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_licious worlD

몇 년만에 소설책을 읽은 지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학에 입학한 이래 몇 년간 자기계발서 위주로 독서를 해왔다.

대학기간 4년, 아니 휴학기간까지 포함해서 총 6년 반동안 나는 도서관을 꽤 열심히 다녔다. 주변 사람들이 '넌 책을 많이 읽잖아'라는 생각을 갖게할만큼

도서관 출입은 잦았으나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내가 빌린 책들은 거진 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책 위주였고, 나를 고치기 위한 책들로 가득했다.

아, 또 하나 자주 빌린 책은 '여행서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것도 그렇게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그리고 또 몇 개의 책은 어줍잖게 에디터 지망생 티를 낸다고 또 패션이나 뷰티에 관한 책을 읽었었다. 물론 지금 내 머릿 속에 그 잡다한 지식이 들어있지는....않다. 손에 든 책은 많았지만 사실 그 책들 중 내 영혼을 살 찌게 한 책보다는 꿈을 키우기 위한 책들이 많았다. 시간 많을 때, 과제로 가득찼던 그 대학시절. 스펙 스펙하며 스펙업 카페를 열심히 뒤지며 각종 서포터즈에 목을 맸을 그 때로 다시 돌아가서 책 읽기에 집중했다면 지금 내 머릿 속 지식이나 내 영혼은 조금 더 유익한 것들로 가득차지 않았을까 싶다.

그치만 후회하지 않는 것은 자기계발서를 통해 나 스스로 더 많이 나아진 걸 느꼈고, 그 때 각종 강연을 들으러다녔던 나의 열정 역시 스스로 높이 사고 싶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의 소심함을 극복하려고 정말 열심히 발버둥치면서 살아왔구나,싶다. 그래서 더 손에 잡히게 된 책이 자기계발서였나보다.

이제 왜 그 책을 그렇게 찾았는지 알 것도 같다. 물론 아직도 더 인생의 지혜를 배우고 싶어 자기계발서를 읽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젠 좀 더 '작가'가 쓴 그들의 '스토리'를 깊게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또 하나는 역사. 역사에 대해 정말 무지해서 스스로 너무나 부끄러웠는데 그걸 고치려는 노력은 1도도 해오지 않았기 때문. 다행히 내가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고 있는 이 곳 캐나다 밴쿠버에는 공공도서관이 무지막지하게 잘 되어있고, 지역지역마다 고루고루 도서관이 하나씩은 꼭 있다. 이 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서관카드를 만들어 무료로 책부터 시작해서 DVD, 프린트 시설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지난 5개월동안 내가 너무 도서관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와서 1년동안 책만 읽어가도 1년 잘 살고갔다고 말할 수 있는건데 말이다. 여튼 나는 오늘부터라도 내가 여기와서 읽은 책, 읽게 될 책들에 대해 리뷰를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워낙 잘 까먹는 애다보니.. 그런데 감사하게도 기록을 그만큼 좋아하는 애다보니 :)




책을 읽는다는 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도 참 좋은 일이다. 포기해선 안되는 것 중 하나이다. 왜냐면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사람을, 다른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생각을 넓혀준다는 말은 아마도 그래서.. 그래서 있는 말인가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을것만같은 그런 마음이 생겼고, 마음이 생겼다는 건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 또 그렇게 하고싶은 용기를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갇혀있는 생각을 내려놓고 그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그게 말처럼 정말 쉽지가 않다는 걸 이 곳에 와서 많이 느끼고 있다.

특히 가까운 부모님, 동생들 마음 하나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내가 타인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고 용기를 주는 것. 

그게 책의 역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자, 그럼 오랜만에 리뷰를 해볼까.



한 달 전 밴쿠버 공립도서관 중에서도 제일 크고 멋있는(콜로세움형식의 건물이라 관광와서 그 앞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가는 유명한 곳) 다운타운 도서관에 갔다. 책을 빌리고 싶어서였다. 사실 여기와서 처음에 도서관카드를 만들었을 때만 해도 '영어책 빌려봐야지~'했는데 영어책은 무슨... 미국 드라마도 본 지 꽤 되었던 지난 날. 내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려면 뭐라도 읽어야겠다,싶어서 무작정 간 곳. 한국책이 두 개의 커다란 진열대는 채워져있는 것 같다.

일본책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 외에 여러 나라의 책들도 빼곡하다. 사실 처음 그 곳에 가서 한국어로 된 한국책이 많은 걸 보고 놀랐었다.

아.. 정말 여긴 다문화국가구나. 확실히 그들을 위한 존중도도 높은 국가구나. UBC도서관에서는 심지어 한국책을 관리할 사람도 찾던데..

다운타운 도서관 역시 아시안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 도서관 이야기는 여기까지하고, 책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별 생각없이 그냥 소설책도 읽어보고싶다,하는 마음에 두근두근 내 인생, 신앙서적 하나, 초딩용 역사책 하나. 그렇게 세 권을 빌려왔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란 이 책은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로 알고 있었던 책이었다. 제목 자체부터 휴머니즘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떤 스토리인지 전혀 모르지만 그냥 찡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읽어보니 역시 그랬다. 그러나 '환자'에 대한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간단히 말하면 점점 늙어가는 병을 가진, 그래서 위와 장 역시 노인처럼 급속도로 늙어버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겪는 그런 합병증을 겪어야하고 외모마저 이미 그렇게 늙어버린 열 일곱살의 아들과 그걸 지켜봐야하는 서른 중반의 엄마, 아빠. 그들의 아프지만 따뜻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조금 더 휴머니즘에 가까운 정말 티비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힘든 이야기지만 사실 우리의 삶 역시 그것과 비슷한 것이라 느끼게 해준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도 그 사람 나름대로 힘든 것들이 있겠지만, 지극히 서민적인 나의 인생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너무나 팍팍하고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이 부모의 인생에도, 우리 자식에게도, 또 정말 많이 아파서 인생을 포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도 있다. 

예술 그리고 그 중에서도 문학은.. 어찌보면 많이 가진 사람이나 적게 가진 사람이나 그 표현에 있어서는 '자유'를 주는 선물같은 도구이기에 더 가난한 자, 약한 자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도구인 것 같다.





감정적인 이야기


이야기의 끝으로 갈수록 자꾸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모르는 그분들의 이야기는 어땠을까.

손자를 보며 본인들의 늙음을 더 받아들여야했을 때 그 감정은 어땠을까. 또 내가 그런 날이 올 땐 어떨까. 아니 이런 생각 이전에 우리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결혼했을 때. 아이를 낳아야할 때. 늙어가는 부모님의 얼굴을 봐야할 때. 또 늙어가는 내 손을 바라봐야할 때. 그 모든 것들이 적정한 시간대에 따라 흘러가고 있음에 감사하는 것도 감사하지만.. 나는 그 늙어감에 대해 정말 집중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에를 들어 책 속에서 설명하기를 '늙어간다는 느낌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겠니?'라고 어떤 작가언니가 아름이에게 참 난감한 질문, 질문하기도 미안할 수 있는 그 질문을 들이대는데.. 그 때 아름이가 이야기해줬던 것 중에 하나가 어떤 여대생들이 쑥덕거리는 걸 들었는데 그 중에 한 학생이 교수님을 좋아하는데, 언제 한 번 그 교수님이 자기의 뺨을 어루만지듯 그렇게 터치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촉감때문에 너무나 놀랐더라는 것이었다. 흐물거리는 촉감에 놀랐다..는 것인데 거기서 아름이는 뒷통수를 때리는 말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서 어떻게 그것 가지고.. 그렇게 한 번에 마음이 식을 수 있냐는 것.



꼭 영화 속처럼.. 나도 내가 눈을 감고 떴는데 흐물흐물한 손을 가지고 있더라면.. 어떨까?

참 서글플 거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속된다면.. 정말 괴로울 거다. 그런데 다행히 아름이는 너무나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

그리고 그 아이 속에 비록 아프지만 자신의 말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자기의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들어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었다.

몸은 늙었지만 여전히 아이와 할아버지 그 사이에 갇혀 이런 저런 생각을 다 할 수 있던 아름이는 뭐랄까, 지혜로운 아이였던 것 같다.

적어도 나보다 엄마와 아빠를 더 이해할 줄 아는 그런 아이. 미생을 봤을 때 '남자'입장에서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서는 아름이의 시선을 통해 부모의 삶을 조금은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부모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에 담긴 지혜를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다면.........하는 후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든다던데....

나 역시 그걸 느끼고 있다. 할머니가 사랑하는 손녀와 손자를 위해 직접 생곱창을 사다가 요리해서 먹이던 그 순간의 외할머니를 그 조그만 소녀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 수고를 어떻게 감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 지나고보니... 그런 순간순간의 할머니의 사랑이 더 깊게 느껴진다.

또 캐나다에 오기 전 일주일에 한 번씩 뵈러 갈 때마다 안아드렸던 할아버지의 조금은 더 앙상해진 그 뼈들도. 그 때 그 순간 더 깊게 느끼고 더 잘해드렸더라면.

돈 아끼지 않고, 내 용돈을 줄여서라도 할머니 할아버지께 작은 선물이라도 계속 해드릴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더 좋은 손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이 책과 함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삶을 떠올려본다. 손녀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몸져누워계신 외할머니. 정말 '어..'소리도 내기 힘드신.. 앞으로의 남은 생 역시 밥을 링겔로 드셔야하는 그 상황에 놓이신 우리 사랑하는 외할머니도 얼마나 두려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지금 역시.. 얼마나 두렵고 힘드시고 외로우실까. 매일같이 오시던 외할아버지가 어느날부턴가 오지 않았을 때..

그 때 그 때마다... 어떻게 견디실까.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돌아가셨다는 걸 직감하셨겠지만... 그 때 그 감정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아직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계실까. 당연히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분이시지만 말이다. 그냥 그 작은 감정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눈물 없이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떠한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엄마 아빠 곁에 붙어있을 수 있을만큼은 붙어있고 싶다.

얼마전 꽃보다청춘 아프리카편에서 박보검이 그랬듯.. 정말 앞으로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떨어져있어보니 그분들의 수고를 더 느낀다.

설명하기 힘든.. 그 서로 밀고 당기기하는 그 삶에서 우리가 진짜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것은 '사랑'이고 '관심'이고 사소해보이는 것들이지만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더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마지막 하나 더 말하자면, 나는 인간의 성장. 그러니까 태어나서 기어 다니는 법을 배우고, 말을 배우고, 학교를 가고, 친구들을 사귀고, 꿈을 꾸고, 그러다 눈 맞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고... 그래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느낀다.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우리가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는 게.. 정말 늦게라도 그걸 느끼고 죽는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감사한 일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정말.... 으아아아 밴쿠버 인테리어 가게에서 봤던 아트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Don't plant anything but LOVE."라는 글씨로 만들어진 꽃이었다.

그 말이 백 번 옳다. 사랑... 사랑... 그 사랑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건 교만일 뿐이다 :) 더 내려놓고 사랑하는데 힘 쓰자.







또 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


어줍잖게 10대 인터넷 소설을 표방하며 신화의 이민우가 주인공이었던 팬픽을 끄적였던 적이 있다.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그래도 그 때부터 난 어떻게든 글을 쓰고 있었다는 게 내심 귀엽기도 하고, 그렇게라도 글쓰기를 이어갔던 것에 뿌듯하기도 한데.. 

영화를 보고 소설로 읽고싶어 읽었던 트와일라잇같은 것.. 빼고는 정말 오랜 기간동안 딱히 제대로된 소설을 읽지 않았던 나는 소설가들의 표현을 그만큼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 한국말인데 모르는 표현도 많았을 뿐 아니라.. 같은 하늘을 보고도, 같은 계절을 살고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해내는구나. 느끼는구나. 하고 정말 '존경심'이 절로 생기게 만드는 표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유난히 '바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 작가에겐 '바람'이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무언가 생명력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을 말하는 걸까. 사랑을 말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바람'이란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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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라 칭할 때, 네 개의 방위가 아닌 천 개의 풍향을 상상하는 것. 배신이라 말할 때 지는 해를 따라 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쫓아가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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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곳곳에 색을 얹으며 계절을 완성하고 있었다. 그 색에 제일 먼저 물드는 건 여자들이었다. 그 물이 가장 늦게 빠지는 건 남자들이었다.

여름은 색이 많아 좋은 계절이었다. 여름은 색이 발해 힘센 계절이었다. 그리고 그 색은 고스란히 강물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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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와닿았던 이야기 중 하나



"부모는 왜 아무리 어려도 부모의 얼굴을 가질까?"


"자식은 왜 아무리 늙어도 자식의 얼굴을 가질까?"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그렇게 써놓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누구도 본인의 어린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 내가 젖을 물었구나. 아, 나는 이맘때 목을 가눴구나. 아, 내가 저런 눈으로 엄마를 봤구나,하고.

자기가 보지 못한 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 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면 세살 무려부터 늙기 시작한 아기를 가진 우리 부모님은 나를 통해 무엇을 보았을까....

곧이어 나는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

불행히 그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베이비시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부분이 바로 저거였다. 우리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고.. 그럼 나 엄마한테 훨씬 더 잘하면서 살았을텐데-하고 말했던 내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엄마 옆에 누워 훌쩍거리게 만든 그 아르바이트. 그러면서도 그렇게 하면서 다시 내가 자라온 과정을 내 아이에게서 볼 때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일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이 책에도 있던 거였다. 백 번 공감.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건 자기자신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는.. 그것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특권. 또 자신의 부모를 이해할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인 것이다.



하느님은 왜 나를 만드셨을까,하고 저 단문이 끝나는데.. 우리도 늘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던지지 않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또 내 자식을 보며 부모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자식을 이해하며 살게 되어있다.. 왜 나를 만드셨을까.. 그 끝에 가보면 그냥 답은 사랑인 것 같다. 사랑.. 사랑.

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한 걸 보고 싶어 만드시지 않았을까. 아름이 역시 그 부모들에게 사랑이었듯이 말이다. 






딱 한 부분을 더 옮겨 적으며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또래 아이들이 가장 부러울 때가 언제냐고 묻는 작가의 말에 아름이는 이런 대답을 한다. 정말 많은데 최근 티비에서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데 거기서 떨어진 친구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으로 안기는 그 모습이 자기 눈엔 세상의 상처를 다 받은 것으로 보였다고. 근데 그 순간 그 애들이 무지무지 부러웠다고.

그 애들의 실패가 부러웠다고 말하는 아름이.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그 애들, 앞으로도 그러고 살겠죠? 거절당하고 실망하고, 수치를 느끼고. 그러면서 또 이것저것을 해보고"

"아마 그렇겠지?"

"그 느낌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 그러니까... 저는... 뭔가 실패할 기회조차 없었거든요."

"......."

"실패해보고 싶었어요. 실망하고, 그러고, 나도 그렇게 크게 울어보고 싶었어요."



이 부분이 또 내 마음을 울렸다. 하니야, 충분히 많이 실패하고 있지 않니. 그걸로 감사한 적이 몇 번이나 되었지?

밴쿠버에 왔는데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불만 불평하기 바빴지, 힘들다고 울기 바빴지.. 

그것들이 실패라고 생각했을 그 순간마저 너의 일생의 소중한 부분이란 걸 왜 잊었니..하고는 말이다.



더 돌아보고, 더 감사하고, 더 만족하며 살고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더 나아가서 아픈 사람들과 함께.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그들을 돌아볼 만큼 내 안에 여유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 아니 여유가 없어도 여유가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늘 엄마에게도 해드리는 말인데.. 정말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것. 그 누구한테 말할 수 있을까, 나부터 하자, 나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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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날이었던 4월 25일. 이 날을 회상하며 글을 쓰기 전, 솔직하게 고백한다. 난 지금 여행앓이중이다. 

빨리 돈을 모아, 캐나다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워홀 합격레터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별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 왜 이렇게 느린거지.. 세컨잡도 구해야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돈 문제라 일단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지만, 여행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달까. 최대한 더 많은 곳을 돌아보고싶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호주로 워홀을 다녀온 현아선배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왔다.

늘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거기서의 삶 역시 알바인생과 크게 다를 것은 없을거라는 것. 외국에 가서 생활해야만 꼭 특별한 삶이 있고 그런 건 아니라는거다. 언니와의 대화는 인터뷰 프로젝트 때 자세히 얘기하고 싶으니 아껴두기로 하고..

난 지금 현실과 내가 떠나있게 될 삶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걸쳐있는 느낌이다. 전혀 조바심 낼 필요없고, 이미 결정한 일이니 믿고 나아가면 될 것을. 답답하지만 이런 나를 달래고, 기다려주고, 푸쉬해주기로 했다. 빠샤빠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두번째 날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아침 6시,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눈이 번뜩! 떠졌다. 그 이유는... '난 프랭크를 DMZ에 꼭 데려가야만 해!!!!! OH MY!!!'

가이드마인드가 내 맘 깊은 곳에서부터 날 압박했기 때문이다. 사실 DMZ는 우리가 만나기 전부터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나왔던 얘기였다. 금요일에 DMZ투어를 갈 예정인데 같이 가겠냐고 묻는 프랭크에게 아쉽지만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미안하다며 거절을 했었다.

 

그리고 첫째 날, 우리는 한강에 다녀와 지친 몸으로 다음 날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내 생각으로는 DMZ는 이미 물 건너갔고, 시티를 중심으로 돌아야하지 않을까했다. 워드파일로 정리해둔 여행지를 같이 보는데 서울아트센터가 있었고, 나도 정확히 알고 있는 곳은 아니어서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다시 DMZ 이야기가 오갔고, 시간 체크를 해보니 하루에 1번 오전 10시 반에 갔다가 오후 5시가 넘어서 서울역에 도착하는 스케쥴이었다. 사실 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교회에서 순장모임이 있었기에 프랭크와 어딜 다녀오든 4시 전에는 빼고 얼른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딱 보기에도 프랭크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DMZ였다.

 

"여기가 다른 데 가는 것보다 낫지?"

 

"응, 그렇지. 근데 가능해? 갈 수 있어?"

 

괜찮겠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너무 가고 싶은 느껴져서 '가자!'하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프랭크가 보고 있는 코레일 사이트와, 내가 접속한 코레일 사이트 상에서의 공지된 DMZ train 시간이 맞지 않았다. 오마이갓ㅠㅠ.. 그래서 우린 일단 가기로 하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시간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 시각이 11시가 조금 넘을 때였고, 나는 약간의 걱정을 안고 방으로 돌아가 DMZ train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피곤하지만, 눈이 빠질 거 같지만, 난 해야만 해!!!!!!!!!!"

 

다시 오버랩되는 꽃보다할배의 가이드 이서진-최지우팀ㅎㅎ..요즘 한창 그리스편을 재밌게 보고 있어서 자꾸 내가 그들이 된 것 처럼 느껴졌다. 고백 하나. 난 은근히 그 포지션을 즐기고 있었다.(ㅡ.,ㅡ)

 

 

결국.. 난 새벽 1시에 잠들었고, 6시에 일어났으니 5시간을 잘 수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 걱정걱정하며 알아본 후에 내가 그렇게 찾아헤맸던 정보는 코.레.일.앱.다.운.로.드 하나로 해결할 수 있었던 아주 간단한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난 왜 진작에.. 앱을 들어가보지 않았나..'하고 진짜 옛날 사람같다며 투덜거리다가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계속 오전 8시30분쯤에 있는 첫번째 기차와 오후 2시에 있는 마지막 기차 시간을 몇 번이고 확인하다 잠들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인터넷검색에 또 인터넷검색을 하며 차편 확인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프랭크에게 7시30분에 일어나면 9시30분꺼든, 10시30분꺼든 우리는 문제없이 탈 수 있을거라하고 알람시간을 맞추라했건만.. 첫 차 시간이 8시30분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깨우지 않으면 첫 차는 무조건 못 타게 될 상황이었다.

당장 그날 밤에 공항에 가야하는 프랭크가 조금 부담될까봐 2번째 차를 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깨울까 말까 고민하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냥 '오후 2시에 가도 집에 8시30분 안으로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가게하면 되지' 하는 혼자만의 결정을 내리고 더 자게 두었다. 그리고 난 ...? 피곤하고 피곤한데....더 눕고싶은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폭풍 화장을 했다. 쌩얼에 안경을 끼고 아침부터 퀭-한 얼굴로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여잔가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서는 퀭한 눈을 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 잠깐! DMZ train 예약 Tip.

 

http://www.letskorail.com/ or 코레일 앱을 통해 쉽게 승차권 예약이 가능하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

 

 

위에 있는 공지글 안내 시간을 믿으면 안된다는 것 -> 티켓 예약하기 버튼을 눌러 제대로 확인하기

지금은 이렇게 8시 35분, 14시 9분차가 도라산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로 알고 있다.

 

 

추가로 DMZ pass, DMZ train 등 여러 프로그램들이 묶어진 것과 그렇지 않은 기차표로 나눠지므로 제대로 체크해볼 것

 

무조건!!!! 왕복으로 끊고 출발해야한다. strict하지만 이게 룰이다!

도라산공원, 전망대, 땅굴체험에 관련된 안보관광티켓은 도라산역에 도착 후 끊을 수 있다. (그러므로 티켓 외 추가비발생!)

여기서도 땅굴체험시 들어가는 셔틀승강기를 이용할 건지, 아니면 도보로 이동할 건지 선택해야하는데

그 날 함께 온 여행객들에 따라 배려가 필요한 노약자분들부터 먼저 받기 때문에

대학생들, 어린이들이라면 도보로 땅굴 깊은 곳까지 30분정도 걸어야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여유가 있다면, 우리도 이용할 수 있다.(하지만 이거 꽤 힘들고, 운동만큼 땀 빼주는 효과가 있다.)

 

 

(2015년 5월 2일 토요일 기준 - 코레일 웹사이트)

 

 

 

 

 

 

 

깨알정보를 뒤로 하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기! 뿅! :-)

 

메이크업도 했고, 스케쥴 확인도 했고, 이제 내가 할 일은 프랭크가 일어나면 이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침 7시 반이 지나도 열리지 않는 강산이의 방 문.

'그래..피곤하겠지ㅠㅠ깨우지 말자...'하고 난 내 방으로 돌아와 누워버렸다. 뒹굴뒹굴. 잠도 못자고, 그저 뒹굴뒹굴.

 

그러고 있는데 프랭크가 깼는 지 엄마와 뭐라뭐라 대화화는 게 들렸다.

 

 

"하니야!!~~~ 얼른 일어나! 얘 일어났다! 밥은 어떻게 할 건지, 지금 바로 먹을 건지 물어봐! %#$&#"

 

프랭크의 움직임이 하나 시작되면, 우리 엄마의 반응은 두개가 시작되는 느낌. 

 

'사위 데려오면 장난아니겠다..'

 

 

 

 

그 날 아침, 우린 등갈비를 먹었다. 참외 장아찌, 오이, 나물, 각종 과일 등 언제 이렇게 아침에 잔칫상을 차려먹었지 기억도 안나는데 프랭크 때문에 나까지 덕보는 느낌이 들었다. ( 이 느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나도, 내 동생들도.. 프....프랭크 고마워..^ㅇ^)

이 날 아침 나는 소화가 잘 안되서 부담스러웠는데 다행히 프랭크가 앞에서 냠냠 잘 먹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모든 엄마들이 자기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싹싹 긁어먹는 아이들을 보고 보람을 느끼듯, 엄마 역시 잘 먹는 프랭크를 보며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침에 빵, 버터, 잼 그게 다야. 아니면 누텔라 알아? 근데 여기는... 우와.."

 

완벽한 식사였다고 계속 '난 완전 행운아임!'을 외쳤다.

 

그리고 여기서 '잼'을 '잠'으로 말하는 데 내가 계속 못 알아들어서........결국 스펠링확인까지 하게 된 웃픈 스토리가 있다..ㅋㅋ

 

"잠? 잠이 뭐야?"

 

"음... 잠~~ J A M"

 

"아............잼?..........ㅇ_ㅇ"

 

 

푸짐한 아침을 먹고, 오전 스케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너무 피곤해서 그걸 숨기지 못하고 "나 너무 피곤해..ㅎㅎㅎㅎㅎㅎㅎㅎ"하면서 피곤한 티를 다 냈었는데, 그래놓고는 어린이대공원에 가는 건 어떻냐고 제안을 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피곤했어도 그냥 좀 덜 피곤한 척 할걸~ 이왕 갈거면 나도 걔도 기분 좋게 그럴걸!"하는 후회도 남는다.

피곤하다는 나에게 "가자! 가자!"할 수는 없었을테고, DMZ만 가도 자기는 상관없다고 계속 말했지만, 우린 그 얘기를 한 지 1시간 후 대한민국의 어린이가 다 몰린 마냥 정신없었던 어린대공원 동물원 한 가운데서 원숭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엄마, 나, 동생2명, 그리고 프랭크까지 총 5명인데 너무 감사하게도 택시아저씨가 한 번에 태워주셨다. 버스비보다 훨씬 저렴해서 좋았다.(불법ㅡ.,ㅡ) 프랭크는 앞에, 우린 뒤에 몸을 웅크리고 탔다. 외국인이 탄 게 신기한 지 자꾸 번갈아 보시며 질문도 하시고, 말을 걸어오셨다.

 

"어린이 대공원 가는거에요?"

 

"네네ㅎㅎ~~ 외국인 친구 놀러와서 가족들하고 구경가려구요~~"

.

.

.

 

그러다 갑자기 프랭크를 보시더니 "안전벨트 안 하면 맴매할거야!!!" 하는데 조금 말투가 사나웠었다.

당연히 못 알아듣는 프랭크는 뭐라고 하시는거냐고 물었고, "안전벨트 안 매면, 경찰한테 혼난대"라고만 해줬다.

"아, 폴리스.." 근데 또 아저씨가 "난 경찰 아니야. 내가 때려준다고!!! "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는 거다. 그래서 그냥 웃고 넘겼지만, 동생 강산이가 나중에 와서 말하기를 그 아저씨의 태도가 정말 별로였다고 하더라. 친절한 이미지랑은 멀었다.

도심 한 가운데서 타는 대중교통과 동네에서 타는 대중교통을 운행하는 기사님들의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을거다.

혹시라도 이 포스팅을 보시는 기사님들이 계시다면 조금만 더 살갑게 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날씨는 참 맑았다. 햇볕도 우리를 반겨주듯 아주 쨍쨍했다. 대공원을 한 바퀴 돌며, 꽃도 보고~ 동물원도 가고~ 미술학원에서 실습을 나온 아가들도 보고~ 누가봐도 한 가족같이 소소한 일상을 즐겼다. 특히 동물원에서 시간을 꽤 보냈었는데, 나도 오랜만에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며 옛날에 어린이, 학생 입장에서 봤던 동물원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불쌍한 마음이 컸다.

 

 

 

 

어렸을 때 조랑말을 타는 걸 즐겼고, 어디 여행을 갔더니 원숭이가 툭툭 쳐서 당황했었다는 등등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한 시간 반정도 돌았을 때, 우리는 정자 밑으로 가서 엄마께서 정성껏 싸오신 과일을 보고 또 한 번 감동의 간식시간을 가졌다. 순간 프랭크에게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언제였는 지 기억도 안나는데.. 작년 1년동안 영어공부한다고 학원에서 살았던 나에겐 그런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어린이대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베스트컷을 딱! 남기고 이제는 우리가 ~ DMZ 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며 무슨 얘기를 했었나............기억이 안난다. 기억력이 낮기 때문이고, 사실 지금 5월 3일에 이어쓰기를 하고 있어서..점점 망각한다 ㅜ ㅜ 대신 서울역 도착 이후 흥미로웠던 2개의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1. 대한민국의 성형 그리고 프랑스의 패션

여행은 현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편견을 깨는 것이라 한다. 여행관련 명언을 보다가 우연히 건진 말인데, 정말 공감한다.

지하철, 버스에 있는 모든 성형 광고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 조차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하는 시선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성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스펙을 위해 감행하기도 한다. 이미 성형문화가 대한민국에 뿌리박힌 건 인정한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반대로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잡지를 볼 때마다 프랑스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었다. 우리 집에 있는 패션에 관련 된 책 이름 역시 'French Chic'다. 불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나에게 프랑스에 대해 하나 더 말해보라하면 망설이지 않고, 패션이라 말할 것이다. 궁금했다. 정말 프랑스=패션은 성립할까?

 

"프랭크, 너는 여행다니면서 맨날 같은 옷 입게 되잖아. 근데 평소엔 어때?

 

이런 말이 있잖아. 프랜치 스타일~ 프랑스 사람들은 진짜 다 패션에 신경쓰고 다녀?"

 

"아니지~~!!! 그거 알아? 물론 프랑스인들, 패션 좋아하지! 근데 그냥 사람마다 다른거야.

 

한국 오기 전에 나도 한국사람이라면 다 성형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 이 얘기랑 똑같은거지."

 

 

당연한 이야기. 사람은 다 다르고, 그 안에서 다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화가 대표성을 갖고 그렇게 보여질 뿐이다.

다만 이런 '다름'에 대해 이론으로 배웠을 때, 그 나라 사람에게서 직접 들었을 때의 느낌은 좀 달랐다.

'정말 그렇구나...'하고 진심으로 훅 다가온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가 갖고 있던 편견들이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졌으면..

앞으로 나의 삶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부디 그 안에 있는 진짜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포스팅을 자꾸 끊어 쓰다보니, 저 위에 설명한 2가지의 이야기 중 1개가 이 이야기인 지도 가물가물하다. 이놈의 붕어기억력!

아마도 이 이야기가 맞을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까먹기 전에 후다닥 글을 마무리 지어야지 안되겠다.)

 

 

2. 나는 여전한 길치.

맞다. 나는 길치다. 친한 친구들은 알 수 있다. 내게 방향 감각이 얼마나 없는 지, 또 내 자신도 아주 잘 안다. 너무 잘 잃어서 길을 잃는 것을 그냥 즐기자는 마인드가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DMZ기차를 타는 곳까지 당당하게 안내하겠다고 앞장 섰던 자칭 가이드는 승강장찾기부터 바로 무너져내렸다. '어디로...가더라?' '어디지?'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고 불안했는지'자꾸 여기 맞아? 확실한거지?'하고 물었다. 솔직히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친구 한스 앞에서도 몇 번 그랬었고, 길을 잘 잃기 때문에 길을 찾는 일이 생길 때 느껴지는 부담감도 꽤 있다. 차라리 혼자라면 길을 잃고도, 사진을 찍으러 간다든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므로.. 나는 열심히 묻고, 또 묻고 다른 길로 가야 했다.

 

혹시, 정~말 혹시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안내하자면 기차타는 곳으로 가면 된다.

경의선 방향이 아니라 그냥 기차타는 곳!  KTX도 있고.. DMZ 기차도 있고..(정말 바보같았던 건 몇 주 전에 아는 언니가 대구에 내려갈 때 장난으로 KTX를 탔다가 내린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는 거ㅋㅋㅋ) 이제는 절대 안 까먹어야지!!.....

오히려 프랭크가 더 길을 잘 찾는 걸 보고 역시 여행자는 다른가.......싶었지만ㅋㅋ그냥 내가 길치인걸로^^

 

 

 

기차 안에는 외국인들이 꽤 많았다. 그 때 한국인 한 명이 가이드처럼 인솔하며 다녔는데 영어를 너무 잘해서 그 분이 영어로 블라블라할 때마다 속으로 주눅이 들어있었다. 자꾸 흘끗흘끗 그 여자 쪽을 보며 '우와..' '아, 나도 저렇게 설명해주고 싶은데'하며 프랭크한테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다른 때보다 DMZ에 가는 내내 역사, 문화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했던 게 너무 아쉬웠다. 나중에 프랭크에게 써 준 편지에 더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는데 영어실력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썼었다. 다음 번에 만날 땐, 꼭! 하고싶은 말은 다 영어로 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만나자!!!! 아자자!!!

아, 그리고 또 하나는 아는만큼 보인다고. 아는 게 정말 왜 이리 없는 지.. 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영어실력, 지식이 해박하지 않아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투어였다.. ㅠ.ㅠ

 

 

 

나에게 아쉬웠던 것 말고 DMZ투어 자체에도 아쉬운 부분들은 많았다. 맨 처음에 도라산역에서 내려 안내를 따라 걸으면 도라산 공원이 나온다. 탱크, 통일을 바라는 아이들의 타일 작품, 등 볼만한 것들이 드문드문 놓여져있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 가이드가 한국말로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고 할 때 프랭크는 계속 옆에서 나를 끌었다. "들어가자, 들어가면 안돼? 오마이갓. 다 한국어야. 쓋!" 이렇게 계속 불만을 터뜨렸었다. 나도 영어로 저걸 다 동시통역 해줄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한국말로 끝도 없이 말하던 가이드를 보며 프랭크 입장에선 당연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장소가 장소인만큼, 관광객들 특히 외국인이라면 그 문화를 이해해주고, 이해해줘야하겠지만 도라산 공원같은 경우에는 정말 내 진짜 말투로 표현하자면, '겁나 빨리 돌아본다'. 걸음을 빨리빨리 해야되는데, 잠깐 뭐 하나를 구경하고 싶어 다가가면 이미 저~ 멀리 가있는 가이드분..ㅠㅠ 시간이 정말 촉박하다. 마치 한 관광객으로 한국에 온 것 마냥 돌아야하는 부분은 외국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서로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니 영상 상영관을 제외하고 도라산 공원에서도 영어로 간단히 통역해줄 수 있는 분이 있었으면 더 좋을 거 같다.

 

 

 

그 다음 우리는 버스를 타고 전망대에서 내렸다. 땅굴도 괜찮았지만, 가장 우리의 발을 오래 붙잡아둔 곳은 여기였다. 우리가 닿고싶은 그 땅을 마주서고 볼 수 있는 곳. 그래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 프랭크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랬을 거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사진처럼 망원경을 5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그 곳에서 한 아이가 소리질렀다.

"우와! 아파트도 보여요. 저기~~" 정말이냐고 하며 내 망원경 시간이 끝나서 그 아이에게 나도 보여달라며 다가갔다.

정말 저게 아파트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어디가 어디인 지 구분이 안가지만 위치라도 파악하고 갈 걸 하는 후회와, 또 저 땅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꼈다.

 

 

 

왜 우리는 이 곳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봐야 하는 지, 특별하게 만들어 진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를 건너 듯 출입국사무소를 들려 신원검사를 제대로 받고 와야 하는 건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것. 사실 나는 통일비전아카데미라는 북한과 한국의 통일에 대해 계속해서 기도하는 몇몇 교회연합과 민족사랑나눔에 의해 만들어진 곳에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서기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그리고 2년 전, 통일관광론이란 수업을 통해 현대 아산에서 일하셔서 북한에도 직접 계셨던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타이밍이 맞물려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는 북한과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그 소망을 내 안에 자리잡게 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그들의 진짜 삶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줄어들었음을, 다시 그 사실에 대해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 앞에서 돌아볼 수 있었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던 몇몇 친구들, 바라지만 왜 바라는 지 모르던 시간들, 그리고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일이 아니라는 것 마냥 그저 내 삶을 살아가기 바쁜 나.

정말 신기하게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것 같이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있어 한 폭의 그림같았던 DMZ.. 그 앞에 나는 처음보는 외국인이랑 그렇게 서서 아마도 같은 소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척박한 땅을 바라보는 데 그 가운데 너무 아름다운 땅이 있고, 그 땅은 우리가 함께 견뎌내고, 극복해야할 할 땅이었다.

언제쯤 저길 건널 수 있을까, 금방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그 끝은 언제일까?

 

 

 

블로그에 올리고 싶지만, 올려도 되는 지 몰라서 일단 내 핸드폰에만 소유중인 음성노트가 있다.


"지금은 열차로 갈 수 있는 최북단역이지만, 오천만 국민의 염원인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북을 넘어 유럽으로 가게 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의 출발역이 될 것입니다."

 

(실크로드 :  유라시아(유럽+아시아)를 포괄하는... 부산∼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철도인 SRX)

 

정말 그런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 다음은 땅굴체험 + 영상관이다. 땅굴체험은 정말.. 뭐가 없고 정말 땅굴 그 자체였지만 북한군들이 이 땅굴을 팠을 때의 그 흔적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에 그냥 말로만 듣던 '땅굴이 있다'라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살아있는 체험'은 이토록 중요하다. 책에서 본 유적지와 실제로 그걸 가서 봤을 때의 교육의 차이는 정말 크구나 느꼈다. 살아있는 체험은 이미지로, 영상으로 우리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기 때문이고 , 그걸 통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 앞 쪽에서 DMZ 투어에 대한 설명을 하는 부분에 셔틀승강기에 대한 언급을 했었다. 걷기 힘드시거나, 심장에 문제가 있거나 하시는 분들은 진심으로 말하는데 승강기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 수 있다.

듣자하니, 심장이 안 좋은 분들 중에 말을 안 하고 들어갔다가 숨차서 오시는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웃겼던 포인트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가서 제~~일 먼저 그 끝을 보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뚫려있는 투명 창으로 그 땅굴의 끝을 본 뒤 다시 돌아섰을 때, 다른 사람들은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1등으로 가길 잘했다고 서로 다독였다.

그러다가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잠깐 쉬었다. 땅굴 안이 좁은데다가 남자들의 경우 천장에 머리가 닿기 때문에 숙이면서 다녀야 했는데, 키가 작은 나도 불편했는데, 프랭크는 오죽 불편했을까. 정말 힘들어보였다.

숨을 고르면서 쉬고 있다가 "갈까?"해서 올라가는데 프랭크가 갑자기 점점 속도를 내는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서 진짜 진심으로 "너무했어!!!!!!!!!!!"를 외치고 싶었지만, 따라가기에도 힘들었고, 소리 지르기도 뭐해서 그냥 "그래.. 너 먼저 올라가라, 이자식아"하고 옆에 같이 걷게 된 꼬마아이랑 여유있게 대화하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단체로 왔다는 그 꼬마아이는 계속 땅굴 안에서 "아, 괜히 들어왔어!! 괜히 왔어!!"를 외치며 열심히 걷고 있었다. 갑자기 먼저 휙휙 올라가버린 프랭크가 괜히 얄미웠었지만,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시간도 참 좋았다.

 

 

 

영상관에 들어가면 우리가 봤던 것들을 역사적으로 술술 풀어내는 영상을 볼 수가 있고, 전시관 문이 닫히고 다같이 들어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여기서 좋았던 건 외국인들을 위한 오디오파일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다른 외국인들이 쓰고 있던 헤드셋을 보고 부리나케 인포로 달려가 가져왔건만 이미 누구한테 얻었는 지 여유있게 "어디 갔다 왔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프랭크.

여기서 느낀건데 나는 계속 프랭크에게 배려를 해주었지만, 딱히 표현을 하면서 배려해주진 않았다. 어디가면 어디간다고, 뭐가 있으면 뭐가 있어서 거기에 간다고. 소소하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지만, 프랭크가 답답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DMZ 관광일정은 끝이었다.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참, 버스 안에서 지난 번에 DMZ구역에 불이 한 번 났던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걸 프랭크에게 설명하다가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데 거기서 또 내 한계가 드러났다. "네이X에 물어봐야겠다"하고 검색을 해야만 정보를 전할 수 있다는 것. 편한 데, 그만큼 내가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DMZ관광은 내가 얼마나 무관심하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프랭크가 질문할 때마다 조금씩 긴장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배우자.. 좀 알자!!!!

 

 

 

다시 서울역으로 컴백. 그리고 우린 지나가다가 경주빵을 봤다.

 

"오~ 경주빵~"

 

"유명한거야?"

 

"응. 나도 경주에 가본 적은 없는데 유명하대."

 

"잠깐만! 너네 엄마가 이거 좋아하실까?"

 

"Maybe?"...........

 

은연중에 "Maybe"라는 단어를 쓰다가 알게 된 내 말하기 습관.

기차에서 뭔가를 말하다가 계속 메이비~ 메이비~ 거릴 때가 있었는데 프랭크가 진지하게 메이비사용법에 대해 알려주었었다.

"Maybe"라고 할 땐 yes인지 no인지 너 의견을 말해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원래 우유부단한 성격, 내 한국에서의 말투. 영어도 언어라는 건 1년동안 말하기영어를 하면서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계속 우유부단한 단어선택을 하고 습관처럼 내뱉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래서........저 메이비!는 그 이후로도 유행어처럼 계속 쓰여졌다. 뭐만 하면 자꾸 "이것도 메이비~?"이러면서...ㅎㅎ

 

 

 

"사진 찍을래?"

 

"아니. 포즈 좀 취해봐! 이런 거?"

 

그래서 찍은 사진. 그래서 나도 찍어주겠다고 너도 같은 포즈를 취해보라했더니......

 

"No~~~~~~No~~"거리는 프랭크.

 

DMZ에 다녀오면서 유독 더 친해진 것 같은 느낌. 정말 좋은 친구고,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였다는 걸 함께 여행하며 더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계속 우리 가족 카톡방엔 불이 나고 있었다.

 

"하니야, 오고 있니?"

 

"삼겹살 먹을거지?"

 

"어디쯤이니?"

 

.........우리 엄마 정말 짱.....이었다. 너무 고맙고, 내가 프랭크였어도 정말 그 친절에 녹아내렸을 만큼 친절했다.

(엄마, 우리 이때로 다시 돌아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오는 길에 이런저런 덕담을 주고 받다가, 또 장난을 쳤다.

 

"한국에선 너가 나한테 누나.라고 해야되는거야. 자, 그럼 해봐! "

 

"오케이~하니~~~~~~"

 

"ㅡㅡ...아니, 누나. 누나."

 

"아, 그거.. 뭐더라? 오...오빠? 맞나?"

 

"그게 뭐?"

 

"오빠 프랭크~~~"

 

얘네는 (Mr.xxx)이렇게 앞에 붙여서 그런 지 오빠가 앞에 붙는 줄 알았나보다. 이렇게 장난을 치면서 오다보니 부쩍 친해졌구나~하고 괜히 아쉬워지는 마음. 다시 생각해보면 하루라서 아쉬웠지만, 하루라서 나에게도, 우리 가족들에게도 너무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던 거 같다. 모든 조금 아쉬울 때, 조금 모자랄 때가 가장 좋은 거라니까..

 

 

 

 

 

집에 도착하니 밤 8시 반, 집 근처 삼겹살 집을 예약해놓으신 우리 엄마님......

막내 동생 빼고 총 5명이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맛있는 삼겹살 집이 있었다니!!!!하며 우걱우걱 먹었다.

그 와중에 또 우리 엄마는 누가 진짜 아들인 지 헷갈릴 정도로 프랭크 앞으로 고기와 반찬을 슉슉 날아다 주시고,

둘째가 한 마디를 날리자 우리 모두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엄마... 우리 불판이나 신경 좀 써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운 내 동생. 아무리 자기도 프랭크가 좋았다지만, 고기 앞에서 한 마디 하는 게 왜이리 웃기던지. 

참.. 배탈이 난 줄도 모르고 그 날 삼겹살을 조금 드시던 아빠는 젓가락을 두고 말도 없이 사라지시더니 다시 집에서 만났다.

프랭크는 제일 마지막까지 냠냠냠냠 하며 삼겹살을 열심히 먹었는데, 정말.... 잘 먹었다.

아시아 3개월 여행 중인 그에게 마지막 일정은 일본에서의 3일이었는데, 그날 밤 식사가 아마 자기한텐 가장 거하게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더 잘 먹는 게 느껴졌다. 상추쌈을 나보다 더 잘 먹어서 놀라며 먹었는데, 잘 먹어주니 사주는 사람 기분도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신발을 신고나오는 데 가격을 묻는 프랭크. 자기도 돈을 내려고 했나보다. 워낙 서양인들의 더치페이문화는 많이 들었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때도, 또 프랭크의 친구가 밥을 살 때도.. "Oh.. my.. Korean is.." 이런 걸 보면 정말 흔치는 않은가.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나도 절대적으로 더치페이를 선호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선 한 턱 쏘는 문화가 훨씬 더 강한 거 같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보다 더 내야만 하는 문화가 더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 보면 "잉?"하는 순간들이 좀 있는 거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5분도 안 걸렸다. 그치만 그 짧은 시간은 하루 동안의 서로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거 알아? 너네 가족은 정말... 정말 최고였어. 특히 너네 엄마는... 진짜...."

 

"ㅠㅠ우리도 진짜 좋았어. 얼마나 우리 가족들이 걱정했는 지 말해줬잖아. 근데 나도 이렇게까지 친해질 줄은 몰랐어.."

 

"진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많았어.. 브라질에 있다는 친한 친구 있다고 했잖아.

 

걔네 가족하고 함께 있을 때의 그 느낌하고 정말 똑같았어. 정말.. 딱 하루였는데 이 느낌은 평생 쭉 가져갈 것 같아."

 

 

말을 어쩜 저렇게 예쁘게 하는지.. 나의 부족한 통역에 엄마 역시 옆에서 계속 한국어로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나도.. 나도 정말 좋았어. 그리고 모든 엄마 마음은 다 똑같지. 앞으로도 하는 일 다 잘 되고, 여행도 잘 하고~"

 

근데 그렇게 진지하고 훈훈하던 대화가 오가고 있던 차에,

"나 지금 중간에서 뭐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 빵 터져버렸었다. ㅎㅎㅎㅎㅎㅎ

어쨌든 뭐라고 말해야할 지 모르지만 너무 고마워하는 프랭크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언어는 정말 중요하다. 조금 더 많은 걸 정확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언어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100%를 채워주는 건 아니다. 우리의 눈빛이, 마음이, 행동이 그 언어보다 클 때가 많다.

아마 프랭크는 대한민국 엄마들의 따뜻함을 느끼고 돌아갔을 거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끈끈한 정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갔을 거다.

그걸로 너무나 만족스럽다. 맨 처음 카우치서핑을 시작하고, 호스트로 어떻게 그들에게 진짜 한국을 느끼게 해줄 지 고민했을 때, 우리가 그걸 느끼게 해줄 수 있을 지 의문스러웠다. 너무나 좋은 가족이지만, 누구보다 내 가족이기에 그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역시 가족이라 그만큼의 자신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우리 가족 한명한명은 내가 생각하고 제한했던 모습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고, 사랑이 많은 가족이었고, 그래서 나도 이만큼 자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포스팅을 시작한 지 일주일 째인데, 조금 조금씩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고 있었다.

딱 하루였는데 그 하루의 발자국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 일주일 째 그 날을 떠올리며 쓰고 있는 나도 참....대단하다.ㅋㅋㅋㅋㅋㅋ

벌써 5월 5일. 어린이 날이다. 오늘은 가족들이랑 서울 나들이로 북촌 한옥마을에 가기로 했다.

차도 없고, 사실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멀리까지 다같이 나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나는 우리가족의 또 다른 여행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꿈꾸게된다. 때론 그 모든 것들이 사치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이상주의인 나에게 있어서는 현실이다. 정말 현실적으로 난 우리가족과 프랭크의 가족들이 언젠가 프랑스에서 만날 것을 꿈꾸게 됐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더... 성숙해질거다 :) 부족한 우리지만, 이렇게 하나의 일을 또 한 번 함께 잘 넘었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가족사랑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는데, 정말 그렇다. 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내가 발견한 또 하나의 소중함이 바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카우치서핑을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은거다.

 

 

 

여튼! 이제는 정말 마무리를 해야할 시간! :)

집에 돌아온 후, 프랭크보고 빨리 씻고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ㅜ ㅜ...싶어서 속으론 우울했지만, 겉으론 괜히 늦기 전에 빨리 준비하라며 재촉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랭크와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어느샌가부터 지인들에게는 매일 말하고 다녔던 그 인터뷰 프로젝트! 어쩌다보니 프랭크가 나의 첫 인터뷰이가 되었다.

사실 전 날부터 부탁했던 건데, 이렇게 프랭크가 떠나기 전, 급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정말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원래 최초의 인터뷰이로 생각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사람 일은 정말 모르나보다. 첫 인터뷰이가 프랭크가 될 줄 내가 어찌 알았을까? DMZ에 가봐야지, 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외국인과 함께 그곳에 가게 될 줄은 몰랐지.. 이토록 인생은 하루하루 예측불가하다. 그래서? 그래서 너무 너무 너무 재미있다! 헤헤!

 

 

프랭크와는 군자에서 바이바이했다. 길을 잘 모를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프랭크가 전철을 타기 전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쉬웠던 건, 허그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0.1초? 하하하하핳하하하하 프랭크 보고 있나?

한국말이라 모르겠지만, 여튼 우린 정말 초스피드로 굿바이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헤어졌다.

대신 프랭크로부터 급.선.물을 하나 받았다. 바로 이거이거! 평.안.부? 중국 템플에서 샀다고 했었나..

두 개가 있는 건 줄은 몰랐는데, 이 팔찌와 관련해서도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한테 중국어 읽을줄 아냐며 자꾸 물어보는데 '한자'에 젬병인 나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그나마 한문을 조금 아는 엄마는 평안까지는 아셨는데, 그 뒤에 그 '부'자를 몰라서 중국어를 하시는 아시는 분께 카톡까지 보내며 팔찌에 새겨진 저 부적의 뜻을 꼭 알아야겠다며 애를 쓰셨었다. 결국 몇 십분만에 알아오셔가지고는 프랭크 앞에서 아는 척 하시며 막~ 알려주는데 너무 귀여우셨었다.ㅎㅎ

아무튼 프랭크에겐 그 팔찌가 되게 소중해보였다. 기념품이지만, 그래도 뭔가 기운이 느껴져서 계속 갖고 정말 그러길 소망하는.

뭐 부적이 다 그렇다마는..ㅎㅎ 나중에 굿바이메시지를 보내기를, 자기도 사실 하나 더 있다고. 같은 팔찌니까 연결되어있는거라고 안전하게 여행하고, 잘 살자고하더라. ㅠ.ㅠ 흐잉 감동감동!!!! 아..점점 블로그체가 아니라 내 온라인체가 나오고 있다...하하하하ㅎㅎ

 

 

여기까지가 내가 한국에서 보낸 프랭크와의 하루 반의 아주 디테일한 여행이야기다.

나에겐 더없이 소중했던 첫 호스트 도전기, 첫 카우치서핑 도전기, 첫 인터뷰, 첫 프랑스인 친구.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가족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에 대한 확고함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데,

전에도 언급했듯 캐나다 워홀을 가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너무 바래왔던 일들이지만 새삼 '난 왜 워홀을 가려는걸까', '난 왜 여행을 가고 싶어했을까',

'난 왜 다르게 살아가고 싶었던 걸까?', '20대를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가?'

이런 여러 질문들 사이에서 '여행을 통해 그 답을 깨달아갈 것을 기대해도 된다'라는 답을 받은 느낌.

그래,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여행을 다닌다는 건 말도 안될 수 있지만, 난 이걸 이뤄가고 있고

세상을 무대로 움직이고 싶다.라는 소망들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20대이다.

 

 

내가 프랭크를 보며 느꼈던 건, 지난 여행관련 강연 때 최효석작가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처럼 여행좋아하는 사람 치고 안괜찮은 사람 없다는 거?.. 물론 그 분 경험상이겠지만,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많이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과 틀에 갇힌 사람의 생각차이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그래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고 싶다. 아니,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직접 내 발로 걷고, 경험하고, 전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히히..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투척! 정말 길었던 포스팅의 끝이다.(읽어주신 분들.. 고생많으셨어요ㅠㅠ토닥토닥!!♥)

훗날 이 기록들이 내가 여행관련 책을 냈을 때, 혹은 어디선가 여행관련 글을 쓰고 있을 때 좋은 여행수기가 될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신 내 버팀목 하나님께, 카우치서핑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신 최효석 작가님께, 좋은 친구가 된 프랭크에게, 정말 든든했던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그리고 여러분!!!!!!!!!! 저는 또 다른 재미진 포스팅과 함께 곧 돌아오겠습니다!

한국나이로는 22살인 프랭크!ㅎㅎㅎ3개월 간 아시아여행을 마치고 다시 호주의 워홀러 일상으로 돌아간 그의 라이프스타일!

궁금하시다면......다음 포스팅인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대해주세요!!!!!!!!!!!!! 그럼 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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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담아두고 다시 열어볼 수 있는 그런 캡슐이 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캡슐을 만들어낼까?

실제로 무언가에 쉽게 감동받는 내게 그런 캡슐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100개는 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나의 첫 카우치서핑 여행자인 Franck와의 여행이 될 것이다.

 

 

첫째 날, 갑자기 에너지를 쏟아 체력이 바닥난 상태로 겨우겨우 블로그에 업로드했던 글.

[ 한 여행자의 여행을 도우려는 것이 한낱 시작점이었다면, 같은 곳을 그 여행자와 함께함으로써 또 다른 느낌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건 나에게도 "여행"이 된다.] 였다. 참 내 글답게 복잡한 한 줄이지만 심플하게 정리하면 이거다.

같은 길도 다른 사람과 함께 다시 갔을 땐 새로운 길, 새로운 경험이 된다는 것.

어디서 들었던 말이다. 이렇게 그냥 듣고 지나쳤던 말이 나의 경험으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기억이 된다.

왜 '직접적 경험'이 중요한 지, 왜 그렇게 다들 '책'만 붙들고 있지 말고, '경험'하라고 하는 지 알 거 같았다.

살아있는 걸 받아들이려면 내 발로 직접 그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걷고, 오르고,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부터 정~말 행복했던 하루 반나절동안의 카우치서핑 경험을 기록해볼까? YEAH!!! :D

오그리토그리 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블로깅을 미루고 싶지 않다. 쭉! 가보자. 멈추지 말고.

 

 

 

 

 

2015. 04. 24

 

요즘 아침 10시부터 베이비시터로 알바를 뛰고 있는 나는 그 전날인 23일 아침부터 내 방을 포함한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 방만 몇 시간을 했다. 왜 그랬는 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혹시라도 내 방에 들어와 실망을 하게 될까봐?

하지만 우리집에 오게 될 손님은 정작 내 방에서 숙박할 게 아니라는 것.

 

아빠는 그런 나를 보시고서는 뒤에서 이렇게 말하셨다.

"제발 평소에 좀 그렇게 해라."

"아빠, 근데 난 왜 내 방을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거지?...."

"내말이"

 

그렇다. 나는 '손님' 맞이할 준비를 정말, 정말로 열심히 했다. 혹시라도 '이 집은 좀 더럽고, 별로네'라고 평가받기 싫은 마음에 5시간 이상을 청소했다. 베이비시터까지 합쳐서 하루에 13시간 이상 육체노동을 한 것이다. 피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4일 아침, 전날 새벽2시에 이어 동생 강산이의 방(손님이 묵을 방)에서는 '내가 여행자라면 어떤 방에서 쉬고 싶을까?'란 생각을 하며 환영메시지를 적어내려갔다. 적어야지- 하고 생각만했는데 적고보니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프랭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걸 보고는 "So kind!"를 외쳤고, 나중엔 자기 가족들에게도 공유를 했다며 많이 고마워했다.

 

작은 배려, 작은 관심의 표현은 늘 그 이상이다.

 

 

 

 

 

오후 6시31분.

 

OMG!! 알바를 마치고, 10분거리에 있는 중곡역으로 향하던 중에 왜 그렇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지. 어느새 피곤함도 잊은 채 기대감과 떨림으로 가득했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건너편 1번 출구를 보니 한눈에 봐도 '나 여행자임'하는 포스로 엄청난 짐과 함께 외국인이 핸드폰을 보고 서 있었다. 1분을 늦은 나는 다급하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건너편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Hi~~~ :D!!!!! Nice to meet you!"

이 인사를 건네기 몇초 전 신호를 건너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사는 어떻게 하지, 반갑게 해야되는데, 아.. 그냥 편하게 하면되지 뭐! 한국식으로 해볼까, 아니야..'

뭐든지 처음은 힘들다. 하지만 그 상황을 맞닥뜨리게되면 어떻게든 그냥 잘 흘러갈 때가 많다.

보통 외국인들과의 인사처럼 허그를 하며 어색어색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정말 무거워보이는 여행배낭과 뭘 그리 꽉꽉 채워넣었는지 터질 것만 같은 백팩 하나를 한 손으로 쥐고 가는 게 너무 고생했겠다 싶어 하나 들어주려고 했다.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이거 진~짜 무거워"

.......지...진짜 무거웠다....... 그래서 1초만에 바로 넘겨줬다.

 

그러고는 영어리스닝이 시작됐다. 정말 리얼.. 한국어로 '안녕'도 모른다는 프랑스인. 그렇게 그의 말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여행여정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카우치서핑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나누었다.

 

"아마 우리 가족들은 좀 긴장하고 있을거야"

 

현관문을 열자마자 고1, 중3짜리 동생들의 반응은 역시나..  

"우오아아아아악" "안...안녕하세요__)" 예의 바르지만 부끄러운 인사.

 

 

그때는 전혀 몰랐다. 한창 사춘기인데다가 여드름과 키크는 게 인생최대고민인 둘째 강산이가 프랭크로부터 더 넓은 세상에 나가는 것에 대해 모티베이션을 얻게될 지(나의 잔소리와 조언보다 몇 배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게 될 지. 그리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우리 가족과 단 하루만에 얼마나 친해지게 될 지를 말이다.

 

 

오후 7시 50분

 

프랭크는 건대에서 친구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겨우 하루 반을 머무는데 함께 첫 식사를 할 수 없어나도 가족도 조금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괜찮으면 친구와 같이 저녁 먹는 건 어떻냐는 말에 나도 그냥 조인하게 됐다.건대에 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아서 식탁에 앉아 여행사진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에 있는 Nancy에 살았던프랭크. 바탕화면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있는 그 광장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 아름다웠다.

"우와!!! 완전 영화같은데?" "그치? 진짜 아름다워, " 정말 그랬다.

그런데 왜 이 사진이 바탕화면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프랭크는 현재 호주에서 워홀러로 지내는 중에 아시아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고, 가족을 정말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시티에 대한 그리움이 묻혀 있을거다.

나 역시 타지에 나가면 내 바탕화면이 서울일까? 우리 집일까? 아니면 내 방? 잘 모르겠다.

결론은 난시라는 곳, 꼭 가보고 싶을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위 사진은 프랑스 관광청에서 소개하는 사진인데, 프랭크가 갖고 있는 직접 찍은 사진들이 훨~씬 아름답다. 문화유산이 많은 곳.

불어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난시도 꼭 가보리!ㅎㅎ

 

 

 

 

 

위에 있는 사진은 얼마 전에 처음으로 가봤던 커먼그라운드다. 클럽음악이 들려오자 춤추는 걸 좋아한다는 프랭크는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사실 이 때 동행했던 다른 한 명은 그가 교환학생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공부했을 때 만난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이었다. 나보다 1살 많은 오빠라 더 반가웠고(헤헤), 나 역시 프랭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인을 통해 프랭크가 예전에 어떻게 지냈는 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여담인데 저 사진에서 나는 아직 프랭크랑 그렇게 친해진 상태가 아니었다. 찍으면서도 "안 친한 거 다 티나죠"하며 찍었던 사진.

 

사실 커먼그라운드에 가기 전, 저녁을 먹으러 로봇김밥에 들어가서도 나는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었다.

마치 내가 가이드라도 된 듯이 건대를 이리저리 훑어봐야했었기 때문이다.

프랭크의 친구 역시 건대가 처음이었고(대학원생이셨는데 부산 출신이고, 공부로 바쁘셔서 늘 신촌 밖으로는 많이 안나오신다는..)

건대를 정말 많이 와봤지만, 늘 가는 곳만 가고 밥집 역시 그냥 보이는데로 들어가도 됐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맛있는 걸 먹여야만 할 거 같았고, 한국적인 음식을 먹여야만 할 거 같은 부담과 꼭 '맛집'에 가야만 한다는 부담이 있었던 것이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했던 건대 2번출구 엔젤리너스 앞에서 나와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로데오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둘은 반가워서 블라블라 얘기를 하는데 나는 여러 번 앞장서서 갔다. 괜히 불안해서..

프랭크와 나는 돈을 뽑아야하는데 ATM기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맛집도 안 보이고,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꾸 꽃보다할배의 '이서진'이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ㅎㅎ

 

그런데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거였다. 비싼 음식이 아니여도, 맛집이 아니여도, 그냥 평타만 때려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긴장감이 조금 풀리고 나도 조금씩 그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되었다. 그치만 이 날은 그냥 둘의 시간을 주고 싶어서(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모르므로 나도 별로 할 얘기는 없었...다는 거ㅠㅠ) 리스너와 가이드역할에 충실했다.

 

아, 하나 생각한 건 교환학생갈 기회가 있으면 꼭 가라고 추천해줬는데.. 외국에서 학교생활해보는 거, 정말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예전엔 그냥 해외면 해외생활 다 비슷하지~했는데 이제는 학원이든 학교든 꼭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 중 하나는 교환학생이지만, 그 땐 뭘 몰라도 정말 몰랐던 때였기 때문에 후회할 것도 없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기회들을 바라보자 :-)

 

 

 

첫째 날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역시 한강이었다.

건대에서 뚝섬유원지를 걸어가는 그 길은 사실 친구들과 걸어갔을 때마다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마실가면 어느새 도착해있는 그 정도의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은 장소로 안내해야만 한다는'책임감'을 느끼다보니 끝이 안보이는 거 같다는 그들의 리액션에 조금 힘들진 않을까 걱정했다.

게다가 프랭크의 경우에는 그 날 DMZ에도 갔다온 걸로 알고 있어서.... 나중엔 너 오늘 충분히 많이 걷지 않았냐고, 힘들텐데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정말 다행히 프랭크는 그날 늦게 일어나서 못갔다고 했다. Thank god!

 

도착하니 역시나 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랭크는 사실 술 먹는 것, 노는 것, 클럽가는 것을 즐기는 친구인데 무경오빠와 나는 그쪽 문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보통 20대처럼 '한강에선 치맥'문화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 치킨은 못먹더라도 맥주는 먹이자!하는 마음으로 맥주와 음료같은 크루져를 사서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강을 즐길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자꾸 두 사람이 괜찮은지 신경을 쓰면서 왔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좋으니 나 역시 절로 신이 났다.

주말답게 여기저기서 치맥을 즐기고, 치콜(치킨+콜라)을 즐기고 있었으며 소소한 불꽃놀이를 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옆에서 무경오빠가 불꽃놀이하는 게 위험해보여서 혼자 자꾸 저~~기 멀리로 도망가있었는데 그냥 그런 별거 아닌 것 같은 순간까지도 다 좋고, 행복했다. 나에겐 익숙한 장소이지만, 그 순간은 정말,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비긴 어게인' 영화대사가 떠오른다.

[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음악 뿐 아니라 여행도, 사람도 그렇다.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은 여행을 통해 180도 달라지고, 사람을 통해 360도 달라질 수 있다.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젊음. 나 역시 그 젊음의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고만 싶지 않은 욕심이 강해지고 있는 최근 몇 년. 내가 곧 떠나게 될 여행 역시 프랭크의 여행처럼 내 삶에 빛나는 순간들, 많은 걸 배우게 될 시간들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사람들이 막 몰려있고, 번쩍번쩍이는 조명이 돌아가는 가운데 지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뮤직비디오 촬영같아보이는데 백그라운드에서는 전기가 차단되는 옷같은 걸 입고 지지지지지직- 지직- 거리며 싸우는 듯한 모션을 치하는 두 사람이 있었고, 악기를 연주하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프랭크는 굉장히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연신 크레이지~를 외쳐댔다.

나 역시 그런 무대는 처음보는 거라 '저건 도대체 뭘까.... 누구일까..'하며 넋놓고 구경했다.

멋있다기보다.. '안전할까?'란 생각이 먼저였다. 그들의 연주가 멈추고,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다시 멈추고나서야 우린 돌아섰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공연이 있어서 또 한 번 웃었구나! 싶다.

 

 

 

겨우 5시간의 일정이었지만, 나에게도 한 순간 한 순간 특별했던 여행과도 같았다.

그치만 피곤한 건 피곤한거다. 노동에 노동에 걷기에.. 나 자신을 토닥토닥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정말 감사했다.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신 것. 또 친구의 친구 역시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왜 그렇게 해외를 다녀온 친구들이 친구~친구~거리는 지, 타지에서 챙김을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감사한 일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또 여러가지 감정들. 배움들. 이야기들. 모든게 감사했다.

 

 

 

군자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짧은 시간에 나는 프랭크에게 물었다.

"왜 아시아를 세 달동안 여행하기로 한거야?"

"다른 데 가는 것보다 싸고, 게다가 아름다운 곳들이 정말 많으니까"

"태국의 거리음식은 정말 최고였어, 한국도 베스트3안에 드는 여행지고, %#%$@~"

 

한국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건 역시 전문적인 '산악인'마냥,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마냥 여기저기 비싼 등산용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들, 성형이 너무나 보급화되버린 것이었다. 해외를 많이 다녀온 친구에게도 들었지만, 막상 외국인에게 직접 들으니

'아, 정말 그렇게 느끼고있구나'하고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우리는 중국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한국에서는 중국어열풍이 돌고 있고, 실제로도 외국에 나가면 중국사람들이 없는 곳이 없으며 워홀러로 호주에서 일하고 왔던 프랭크 역시 중국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렇지만 중국사람들이 여전히 정부에 의해 제한되고 있고, 심지어 구글이나 인스타그램 등등 다른 나라에서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것들이 검열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계속 crazy~ crazy~를 외쳤다. 그 와중에 북한은 최악이란 얘기도 빠질 순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우리는 프랭크가 가장 crazy하다고 생각한 그 북한 땅을 그나마 근접하게라도 볼 수 있는 DMZ구역에 있었다.

 

 

 

 

 

to be continue . .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Behind story

 

중간고사를 보기 며칠 전, 나는 그냥 카우치서핑에 가입했고 몇 명에게 우리집에 묵어도 된다는 쪽지를 보냈으며

일정을 조율하고, 별 다른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그냥 해보기로 했다.

간단했지만, 부모님으로써 딸의 행동은 너무 위험해보였나보다.

"너 집도 아니고, 가족들이 다 살고 있는 집인데, 우린 말도 통하지 않고, 하은이가 혼자 있을 땐 어쩌려고?"

이게 첫 반응이었고, 난 계속 "괜찮다, 긍정적인 평이 많은 친구다, 정말 좋을거다"하며 하루정도는 열심히 설득해야했다.

 

나 역시 걱정이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다. 워낙 사건사고가 많고, 내가 어디서 직접 사귄 친구도 아니었으니.

그치만 난 가족이 있었다. 프랭크입장에서도 그래서 오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가족이 함께 있다는 건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지난 최효석 작가님 강연 때도 남녀가 일대일로 있을 때의 카우치서핑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지 들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건 나에게도, 여행객에게도 안전에 있어서는 정말 좋은 조건이라 생각된다.

카우치서핑에 도전하고 싶은데 조금 두렵다면 가족과 함께 있는 집에서 도전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

 

한강에 있었을 때, 조금 늦은 시간이다보니 중간중간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었는데 "친구 반바지라 춥겠다"라는 문자를 보고 피식했다.

사실 엄마는 이미 프랭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냥 믿음직스러운 친구라는 걸 느낀 듯 했다.

별 걱정없이 오히려 프랭크를 둘째 아들래미같이 챙겨주더라. 긴 바지를 입을까, 짧은 바지를 입을까 고민했던 프랭크에게 그냥 추울 수 있으니 갈아입고 가라했었는데 엄마는 또 안 챙겨 입고갔을까봐 걱정이 섞인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둘은 정말 전혀 영어로 소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소통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거에 대해선 또 둘째날에 할 말이 많으니.. 아껴두기로 하고!

 

첫째 날 느꼈던 것, 경험했던 것을 거의 다 적어두었다.

훗날 내가 어디에 이걸 또 기록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길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괜찮다.

맨 첫 줄에 캡슐 얘기를 했는데 정말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을정도로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다.

카우치서핑에 대한 준비이야기를 포스팅한 것에 대해 몇몇 친구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그냥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팁은 '배려'다. 나 역시 아직 해외를 이곳저곳 다녀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해를 하려는 태도는 갖고 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고, 부족한 게 너무 많다.

하지만 시간약속부터 시작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그 차이를 배워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행객이라면 어떤 호스트를 만나고 싶을까, 난 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우리나라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심어줄까, 자꾸 고민하다보면 서로에게 따뜻한 시간, 배워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믿는다.

 

꼭 여행객들, 혹은 호스트들의 정보를 하나하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단순히 재워주고, 내 먹을걸 조금 나눠주는 개념의 카우치서핑을 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다른 문화와 생각을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내가 현지에 있고, 여행객을 받아준다하더라도 나에겐 그게 호주여행을 간접적으로, 프랑스여행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

 

 

+

To. readers

정말 정말 긴 글이었지만, 여기까지 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롭게 댓글도, 방명록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 공감거리를 나눠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D 히히

둘째 날 포스팅에서 어린이대공원, DMZ, 가족 이야기를 포함한 interesting 스토리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뿅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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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썼으나 너무 졸리고, 내일은 일정이 빡빡할 것 같으니까 이렇게 몇 줄이라도 적을란다.
한 여행자의 여행을 도우려는 것이 한낱 시작점이었다면 같은 곳을 그 여행자와 함께함으로써 또 다른 느낌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건 나에게도 "여행"이 된다.

It was amazing experience!!

내일은 훈훈한 French guy가 우리집으로 오는 날 :D

그렇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난 한 명의 여행자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호스트가 되었다. 카우치서핑이 뭔데 외국인을 집에 들이냐고?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한 카우치 서핑의 개념! (사실 나도 방금 알게된 정보들이 꽤 있다.)

 

▼ ▼ ▼ ▼ ▼ ▼ ▼ ▼ ▼ ▼ ▼ ▼ ▼ ▼ ▼ ▼ ▼ ▼ ▼ ▼ ▼ ▼ ▼

 

카우치 서핑

[ couch surfing ]

 

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 현지인은 여행자들을 위해 자신의 카우치를 제공하고 여행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카우치에 머무르는 일종의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다. 미국 보스턴의 한 대학생이 여행을 가기 전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그 지역의 대학생 1500여 명에게 숙소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가 약 50명의 학생에게 답장을 받으면서 기획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숙소의 교류와 동시에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www.couchsurfing.org)페이스북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세계 10만여 도시에서 약 600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카우치 제공 내용을 기록하고, 카우치를 받은 사람들은 이를 평가하고 평점을 매기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우치 서핑 [couch surfing]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

 

 

카우치서핑을 처음 들었을 때 '오잉? 그런 게 있어? 신기하네'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리고 두 번째 들었을 땐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해보고싶다.'

세 번째 들었을 땐 '아, 그게 그거였구나. 나도 호스트가 될 수 있고, 여행자가 될 수 있는 거구나?'하고

그제서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된 카우치서핑.

 

 

사실 얼마 전, 최효석 작가님의 '세계일주를 꿈꾸는 당신에게'라는 내용으로 강연을 들으러 갔었다.

그의 1년간의 세계여행은 거진 다 카우치서핑을 통한 여행이었다. 무전여행과 비슷하면서도 아예 이런 시스템이 있다니!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솔직히 남자에 비해 여자에겐 상대적으로 위험하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욕심나는 여행인 것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에, 또 다양한 현지인을 만나기에, 경제적으로도 일석 몇조로..

조만간 내 비전카드 리스트에 카우치서핑에 관한 항목도 넣어야겠다. :)

 

 

그래서 뭘 준비했냐고?... 사실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입을 하고, 프로필을 채워넣고, 한국에 머무려고하는 이들을 체크하고,

레퍼런스를 보고선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게 쪽지를 보냈고, 그렇게 간단한 루트를 통해 DONE!.

 

지금은 새벽2시인데, 베이비시터일을 8시간 해놓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청소 및 집안일만 4-5시간 해놓고도

이 글을 기어코 쓰는 이유는, 어제부터 하루에 1포스팅을 하기로 나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벽1시반 정도까지 계속 쉴틈없이 청소를 했다.

한 가지 의문인 건, 분명 난 시험기간인 '고딩'남동생의 방을 빌려주려고 한 건데 왜 내 방을 그렇게 열심히 몇 시간동안 치우고 있었나하는 거다. 생각해보면 남자인 친구가 작년 9월 이후로 우리 집에 오는 것도 처음이고, 내 친구 중에서도 예전에 중국인친구 1명이 잠깐 들린 것 빼고는 우리 집에 그 누구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미안.. 친구들아 초대할게....)

아마 그 이유인즉슨 나까지 포함해서 3명의 자녀가 있는 이 집에 친구 1~2명만 들어와도 꽉 차는 느낌에 조금 더 오바해서 흘러넘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거다. 늘 그래왔으니까, 나 역시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일은 드물었던 거 같다.

어쨌든 내일을 위해 쓸고 닦고, 정말 열심히 했다. (물론 쓸데없이 내 방에 격하게 집착한 덕에, 난 너무...행복하다..응?ㅡ.,ㅡ)

 

 

내가 바라는 것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 다른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것.  가족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영어를 써먹는 것. 나중에 나 역시 트레블러로 카우치서핑을 할 때 어떻게 해야하나 배우는 것, 예의를 배우는 것 등등.

꽤 많지만, 정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고, 괜히 한국 홍보대사가 된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든다. :)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냥 나인 채로, 다른 문화권에 있던 친구와 어울리며 그 속에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누리는 것.

ㄲ ㅑ!!!!!!!!!!!!!!!!!!!!!!!! 결론은 기.대.된.다! :D

 

 

 

 

+ 깨알 팁 + My opinion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무엇보다 자세히 나의 루트를 말해주며 신뢰를 쌓는 건 중요하다.

그렇다고 보고를 하듯 하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게 예의를 지키는 것.

언제 도착할 거고, 언제 떠날 거고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만나게 될 친구들이 있다면, 혹은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여러 상황들을 두고 자세히 먼저 얘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여행자이고, 난 숙박을 제공하는 호스트다. 그들은 더 많은 이들을 만나보고 싶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장소를 구경하고 싶을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호스트가 된 이상, 나 역시 그들이 바라는 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한다. 절대 집착하거나, 무신경하거나,하는 그런 극과 극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역시 모든 건 '배려'에서 시작되나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전시회를 보고 있노라니, 나의 첫 사진부 생활이 생각난다.

아는 것 하나 없이 사진이 그냥 좋아서 가입하게 된 사진부동아리.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아는 게 없다. 한쪽 구석에 '사진학 강의' 무려 제9판인 저 두꺼운 책을 사두고도 읽지 않았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동아리 이름도 The Decisive moment 였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 '결정적 순간' '찰나의 순간'.

 

 

비록 그 사진부를 말아먹었던 장본인이 나였지만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요 후배님들..)

대학생활을 돌이켜봤을 때 그때만큼 아무 생각없이 정말 DSLR 한 쪽 어깨에 메고선 설치고 다닐 때가 있었나-싶다.

참 행복했고, 편했던 시절. 그치만 그 때 역시 무언가 고민하고 도전하려하고 바쁘게 살려고 했긴 했던 거 같다.

하지만 난 그 때에 대한 좋은 추억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좋은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좋은 사람들이 남았기 때문에..

좋은 프레임안에 그 기억들을 넣어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결정적 순간들이 있었기에 아직도 사진에 대한 끈을 놓지는 않고 있다고 믿는다.

 

 

우린 이처럼 어떤 기억들을 우리만의 프레임에 고이고이 넣어두곤 한다.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그 모든 것들이 그것들만의 프레임 안에서 맴돌고 있다.

그 안에는 진실이 있을지, 허구가 있을지 그건 확신할 수가 없다.

편집된 프레임 속에서 우린 진실을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런 눈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의문들을 품고 이 전시회를 관람하면 좋겠다.

 

 

사진에서 창조란 하나의 반발이다.라고 내 맘대로 편집하고 싶었다.

나......반발하고 싶다. 응? ㅎㅎㅎㅎㅎㅎㅎ

 

 

 

영혼의 순간? 아.. 정말 글 쓰는 사람들은 뭐 이리 의미부여를 하냐,라고 느낄만큼 과하다고 느낄 정도의 설명들이 많았다.

사진을 설명하는 글에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주관이 조금은 섞인.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정말 그가 그렇게 의도했다고? 작가가 살아있었다해도 그렇게 표현했을까?" 이렇게 아무 대답없는 사진을 바라보며 핀잔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글귀들에게... 사실 고마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의 임무는 뭐야?"하고 묻지 않나.

 

 

'브리'라는 이 품은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사진이었다. 근데 그런 생각이 든다.

과연 저 사진만 그런가? 다른 사진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각자의 주관을 담아 해석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권리가 아닐까?

 

그래서 난 작품을 보고 이렇게 메모했다.

'하트 모양이다. 바로 저 길에 올라타야할 것만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의외로 단순해보인다. 그 길에만 올라타면 되니까.'

철저히 내 삶을 빗대어 해석해버렸다. 특히 지금 내 상황.

 

 

 

이 사진전을 보고난 후 점, 선, 면과 사진에 대한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조금 더 과학적인 것들이 이 안에 담겨있는 거다. '감정'으로 찍는 '감성'으로 찍는 '감'으로 찍는 사진만 사진인 줄 알았지,

모든 것들을 고려하여 그 찰나의 순간을 잡아내는 그 '노력'은 굳이 할 필요 없다고 느꼈던 나로써는

어떤 사진이든 점, 선, 면이 빠지지 않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왜 사진이 그림같은 지... 그런 걸 좀 느꼈던 거 같다.

 

그래서 나도 DDP를 한 바퀴 돌며 괜히 이런 사진을 찍어보았다.

구도, 그림자, 빛, 모양 등 모든 걸 신경쓰며 찍는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만약에 사진찍기가 허용되었다면, 내게 인상깊었던 사진을 하나하나 끌어다가 보여주고 싶지만

일단 글로 적어온 몇 가지를 공유해보려고 한다.

 

브뤼셀-벨기에

인생을 사는 태도, 한국인에 대한 고찰

 

세비야-스페인

저런 벽을 깨부수면 우리 모습 역시 저렇게 신나는 모습일까, 저건 천국일까, 현실일까?

 

리보르노-이탈리아

커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나 이런 결정적 순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웃고 넘기며 살아왔을까?

조금 더 이런 장면들을 느끼고 즐길 필요가 있다.

 

국민당 정부 말년의 금파동 - 상하이, 중국

바닥을 화면에 더 많이 넣음으로 군중이 떠보여 더 불안하게 만듦.

편집의 기술로 더 실제에 가까이... 그리고 작가의 의도에 가까이..갈 수 있따.

 

시간을 바쳐 쌓은 업적은 시간이 존중하는 법이다. - 로뎅

 

누구도 해낸 적 없는 성취란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프랜시스베이컨

 

보클뤼즈 - 진짜 색채가 없어도 반사된 빛때문에 너무나 다양해보인다. 역시 빛..은 good!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연방

가장 좋았던 작품. 아이를 보니......그래도 저 뒤에 있는 우울한 산들을 뒤로하고 웃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보니, 그래도 미래는 밝을 거 같다는 저 메시지가 어쩌면 날 깊게 위로했는지도.

 

시프노스(그리스 전통가옥), 그리스

정적 / 동적의 조화

 

 

사람의 뒷모습은 우리의 시선을 대상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을 바라보도록 한다.

'뒷모습'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흠흠 도전해보자!

 

선, 도형, 점.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안이 이야기가 충분하다. 단순함 안에 모든 게 들어있다.

 

윈저공 부부...ㅠㅠㅠㅠㅠㅠ로맨틱해~~잉

 

이외에도 여러 인물 사진에 달라이라마, 잔느랑방, 등 여러 셀럽이 다녀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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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hero

REVIEW2015. 1. 24. 11:17


겨울왕국 이후로 첫 애니메이션. 빅 히 어 로.
영화를 보기 전, 겨울왕국의 제작진이 만든 작품이라는 건 알았지만, "우와! 대박!!!!!!"할 정도로,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영화이야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보기에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누군가는 노래만 들어갔어도, 이건 겨울왕국을 뛰어넘었을 애니메이션이라고 했는데
나도 정말 공감한다ㅜ.ㅜ 이야기 흐름, 감동, 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과학기술, 가장 베스트였던 캐릭터 하나하나. 빠질 게 없는 애니메이션이였다.


Hello. I am Baymax, your personal healthcare companion.


모든 캐릭터 중 '베이맥스'가 겨울왕국의 올라프 역할이고,
겨울왕국에서도 올라프가 '긍정'의 캐릭터로, '귀요미'의 캐릭터로 가장 인기가 많았듯이, 베이맥스 역시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거 같다 ㅜ.ㅜ!!!!! (처음엔 베어맥스인 줄 알았는데....곰 같아서.........ㅎㅎ베이맥스였다.)
영화를 같이 본 친구들도 다 하나같이 이런 반응..ㅎㅎ
"집에 베이맥스 있었으면 좋겠다..........ㅠ.ㅠ" "나도나도 베이맥스!!!!!!!"
"남친보다 더 푸근할 거 같아...."
나도 완전 공감한다. 저번 달 스터디를 하면서 영화 '인터스텔라' 얘기가 나왔었는데, 그러면서 코딩을 배우는 것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또 한 번 느꼈다. 이게 진짜 현실로 다가오고 있구나.....
물론 난 아무것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조금씩 느낄 정도면...ㅎㅎ
실생활에 이런 로봇들의 이야기쯤은 이제 현실이 되어갈거라는 거다...
옛날에 단순하게 생각했던 딱딱한 로봇이 아닌, 사람같은 로봇. 조금 무섭기도, 설레이기도 하는 과학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결론은, 로봇조차도 그가 가진 따뜻함, 사랑을 인간과 나눌 수 있었다는 것.ㅎㅎㅎㅎㅎ
사랑은 늘 어디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이고, 우리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또 그걸 저장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신선했다. 동생들과 한 번 더 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영화! 추천!!!!!!!! :)


+
소리영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으로써, 100%.... 자막을 보지 않고 봤어야 했고, 그게 원래 목적이었지만
D열에서, 자막을 코앞에 두고 자막을 보지 않는 건 너무 힘들었다.(사실 핑계)
다행히 좋지 않은 시력이라 잠깐동안 안경을 위로 살짝 올리고, 자막 부분만 흐리게 해서 안 보려고 했지만..
억시 FAIL....-.ㅠ......ㅎㅎ딱 하나 느낀 건, 소리드림에서 배운 리듬패턴의 위력이다.
정말 모든 대화에 내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애니 컨텐츠보다 리듬패턴이 쏙쏙 들어와서
자막은 봤지만, 아 이게 이 표현이구나!하고 바로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충분히 대화가 된다는 것. 전문적인 지식얘기를 할 땐 당연히 뭐가 뭔지 모르지만
리듬패턴 덩어리 덩어리가 결국 우리 일상생활의 언어가 된다. 한국어도 그렇지 않은가?ㅎㅎ
2월부터 본격적으로, 주말마다 애니메이션 격파하기 프로젝트를 할거다.
이 땐 자막을 아예 꺼버리고, 섭렵하자!!!!!!!! 아자자자잣!!!!!!!!!!!

인터스텔라:)

REVIEW2014. 11. 30. 23:35

드디어 인터스텔라를 봤다. 하도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 거려서 우주에 대한 영화로는 그렇게 유명했던 그래비티때도 못봤었는데 한 번 봐줘야지!하고 봤다. 특훈을 하면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인터스텔라까지 5번 10개월 반동안 딱 5번이다.
결론은 정말 봐야될 영화이고, 특히 누구나 가족들과 꼭 봤으면 하는 영화다. 지지난주에 아빠와 강산이는 보여줬고, 나는 혼자봤으니 엄마와 하은이도 꼭 보여줘야겠다.

먼저 뭉뚱그려 얘기해보면 영화를 보고나서 다니엘헬퍼님이 말했던 게 떠올랐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 같을 때가 있다고. 정확한 문장으로 기억나는 건 아닌데 대강 이런 말이었던 거 같다. 2014년, 꼬박 1년을 채워가며 하루에 최소 12시간에서 16시간을 함께했던 다크호스. 그리고 소리드림 팀원들을 두고 이 말을 말이 아닌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 가족,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함께하고 있는, 앞으로 함께 하게 될 사람들과의 만남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니엘헬퍼님은 이 영화를 보고 우주에서 혼자 남겨 진 상황이 무서웠다고 했다. 얼마나 외로울 지.. 만 박사가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지었던 부분, 주인공이 5차원 안에 갇히자마자 어떻게해야할 지 몰라 절규했던 부분에서 나 역시 너무 공감이 갔다. 다 느낄 순 없을지라도 정말 잘 담아냈다.

이제부턴 정말 정리를 못하는 나지만 조금 분류해서 끄적여봐야겠다.

1. 사람, 외로움, 사람, 사랑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하다. 혼자살면 외롭고, 외로움을 대체하기 위해 그 어떤 걸 혼자 한다해도 그 한계를 마주하고 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사람을 찾게 되어있고, 끌리게 되어있고 그 관계 속에서는 여러 감정이 담겨있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코치님께서 왜 자꾸 사람을 강조하시는지 이 영화를 통해 더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과 어떻게 한 순간, 한 순간을 함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많이 달라질거다. 내가 보낸 2014년처럼:)
그리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면 "사랑"일거다. 내가 맺는 모든 인간관계를 사랑으로 채울 때까지 그 노력은 멈추지 말자. 그리고 뭘 하든 함께하려고 하자.

2. 우주, 그 광활함에 대하여(광할??????)
친구들에게 장난스레 하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내 버킷리스트에도 있는 내용인데 '우주'에서 죽고싶다는 거다. 이 말은 진짜 우주에서 죽겠다기보다(물론 그것도 좋지만,남겨진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리고 내 맘이 어찌 달라질 지 모르는 일이니까) 내 평생에 우주를 꼭! 한 번은 내 눈으로 보고싶다는 간절함이라 할 수 있겠다.
모르는 지식 투성이였지만, 차원에 대한 설명을 조금 읽어보고 봐서 다행히 그나마 쬐금 이해하며 볼 수 있었다. 그만큼, 하나님이 만드신 이 우주는 내가 이해하기엔 정말 그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우주든 자연이든 그 지으신 모든 세계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인간이 지배할 수 있다 생각하면 그건 큰 오산일 거 같다. 하지만 그 모든 발전 안에, 그 과정 안에 무언가를 뛰어넘는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그 안에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또 반면에 얼마나 큰 존재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많은 걸 주셨고, 누리게 하셨고, 우린 그걸 소중히 여기기도 하지만, 파괴시키기도 한다. 어찌되었던 간에 그 모든 과정, 결과, 현상은 그 분 안에 있음을 고백한다. 무언가를 뛰어넘게 된다면, 그건 인간이 해내고, 인간 혼자가 한 일이 아닐 거다.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는 거다. 그 밑바탕엔 또 사랑이 있고. 정리가 잘 안되는데.. 결론은 우주은 정말 크고 넓다는 것. 그리고 너무나 흥미진진하다는 것. 이해하기 참 힘들다는 것. 또 내가 모르는 세계에서 무언가가 한참 돌아가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대단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다만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 역시 너무나 멋지다는 거. 인간의 의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그에 비해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건, 내 인생에 대해서도 "죄"가 될 수 있지만, 타인에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그 분에게는 더욱 "죄"가 될 수 있겠다싶다. 그나저나 우주에 꼭- 가보고 싶다. 엄청 절차가 복잡하겠고, 가기 힘들겠지만 훗날.. 어떻게 될 지 누가 알겠나?

3. 가족의 희생
희생.. 사실 요즘 부모님께 죄송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부모님이 아니라 어리고 어린 두 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욕심을 부리자고 이 1년을 정말 집안일에 손도 안대고 보내고 있다. 그치만 난 그 어느 날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지치고 힘들다. 내 입 밖으로 불평이 튀어나올 때마다 한심하고, 그치만 아직까진 딱 그만큼이 내 그릇인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의 희생을 온전히 이해하고, 배려하기엔 아직 내 삶에 더 욕심을 부릴 때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으니까. 이게 훗날 더 좋은 선택이였다고 말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봤을 때 하루에 1시간이라도 온전히 가족만을 위해 함께하고 배려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어떨까?
많은 변화가 일어날거다. 워낙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나지만 이번 1년은 유독 그런 배려를 하지 못했고, 그러지 않았다. 유독..
그래서 2015년은 더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 서로간의 대화는 정말 중요하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헤어져봐야 그 가치를 더 아는 법인데.. 사실 2015년 계획에도 해외로 갈 계획이 있는데(생각만..) 이 때 내가 느끼게 될 외로움, 그 외에도 배우게 될 여러가지에 대한 기대감도 꽤 크다. 하지만 내가 정말 집중하고 챙겨야 할 건 지금 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한 순간, 한 순간들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정말 소중히 여겨야 될 날들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당장 오늘부터라도 내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할 건지 생각하고 바로 행동에 옮겨봐야겠다. 사랑해요엄마아빠ㅠㅠㅠㅠㅠㅠㅠㅠ강산이하은이ㅠㅠ


4. 영어
1년동안 영어를 언어로 배우면서부터 영화를 볼 때마다 아주 조금씩 들리는 패턴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영어로 들으며 이해하는 것도 아닌데, 한글자막으로만 제대로 흡수하는 것도 아닌 뭔가 이상한 영화관람이다. 물론 어려워서 한글 자막에 백퍼 의존하며 봤지만, 들리는 표현들을 적어가면서 봤다. 언젠간 정말 정말 자막없이도 뉘앙스를 다 이해가며 볼 날이 올거다. I bet!!!! XD

5. 그래서?
그래서 난 돕고 싶다.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 무엇으로 어떻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하지만 내 안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쉐어가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헬핑이란 키워드 역시 앞으로 내가 살아갈 미래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될 거 같다. 나이가 들수록 계속해서 정말 좋은 방법으로, interesting한 방법들로 사람을 돕고 싶어진다. 이 역시 구체적인 건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모르는 지식 투성이였다 했는데 정말 그랬다. 지식, 지혜, 능력 이런 것들의 부재는 순전히 내 노력의 부족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층들이 나라는 건물 하나를 세워다고 있다치면 그 지지기반 안에는 하고자하는 의지에 비해 행동이 별로 없었다. 경험으로든, 글자로든 배우고 또 배우는 게 답인 거 같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더 중요한 거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늘 배우는 자세를 갖추고싶다. :)


인터스텔라를 보고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여기까지다. 개인적으론 위에처럼 이렇게 분류해볼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주저없이 추천!!!!!



Begin again..♥

REVIEW2014. 8. 15. 12:03


너무 오랜만에 극장에 가서 본 영화. <안녕, 헤이즐>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지만 
얼마 전에 <Begin again>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오! Once감독?하며 솔깃했었다.
사실 자리가 좋지 않아 <안녕, 헤이즐>은 볼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자리가 널널했던 오늘 조조! 딱이었다..
뒷 자리 정 가운데에서 내가 빌린 것 마냥~ 그런 느낌으로 봤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도 그렇고, 그냥 들떴다. 겨울왕국, 엣지 오브 투모로우. 그리고 비긴어게인.
특훈팀에 들어간 후로 내가 본 영화는 딱 요 3개 뿐..이였기에 들뜰 수 밖에^o^... (뜨든..)
어쨌든 줄거리는 직접 영화를 보면 알겠고, 그냥 내 느낌을 주저리 써볼까 한다.

삶은 반복이다. 그 반복 안에 조금 더 행복한 순간들, 조금 더 아픈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다녤 헬퍼님이 그러셨듯이 인생은 problem problem crisis problem problem...
이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꼬이기 마련이고, 한 번 풀리기 시작해도 다시 꼬이기 마련일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지 않을까? 누구나 한번 쯤 그렇게 생각한다. "왜 나만? 왜 나한테만?"
그리고 우린 사람이다.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 다만 그걸 통해 뭘 느끼고 배우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 주인공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와 남자 주인공 댄(마크 버팔로), 그레타의 남자친구로 나왔던 Maroon5의 보컬 데이브(애덤 리바인) 그리고 댄의 딸까지도 그 모두가 나이에 상관없이 그냥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문제들 사이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걸 보여주고 있다.
다만 문제들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데 그 안에 '음악'이라는 좋은 치유제가 있다는..
그리고 우리의 문제는 계속 될 거고,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복도 계속 될거고
혼란스러움과 흔들림은 계속 느낄거고, 청춘은 계속해서 청춘에게 주어지기엔 너무 낭비되어지는 청춘으로 남을거다.
신이 아니기에 우리가 컨트롤할 수는 없는 부분들이 아닐까..

그냥 이 영화를 통해 그런 삶을, 그리고 음악을 통해 치유되는 모습들을.. 그러나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느끼고 왔다 :D
다른 말보다도 내가 나일 수 있는 그런 삶이 가장 좋은 삶이고, 행복한 삶인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데.. 내가 나처럼 사는 삶은 정말 힘들거다. 근데 그건 가장 후회가 덜 남는 삶일거다.


* 가장 좋았던 부분
음악 영화지 않나. 당연히 음악이다. 
나는 음악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그걸 100% 확실히, 다시 느끼게 해 준 영화.
고아성이 주연으로 나왔던 한국-영국 영화 Duet 역시 같은 맥락으로 영어가 어설프고, 이야기가 훅 붕 뜨고 그런것과 상관없이
그냥 사랑스럽다. 왜? 음악으로 풀어낸 영화였고, 그 음악은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오죽할까.. Once보다 더 밝은 분위기라 좋았다는 사람도 많은데 나 역시 그랬다.
스토리도 좋고, 실제로 Maroon5의 보컬이 나와 더 눈과 귀가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키이라 나이틀리라는 배우가 그렇게 사랑스러운 배우인지 몰랐고, 풍기는 그 분위기가 참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음악이다. 가수로 데뷔해도 될 만큼 아주 아주 아주 매력적인 보이스다ㅠ_ㅠb

- Lots stars
  God, tell us the reson youth is wasted on the young.
  무엇보다도 가사가 정말 끝내줬던 곡. 어떻게 저런 가사를 썼지? 양 얘기며.. 진짜 끝내준다.
  나도 청춘의 시기라 그런지 이 곡이 내 마음에 사뿐히 깃털을 얹어놓고 간 곡. :D
  영화 끝 부분에서 여주인공을 울리기도 했지만, 내 마음도 스르르 녹아버렸다.

- A step you can't take back
  홀로 도시에 남아 외로운 이들을 위해 노래한다고 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여주인공은 참.. 예뻐보였다.
  진심으로 이 한 곡이 남자주인공의 상황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 소름~
  물론 영화여서 그렇지만, 바로 그런 게 뭔가를 창작해내고 남의 공감을 이끌어내야하는 사람들이 찌릿하는 순간이 아닐까?
  그녀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숨김없이 드러나는 노래여서 더욱 좋았다.


- No one else like you-Adam Levine
  멜로디 굿굿굿! 쫄깃쫄깃 참 좋다. 나같으면 꼴딱 넘어갔을 듯 한데..하하하하하하하^.^ 노래 잘하는 남자 너무 좋..다..
  다들 노래 잘하는 남자는 위험하다고 하지만............. 내가 포기 못하는 것 중 하나!

+

뉴스 기사를 잠깐 잠깐 봤는데 키이라 나이틀리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I found myself in a studio and I was like, 'I don't know what I'm doing at all - this is quite frightening!'',
앞으로 내 삶에서도 그 어느 곳을 가든지, 어떤 곳에서 어떤 경험을 하든지간에 내가 나를 발견하고, 바라봐주고, 으쌰으쌰 힘을 실어주는 내가 되고 싶다, 그녀의 말대로 그건 quite frightening한 감정을 수십 번, 수백 번 들게 할 지도 모른다.
요즘도 매일 그러니까. 그런데 그건 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또 그녀를 다시 바라보게 만들기 위한 선물이다.
오늘 소현언니가 보내준 묵상집의 내용처럼 두려움, 실패, 나를 짓누르게 하는 그 모습을 하고 나에게 찾아온 선물이다.
그 선물을 오늘도 함께 최선을 다해 풀고, 누리고, 끝내 깔깔깔 웃으며 이 선물을 주려고 그렇게 힘들었나보다고 말해보자!!ㅎㅎㅎ

+

영화를 보는 내내 맘을 졸이게 했던 부분 하나는 물론 따로 별거하고 있었지만 가족이 있는 댄과 그레타의 오묘한 감정들이었다.
분명 뭔가 있는데 그게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겠는.. 근데 여기서 만약 이어졌다면 조금 뒤가 안 좋았을 거 같기도하고..
막 이런 생각을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들은 분명 어떤 감정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나같으면 어땠을까?하고 영화를 보며 생각해보았다.
'그래 저런 상황이라면 사랑에도 빠질 수 있겠지....응? 근데 사랑에 빠지면 좀 이상할 거 같은데..좀 아닐 거 같은데'하는 마음으로!
역시나 한명이 감정을 표현할 만한 어떤 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흘러가진 않았다.
가족이 지켜지는 쪽으로 :) 하하하하 그 과정에서 그레타가 살짝 헛웃음? 그냥 웃음..?을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아, 이런 게 인생이지"하는 찰나의 순간이었고,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

* 또 인상적인 부분.
음악은 언제나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우리들의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의미있는 특별한 순간들로 만들어준다고.
100%%% 공감했다. 그래서 난 음악이 참 좋다.
그리고 확신했다. 나 역시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처럼 이 세상에 뭔가 내 창의력을 통해,
내 느낌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살아갈 것에 대해..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행동도 그렇다.
하루종일 해야 할 숙제도 있지만, 난 왜 이걸 쓰고 있을까?
기록하고, 더 느끼고, 새기고, 공유하고 싶어서........ㅎㅎ

That's it!

음악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주저없이 영화관 가서 보라고 추천할 수 있는 영화였다 굿!  :D

 

 










프롬의 "그녀의 바다"란 신곡을 들으며 드는 생각은, 가수라면 자기가 하고싶은 노래를 해야된다는 것.
그게 그녀를 더 가치있는 가수로 만들어준다.
적어도 이 노래를 처음듣는 나에게 지금 프롬은 그런 가수가 되었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는 인생이 되어야지 남이 사는 인생이 되어버리면 다른 사람 눈에도 그게 보인다.
물론 아닌 척 할 수는 있겠지. 눈 웃음치며, 비싼 옷과 액세서리를 온 몸에 휘두르며...



내 음악을 듣는 사람. 내 음악을 하는 사람. 내 글을 쓰는 사람. 내 말을 하는 사람.
내 삶을 온전히 내가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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