는 문화로 뒤덮어버리면 얼마나 우리 인간 스스로에게 악영향을 그대로 끼치는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아프니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리고 열정만 가지고 하고싶은 일에 뛰어들면 그걸로 너무 행복할 것 같은 마인드는 여전하지만 그것에 삶의 균형이라는 것이 빠지면 그냥 일순이가 될 수도 있겠다싶다. 일에서의 의미도 내 삶에 균형을 찾으며 찾아가는 것이다.

일은 일, 사랑은 사랑, 인간관계는 인간관계라기보다 그냥 통틀어서 하나의 삶이라고 보는 관점인데 그 각각의 균형이 맞을 때 하나의 가장 나다운 나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잘 누리며 살아가는 것과도 연결된다. 주신 것들을 잘 누리는 방법은 그걸 함께 보존하며, 아끼며, 사랑하며, 또 잘 관리하고 그 순리를 거스르지 않을 때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고로.... 동물도, 식물도, 인간에게도, 늘 관심과 사랑을 주어야한다는 것.


이 글을 우연히 읽고 있는 당신 역시, 나처럼 위장에 문제가 확실히 있다거나.. 아니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의식주에 대해 관심이 더 깊어졌고 이제부터라도 좀 고치고 싶다면 함께 시작부터 천천히 연습해가보는 게 어떨까요? :D

식전 양배추가 포만감, 위장에 그렇게 좋다네용! 고고고고!!! XD (........다 필요없고 한의원 가고싶은 마음 굴뚝...통장엔 한국 돌아갈 비행기값만 딱 남아있는 상황이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ㅎㅎ)





앞에 써놓은 태그 순으로 시간나는대로 블로그 역시 차근차근 천천히, 내가 지치지 않도록 글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급정지모드)

아래쪽 태그를 보면 심플, 미니멀리즘 이란 단어가 있는데....... 말하기, 읽기, 쓰기, 심지어 듣기, 보기에 있어서도 'SIMPLE'. 그냥 사람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SIMPLE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 다 같은 이야기인데 내가 진짜 제일 못하는 게 그런건데 이제 정신 단디 차리고 고쳐먹을 때가 왔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