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_licious worlD

 

 

두 번째 날이자 마지막날이었던 4월 25일. 이 날을 회상하며 글을 쓰기 전, 솔직하게 고백한다. 난 지금 여행앓이중이다. 

빨리 돈을 모아, 캐나다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워홀 합격레터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별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 왜 이렇게 느린거지.. 세컨잡도 구해야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문제는 돈 문제라 일단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지만, 여행에 대한 목마름이 생겼달까. 최대한 더 많은 곳을 돌아보고싶다.

 

어제 집에 오는 길에 호주로 워홀을 다녀온 현아선배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왔다.

늘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거기서의 삶 역시 알바인생과 크게 다를 것은 없을거라는 것. 외국에 가서 생활해야만 꼭 특별한 삶이 있고 그런 건 아니라는거다. 언니와의 대화는 인터뷰 프로젝트 때 자세히 얘기하고 싶으니 아껴두기로 하고..

난 지금 현실과 내가 떠나있게 될 삶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걸쳐있는 느낌이다. 전혀 조바심 낼 필요없고, 이미 결정한 일이니 믿고 나아가면 될 것을. 답답하지만 이런 나를 달래고, 기다려주고, 푸쉬해주기로 했다. 빠샤빠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두번째 날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아침 6시,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눈이 번뜩! 떠졌다. 그 이유는... '난 프랭크를 DMZ에 꼭 데려가야만 해!!!!! OH MY!!!'

가이드마인드가 내 맘 깊은 곳에서부터 날 압박했기 때문이다. 사실 DMZ는 우리가 만나기 전부터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나왔던 얘기였다. 금요일에 DMZ투어를 갈 예정인데 같이 가겠냐고 묻는 프랭크에게 아쉽지만 갑자기 아르바이트를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미안하다며 거절을 했었다.

 

그리고 첫째 날, 우리는 한강에 다녀와 지친 몸으로 다음 날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내 생각으로는 DMZ는 이미 물 건너갔고, 시티를 중심으로 돌아야하지 않을까했다. 워드파일로 정리해둔 여행지를 같이 보는데 서울아트센터가 있었고, 나도 정확히 알고 있는 곳은 아니어서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다시 DMZ 이야기가 오갔고, 시간 체크를 해보니 하루에 1번 오전 10시 반에 갔다가 오후 5시가 넘어서 서울역에 도착하는 스케쥴이었다. 사실 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교회에서 순장모임이 있었기에 프랭크와 어딜 다녀오든 4시 전에는 빼고 얼른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딱 보기에도 프랭크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은 DMZ였다.

 

"여기가 다른 데 가는 것보다 낫지?"

 

"응, 그렇지. 근데 가능해? 갈 수 있어?"

 

괜찮겠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너무 가고 싶은 느껴져서 '가자!'하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프랭크가 보고 있는 코레일 사이트와, 내가 접속한 코레일 사이트 상에서의 공지된 DMZ train 시간이 맞지 않았다. 오마이갓ㅠㅠ.. 그래서 우린 일단 가기로 하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시간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그 시각이 11시가 조금 넘을 때였고, 나는 약간의 걱정을 안고 방으로 돌아가 DMZ train에 대해 검색을 시작했다.

 

"피곤하지만, 눈이 빠질 거 같지만, 난 해야만 해!!!!!!!!!!"

 

다시 오버랩되는 꽃보다할배의 가이드 이서진-최지우팀ㅎㅎ..요즘 한창 그리스편을 재밌게 보고 있어서 자꾸 내가 그들이 된 것 처럼 느껴졌다. 고백 하나. 난 은근히 그 포지션을 즐기고 있었다.(ㅡ.,ㅡ)

 

 

결국.. 난 새벽 1시에 잠들었고, 6시에 일어났으니 5시간을 잘 수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 걱정걱정하며 알아본 후에 내가 그렇게 찾아헤맸던 정보는 코.레.일.앱.다.운.로.드 하나로 해결할 수 있었던 아주 간단한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난 왜 진작에.. 앱을 들어가보지 않았나..'하고 진짜 옛날 사람같다며 투덜거리다가도, 혹시나하는 마음에 계속 오전 8시30분쯤에 있는 첫번째 기차와 오후 2시에 있는 마지막 기차 시간을 몇 번이고 확인하다 잠들었다.

그래도 불안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인터넷검색에 또 인터넷검색을 하며 차편 확인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프랭크에게 7시30분에 일어나면 9시30분꺼든, 10시30분꺼든 우리는 문제없이 탈 수 있을거라하고 알람시간을 맞추라했건만.. 첫 차 시간이 8시30분에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깨우지 않으면 첫 차는 무조건 못 타게 될 상황이었다.

당장 그날 밤에 공항에 가야하는 프랭크가 조금 부담될까봐 2번째 차를 탈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깨울까 말까 고민하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그냥 '오후 2시에 가도 집에 8시30분 안으로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 가게하면 되지' 하는 혼자만의 결정을 내리고 더 자게 두었다. 그리고 난 ...? 피곤하고 피곤한데....더 눕고싶은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폭풍 화장을 했다. 쌩얼에 안경을 끼고 아침부터 퀭-한 얼굴로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여잔가봐...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나중에 집에 돌아오면서는 퀭한 눈을 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 잠깐! DMZ train 예약 Tip.

 

http://www.letskorail.com/ or 코레일 앱을 통해 쉽게 승차권 예약이 가능하다.

 

 

 

 

 

 

 

*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 *

 

 

위에 있는 공지글 안내 시간을 믿으면 안된다는 것 -> 티켓 예약하기 버튼을 눌러 제대로 확인하기

지금은 이렇게 8시 35분, 14시 9분차가 도라산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로 알고 있다.

 

 

추가로 DMZ pass, DMZ train 등 여러 프로그램들이 묶어진 것과 그렇지 않은 기차표로 나눠지므로 제대로 체크해볼 것

 

무조건!!!! 왕복으로 끊고 출발해야한다. strict하지만 이게 룰이다!

도라산공원, 전망대, 땅굴체험에 관련된 안보관광티켓은 도라산역에 도착 후 끊을 수 있다. (그러므로 티켓 외 추가비발생!)

여기서도 땅굴체험시 들어가는 셔틀승강기를 이용할 건지, 아니면 도보로 이동할 건지 선택해야하는데

그 날 함께 온 여행객들에 따라 배려가 필요한 노약자분들부터 먼저 받기 때문에

대학생들, 어린이들이라면 도보로 땅굴 깊은 곳까지 30분정도 걸어야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여유가 있다면, 우리도 이용할 수 있다.(하지만 이거 꽤 힘들고, 운동만큼 땀 빼주는 효과가 있다.)

 

 

(2015년 5월 2일 토요일 기준 - 코레일 웹사이트)

 

 

 

 

 

 

 

깨알정보를 뒤로 하고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기! 뿅! :-)

 

메이크업도 했고, 스케쥴 확인도 했고, 이제 내가 할 일은 프랭크가 일어나면 이 소식을 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침 7시 반이 지나도 열리지 않는 강산이의 방 문.

'그래..피곤하겠지ㅠㅠ깨우지 말자...'하고 난 내 방으로 돌아와 누워버렸다. 뒹굴뒹굴. 잠도 못자고, 그저 뒹굴뒹굴.

 

그러고 있는데 프랭크가 깼는 지 엄마와 뭐라뭐라 대화화는 게 들렸다.

 

 

"하니야!!~~~ 얼른 일어나! 얘 일어났다! 밥은 어떻게 할 건지, 지금 바로 먹을 건지 물어봐! %#$&#"

 

프랭크의 움직임이 하나 시작되면, 우리 엄마의 반응은 두개가 시작되는 느낌. 

 

'사위 데려오면 장난아니겠다..'

 

 

 

 

그 날 아침, 우린 등갈비를 먹었다. 참외 장아찌, 오이, 나물, 각종 과일 등 언제 이렇게 아침에 잔칫상을 차려먹었지 기억도 안나는데 프랭크 때문에 나까지 덕보는 느낌이 들었다. ( 이 느낌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나도, 내 동생들도.. 프....프랭크 고마워..^ㅇ^)

이 날 아침 나는 소화가 잘 안되서 부담스러웠는데 다행히 프랭크가 앞에서 냠냠 잘 먹어줘서 너무 고마웠다.

모든 엄마들이 자기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싹싹 긁어먹는 아이들을 보고 보람을 느끼듯, 엄마 역시 잘 먹는 프랭크를 보며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침에 빵, 버터, 잼 그게 다야. 아니면 누텔라 알아? 근데 여기는... 우와.."

 

완벽한 식사였다고 계속 '난 완전 행운아임!'을 외쳤다.

 

그리고 여기서 '잼'을 '잠'으로 말하는 데 내가 계속 못 알아들어서........결국 스펠링확인까지 하게 된 웃픈 스토리가 있다..ㅋㅋ

 

"잠? 잠이 뭐야?"

 

"음... 잠~~ J A M"

 

"아............잼?..........ㅇ_ㅇ"

 

 

푸짐한 아침을 먹고, 오전 스케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너무 피곤해서 그걸 숨기지 못하고 "나 너무 피곤해..ㅎㅎㅎㅎㅎㅎㅎㅎ"하면서 피곤한 티를 다 냈었는데, 그래놓고는 어린이대공원에 가는 건 어떻냐고 제안을 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피곤했어도 그냥 좀 덜 피곤한 척 할걸~ 이왕 갈거면 나도 걔도 기분 좋게 그럴걸!"하는 후회도 남는다.

피곤하다는 나에게 "가자! 가자!"할 수는 없었을테고, DMZ만 가도 자기는 상관없다고 계속 말했지만, 우린 그 얘기를 한 지 1시간 후 대한민국의 어린이가 다 몰린 마냥 정신없었던 어린대공원 동물원 한 가운데서 원숭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이대공원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탔다. 엄마, 나, 동생2명, 그리고 프랭크까지 총 5명인데 너무 감사하게도 택시아저씨가 한 번에 태워주셨다. 버스비보다 훨씬 저렴해서 좋았다.(불법ㅡ.,ㅡ) 프랭크는 앞에, 우린 뒤에 몸을 웅크리고 탔다. 외국인이 탄 게 신기한 지 자꾸 번갈아 보시며 질문도 하시고, 말을 걸어오셨다.

 

"어린이 대공원 가는거에요?"

 

"네네ㅎㅎ~~ 외국인 친구 놀러와서 가족들하고 구경가려구요~~"

.

.

.

 

그러다 갑자기 프랭크를 보시더니 "안전벨트 안 하면 맴매할거야!!!" 하는데 조금 말투가 사나웠었다.

당연히 못 알아듣는 프랭크는 뭐라고 하시는거냐고 물었고, "안전벨트 안 매면, 경찰한테 혼난대"라고만 해줬다.

"아, 폴리스.." 근데 또 아저씨가 "난 경찰 아니야. 내가 때려준다고!!! " 이런식으로 말씀하시는 거다. 그래서 그냥 웃고 넘겼지만, 동생 강산이가 나중에 와서 말하기를 그 아저씨의 태도가 정말 별로였다고 하더라. 친절한 이미지랑은 멀었다.

도심 한 가운데서 타는 대중교통과 동네에서 타는 대중교통을 운행하는 기사님들의 태도는 다를 수 밖에 없을거다.

혹시라도 이 포스팅을 보시는 기사님들이 계시다면 조금만 더 살갑게 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날씨는 참 맑았다. 햇볕도 우리를 반겨주듯 아주 쨍쨍했다. 대공원을 한 바퀴 돌며, 꽃도 보고~ 동물원도 가고~ 미술학원에서 실습을 나온 아가들도 보고~ 누가봐도 한 가족같이 소소한 일상을 즐겼다. 특히 동물원에서 시간을 꽤 보냈었는데, 나도 오랜만에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며 옛날에 어린이, 학생 입장에서 봤던 동물원과는 전혀 느낌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불쌍한 마음이 컸다.

 

 

 

 

어렸을 때 조랑말을 타는 걸 즐겼고, 어디 여행을 갔더니 원숭이가 툭툭 쳐서 당황했었다는 등등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한 시간 반정도 돌았을 때, 우리는 정자 밑으로 가서 엄마께서 정성껏 싸오신 과일을 보고 또 한 번 감동의 간식시간을 가졌다. 순간 프랭크에게 너무 고마웠다. 이렇게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언제였는 지 기억도 안나는데.. 작년 1년동안 영어공부한다고 학원에서 살았던 나에겐 그런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더 의미있게 느껴졌다.

 

 

어린이대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베스트컷을 딱! 남기고 이제는 우리가 ~ DMZ 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 

지하철을 타고 가며 무슨 얘기를 했었나............기억이 안난다. 기억력이 낮기 때문이고, 사실 지금 5월 3일에 이어쓰기를 하고 있어서..점점 망각한다 ㅜ ㅜ 대신 서울역 도착 이후 흥미로웠던 2개의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1. 대한민국의 성형 그리고 프랑스의 패션

여행은 현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편견을 깨는 것이라 한다. 여행관련 명언을 보다가 우연히 건진 말인데, 정말 공감한다.

지하철, 버스에 있는 모든 성형 광고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 조차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하는 시선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이 성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스펙을 위해 감행하기도 한다. 이미 성형문화가 대한민국에 뿌리박힌 건 인정한다.

하지만 국민 모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반대로 프랑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잡지를 볼 때마다 프랑스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었다. 우리 집에 있는 패션에 관련 된 책 이름 역시 'French Chic'다. 불어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나에게 프랑스에 대해 하나 더 말해보라하면 망설이지 않고, 패션이라 말할 것이다. 궁금했다. 정말 프랑스=패션은 성립할까?

 

"프랭크, 너는 여행다니면서 맨날 같은 옷 입게 되잖아. 근데 평소엔 어때?

 

이런 말이 있잖아. 프랜치 스타일~ 프랑스 사람들은 진짜 다 패션에 신경쓰고 다녀?"

 

"아니지~~!!! 그거 알아? 물론 프랑스인들, 패션 좋아하지! 근데 그냥 사람마다 다른거야.

 

한국 오기 전에 나도 한국사람이라면 다 성형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 이 얘기랑 똑같은거지."

 

 

당연한 이야기. 사람은 다 다르고, 그 안에서 다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화가 대표성을 갖고 그렇게 보여질 뿐이다.

다만 이런 '다름'에 대해 이론으로 배웠을 때, 그 나라 사람에게서 직접 들었을 때의 느낌은 좀 달랐다.

'정말 그렇구나...'하고 진심으로 훅 다가온다. 그렇게 하나하나 내가 갖고 있던 편견들이 한 꺼풀, 한 꺼풀씩 벗겨졌으면..

앞으로 나의 삶에서 마주하는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부디 그 안에 있는 진짜 삶을 들여다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포스팅을 자꾸 끊어 쓰다보니, 저 위에 설명한 2가지의 이야기 중 1개가 이 이야기인 지도 가물가물하다. 이놈의 붕어기억력!

아마도 이 이야기가 맞을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까먹기 전에 후다닥 글을 마무리 지어야지 안되겠다.)

 

 

2. 나는 여전한 길치.

맞다. 나는 길치다. 친한 친구들은 알 수 있다. 내게 방향 감각이 얼마나 없는 지, 또 내 자신도 아주 잘 안다. 너무 잘 잃어서 길을 잃는 것을 그냥 즐기자는 마인드가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DMZ기차를 타는 곳까지 당당하게 안내하겠다고 앞장 섰던 자칭 가이드는 승강장찾기부터 바로 무너져내렸다. '어디로...가더라?' '어디지?' 두리번 거리는 나를 보고 불안했는지'자꾸 여기 맞아? 확실한거지?'하고 물었다. 솔직히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친구 한스 앞에서도 몇 번 그랬었고, 길을 잘 잃기 때문에 길을 찾는 일이 생길 때 느껴지는 부담감도 꽤 있다. 차라리 혼자라면 길을 잃고도, 사진을 찍으러 간다든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이므로.. 나는 열심히 묻고, 또 묻고 다른 길로 가야 했다.

 

혹시, 정~말 혹시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안내하자면 기차타는 곳으로 가면 된다.

경의선 방향이 아니라 그냥 기차타는 곳!  KTX도 있고.. DMZ 기차도 있고..(정말 바보같았던 건 몇 주 전에 아는 언니가 대구에 내려갈 때 장난으로 KTX를 탔다가 내린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는 거ㅋㅋㅋ) 이제는 절대 안 까먹어야지!!.....

오히려 프랭크가 더 길을 잘 찾는 걸 보고 역시 여행자는 다른가.......싶었지만ㅋㅋ그냥 내가 길치인걸로^^

 

 

 

기차 안에는 외국인들이 꽤 많았다. 그 때 한국인 한 명이 가이드처럼 인솔하며 다녔는데 영어를 너무 잘해서 그 분이 영어로 블라블라할 때마다 속으로 주눅이 들어있었다. 자꾸 흘끗흘끗 그 여자 쪽을 보며 '우와..' '아, 나도 저렇게 설명해주고 싶은데'하며 프랭크한테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다른 때보다 DMZ에 가는 내내 역사, 문화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했던 게 너무 아쉬웠다. 나중에 프랭크에게 써 준 편지에 더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는데 영어실력때문에 그러지 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썼었다. 다음 번에 만날 땐, 꼭! 하고싶은 말은 다 영어로 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만나자!!!! 아자자!!!

아, 그리고 또 하나는 아는만큼 보인다고. 아는 게 정말 왜 이리 없는 지.. 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영어실력, 지식이 해박하지 않아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투어였다.. ㅠ.ㅠ

 

 

 

나에게 아쉬웠던 것 말고 DMZ투어 자체에도 아쉬운 부분들은 많았다. 맨 처음에 도라산역에서 내려 안내를 따라 걸으면 도라산 공원이 나온다. 탱크, 통일을 바라는 아이들의 타일 작품, 등 볼만한 것들이 드문드문 놓여져있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 가이드가 한국말로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디고 할 때 프랭크는 계속 옆에서 나를 끌었다. "들어가자, 들어가면 안돼? 오마이갓. 다 한국어야. 쓋!" 이렇게 계속 불만을 터뜨렸었다. 나도 영어로 저걸 다 동시통역 해줄 수 없어 아쉬웠지만, 한국말로 끝도 없이 말하던 가이드를 보며 프랭크 입장에선 당연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장소가 장소인만큼, 관광객들 특히 외국인이라면 그 문화를 이해해주고, 이해해줘야하겠지만 도라산 공원같은 경우에는 정말 내 진짜 말투로 표현하자면, '겁나 빨리 돌아본다'. 걸음을 빨리빨리 해야되는데, 잠깐 뭐 하나를 구경하고 싶어 다가가면 이미 저~ 멀리 가있는 가이드분..ㅠㅠ 시간이 정말 촉박하다. 마치 한 관광객으로 한국에 온 것 마냥 돌아야하는 부분은 외국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서로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니 영상 상영관을 제외하고 도라산 공원에서도 영어로 간단히 통역해줄 수 있는 분이 있었으면 더 좋을 거 같다.

 

 

 

그 다음 우리는 버스를 타고 전망대에서 내렸다. 땅굴도 괜찮았지만, 가장 우리의 발을 오래 붙잡아둔 곳은 여기였다. 우리가 닿고싶은 그 땅을 마주서고 볼 수 있는 곳. 그래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 프랭크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랬을 거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사진처럼 망원경을 5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그 곳에서 한 아이가 소리질렀다.

"우와! 아파트도 보여요. 저기~~" 정말이냐고 하며 내 망원경 시간이 끝나서 그 아이에게 나도 보여달라며 다가갔다.

정말 저게 아파트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어디가 어디인 지 구분이 안가지만 위치라도 파악하고 갈 걸 하는 후회와, 또 저 땅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점점 무거워짐을 느꼈다.

 

 

 

왜 우리는 이 곳을 망원경을 통해 바라봐야 하는 지, 특별하게 만들어 진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를 건너 듯 출입국사무소를 들려 신원검사를 제대로 받고 와야 하는 건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것. 사실 나는 통일비전아카데미라는 북한과 한국의 통일에 대해 계속해서 기도하는 몇몇 교회연합과 민족사랑나눔에 의해 만들어진 곳에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서기라는 타이틀도 달았다. 그리고 2년 전, 통일관광론이란 수업을 통해 현대 아산에서 일하셔서 북한에도 직접 계셨던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타이밍이 맞물려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는 북한과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그 소망을 내 안에 자리잡게 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고, 그들의 진짜 삶에 대한 관심도 서서히 줄어들었음을, 다시 그 사실에 대해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 앞에서 돌아볼 수 있었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던 몇몇 친구들, 바라지만 왜 바라는 지 모르던 시간들, 그리고 또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일이 아니라는 것 마냥 그저 내 삶을 살아가기 바쁜 나.

정말 신기하게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것 같이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 있어 한 폭의 그림같았던 DMZ.. 그 앞에 나는 처음보는 외국인이랑 그렇게 서서 아마도 같은 소망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척박한 땅을 바라보는 데 그 가운데 너무 아름다운 땅이 있고, 그 땅은 우리가 함께 견뎌내고, 극복해야할 할 땅이었다.

언제쯤 저길 건널 수 있을까, 금방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그 끝은 언제일까?

 

 

 

블로그에 올리고 싶지만, 올려도 되는 지 몰라서 일단 내 핸드폰에만 소유중인 음성노트가 있다.


"지금은 열차로 갈 수 있는 최북단역이지만, 오천만 국민의 염원인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북을 넘어 유럽으로 가게 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의 출발역이 될 것입니다."

 

(실크로드 :  유라시아(유럽+아시아)를 포괄하는... 부산∼북한∼러시아∼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관통하는 철도인 SRX)

 

정말 그런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 다음은 땅굴체험 + 영상관이다. 땅굴체험은 정말.. 뭐가 없고 정말 땅굴 그 자체였지만 북한군들이 이 땅굴을 팠을 때의 그 흔적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에 그냥 말로만 듣던 '땅굴이 있다'라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살아있는 체험'은 이토록 중요하다. 책에서 본 유적지와 실제로 그걸 가서 봤을 때의 교육의 차이는 정말 크구나 느꼈다. 살아있는 체험은 이미지로, 영상으로 우리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기 때문이고 , 그걸 통해서 계속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포스팅 앞 쪽에서 DMZ 투어에 대한 설명을 하는 부분에 셔틀승강기에 대한 언급을 했었다. 걷기 힘드시거나, 심장에 문제가 있거나 하시는 분들은 진심으로 말하는데 승강기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 수 있다.

듣자하니, 심장이 안 좋은 분들 중에 말을 안 하고 들어갔다가 숨차서 오시는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웃겼던 포인트가 하나 있었다. 우리가 제~~~~일 먼저 가서 제~~일 먼저 그 끝을 보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 뚫려있는 투명 창으로 그 땅굴의 끝을 본 뒤 다시 돌아섰을 때, 다른 사람들은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 1등으로 가길 잘했다고 서로 다독였다.

그러다가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잠깐 쉬었다. 땅굴 안이 좁은데다가 남자들의 경우 천장에 머리가 닿기 때문에 숙이면서 다녀야 했는데, 키가 작은 나도 불편했는데, 프랭크는 오죽 불편했을까. 정말 힘들어보였다.

숨을 고르면서 쉬고 있다가 "갈까?"해서 올라가는데 프랭크가 갑자기 점점 속도를 내는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기서 진짜 진심으로 "너무했어!!!!!!!!!!!"를 외치고 싶었지만, 따라가기에도 힘들었고, 소리 지르기도 뭐해서 그냥 "그래.. 너 먼저 올라가라, 이자식아"하고 옆에 같이 걷게 된 꼬마아이랑 여유있게 대화하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단체로 왔다는 그 꼬마아이는 계속 땅굴 안에서 "아, 괜히 들어왔어!! 괜히 왔어!!"를 외치며 열심히 걷고 있었다. 갑자기 먼저 휙휙 올라가버린 프랭크가 괜히 얄미웠었지만,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시간도 참 좋았다.

 

 

 

영상관에 들어가면 우리가 봤던 것들을 역사적으로 술술 풀어내는 영상을 볼 수가 있고, 전시관 문이 닫히고 다같이 들어와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여기서 좋았던 건 외국인들을 위한 오디오파일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 다른 외국인들이 쓰고 있던 헤드셋을 보고 부리나케 인포로 달려가 가져왔건만 이미 누구한테 얻었는 지 여유있게 "어디 갔다 왔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프랭크.

여기서 느낀건데 나는 계속 프랭크에게 배려를 해주었지만, 딱히 표현을 하면서 배려해주진 않았다. 어디가면 어디간다고, 뭐가 있으면 뭐가 있어서 거기에 간다고. 소소하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그랬지만, 프랭크가 답답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가 DMZ 관광일정은 끝이었다.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참, 버스 안에서 지난 번에 DMZ구역에 불이 한 번 났던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걸 프랭크에게 설명하다가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는데 거기서 또 내 한계가 드러났다. "네이X에 물어봐야겠다"하고 검색을 해야만 정보를 전할 수 있다는 것. 편한 데, 그만큼 내가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DMZ관광은 내가 얼마나 무관심하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프랭크가 질문할 때마다 조금씩 긴장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배우자.. 좀 알자!!!!

 

 

 

다시 서울역으로 컴백. 그리고 우린 지나가다가 경주빵을 봤다.

 

"오~ 경주빵~"

 

"유명한거야?"

 

"응. 나도 경주에 가본 적은 없는데 유명하대."

 

"잠깐만! 너네 엄마가 이거 좋아하실까?"

 

"Maybe?"...........

 

은연중에 "Maybe"라는 단어를 쓰다가 알게 된 내 말하기 습관.

기차에서 뭔가를 말하다가 계속 메이비~ 메이비~ 거릴 때가 있었는데 프랭크가 진지하게 메이비사용법에 대해 알려주었었다.

"Maybe"라고 할 땐 yes인지 no인지 너 의견을 말해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원래 우유부단한 성격, 내 한국에서의 말투. 영어도 언어라는 건 1년동안 말하기영어를 하면서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계속 우유부단한 단어선택을 하고 습관처럼 내뱉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그래서........저 메이비!는 그 이후로도 유행어처럼 계속 쓰여졌다. 뭐만 하면 자꾸 "이것도 메이비~?"이러면서...ㅎㅎ

 

 

 

"사진 찍을래?"

 

"아니. 포즈 좀 취해봐! 이런 거?"

 

그래서 찍은 사진. 그래서 나도 찍어주겠다고 너도 같은 포즈를 취해보라했더니......

 

"No~~~~~~No~~"거리는 프랭크.

 

DMZ에 다녀오면서 유독 더 친해진 것 같은 느낌. 정말 좋은 친구고, 유쾌하고 재밌는 친구였다는 걸 함께 여행하며 더 많이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계속 우리 가족 카톡방엔 불이 나고 있었다.

 

"하니야, 오고 있니?"

 

"삼겹살 먹을거지?"

 

"어디쯤이니?"

 

.........우리 엄마 정말 짱.....이었다. 너무 고맙고, 내가 프랭크였어도 정말 그 친절에 녹아내렸을 만큼 친절했다.

(엄마, 우리 이때로 다시 돌아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에 오는 길에 이런저런 덕담을 주고 받다가, 또 장난을 쳤다.

 

"한국에선 너가 나한테 누나.라고 해야되는거야. 자, 그럼 해봐! "

 

"오케이~하니~~~~~~"

 

"ㅡㅡ...아니, 누나. 누나."

 

"아, 그거.. 뭐더라? 오...오빠? 맞나?"

 

"그게 뭐?"

 

"오빠 프랭크~~~"

 

얘네는 (Mr.xxx)이렇게 앞에 붙여서 그런 지 오빠가 앞에 붙는 줄 알았나보다. 이렇게 장난을 치면서 오다보니 부쩍 친해졌구나~하고 괜히 아쉬워지는 마음. 다시 생각해보면 하루라서 아쉬웠지만, 하루라서 나에게도, 우리 가족들에게도 너무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던 거 같다. 모든 조금 아쉬울 때, 조금 모자랄 때가 가장 좋은 거라니까..

 

 

 

 

 

집에 도착하니 밤 8시 반, 집 근처 삼겹살 집을 예약해놓으신 우리 엄마님......

막내 동생 빼고 총 5명이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맛있는 삼겹살 집이 있었다니!!!!하며 우걱우걱 먹었다.

그 와중에 또 우리 엄마는 누가 진짜 아들인 지 헷갈릴 정도로 프랭크 앞으로 고기와 반찬을 슉슉 날아다 주시고,

둘째가 한 마디를 날리자 우리 모두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엄마... 우리 불판이나 신경 좀 써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운 내 동생. 아무리 자기도 프랭크가 좋았다지만, 고기 앞에서 한 마디 하는 게 왜이리 웃기던지. 

참.. 배탈이 난 줄도 모르고 그 날 삼겹살을 조금 드시던 아빠는 젓가락을 두고 말도 없이 사라지시더니 다시 집에서 만났다.

프랭크는 제일 마지막까지 냠냠냠냠 하며 삼겹살을 열심히 먹었는데, 정말.... 잘 먹었다.

아시아 3개월 여행 중인 그에게 마지막 일정은 일본에서의 3일이었는데, 그날 밤 식사가 아마 자기한텐 가장 거하게 먹는 마지막 식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더 잘 먹는 게 느껴졌다. 상추쌈을 나보다 더 잘 먹어서 놀라며 먹었는데, 잘 먹어주니 사주는 사람 기분도 좋아질 수 밖에 없었다.

 

 

 

신발을 신고나오는 데 가격을 묻는 프랭크. 자기도 돈을 내려고 했나보다. 워낙 서양인들의 더치페이문화는 많이 들었었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때도, 또 프랭크의 친구가 밥을 살 때도.. "Oh.. my.. Korean is.." 이런 걸 보면 정말 흔치는 않은가.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물론 나도 절대적으로 더치페이를 선호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선 한 턱 쏘는 문화가 훨씬 더 강한 거 같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적은 사람들보다 더 내야만 하는 문화가 더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 보면 "잉?"하는 순간들이 좀 있는 거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5분도 안 걸렸다. 그치만 그 짧은 시간은 하루 동안의 서로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거 알아? 너네 가족은 정말... 정말 최고였어. 특히 너네 엄마는... 진짜...."

 

"ㅠㅠ우리도 진짜 좋았어. 얼마나 우리 가족들이 걱정했는 지 말해줬잖아. 근데 나도 이렇게까지 친해질 줄은 몰랐어.."

 

"진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많았어.. 브라질에 있다는 친한 친구 있다고 했잖아.

 

걔네 가족하고 함께 있을 때의 그 느낌하고 정말 똑같았어. 정말.. 딱 하루였는데 이 느낌은 평생 쭉 가져갈 것 같아."

 

 

말을 어쩜 저렇게 예쁘게 하는지.. 나의 부족한 통역에 엄마 역시 옆에서 계속 한국어로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나도.. 나도 정말 좋았어. 그리고 모든 엄마 마음은 다 똑같지. 앞으로도 하는 일 다 잘 되고, 여행도 잘 하고~"

 

근데 그렇게 진지하고 훈훈하던 대화가 오가고 있던 차에,

"나 지금 중간에서 뭐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순간 빵 터져버렸었다. ㅎㅎㅎㅎㅎㅎ

어쨌든 뭐라고 말해야할 지 모르지만 너무 고마워하는 프랭크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언어는 정말 중요하다. 조금 더 많은 걸 정확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언어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의 100%를 채워주는 건 아니다. 우리의 눈빛이, 마음이, 행동이 그 언어보다 클 때가 많다.

아마 프랭크는 대한민국 엄마들의 따뜻함을 느끼고 돌아갔을 거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끈끈한 정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갔을 거다.

그걸로 너무나 만족스럽다. 맨 처음 카우치서핑을 시작하고, 호스트로 어떻게 그들에게 진짜 한국을 느끼게 해줄 지 고민했을 때, 우리가 그걸 느끼게 해줄 수 있을 지 의문스러웠다. 너무나 좋은 가족이지만, 누구보다 내 가족이기에 그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 역시 가족이라 그만큼의 자신이 없었던 거다. 하지만 우리 가족 한명한명은 내가 생각하고 제한했던 모습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었고, 사랑이 많은 가족이었고, 그래서 나도 이만큼 자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 포스팅을 시작한 지 일주일 째인데, 조금 조금씩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쓰고 있었다.

딱 하루였는데 그 하루의 발자국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 일주일 째 그 날을 떠올리며 쓰고 있는 나도 참....대단하다.ㅋㅋㅋㅋㅋㅋ

벌써 5월 5일. 어린이 날이다. 오늘은 가족들이랑 서울 나들이로 북촌 한옥마을에 가기로 했다.

차도 없고, 사실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멀리까지 다같이 나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나는 우리가족의 또 다른 여행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꿈꾸게된다. 때론 그 모든 것들이 사치라고 말하지만, 적어도 이상주의인 나에게 있어서는 현실이다. 정말 현실적으로 난 우리가족과 프랭크의 가족들이 언젠가 프랑스에서 만날 것을 꿈꾸게 됐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더... 성숙해질거다 :) 부족한 우리지만, 이렇게 하나의 일을 또 한 번 함께 잘 넘었기 때문이다.

쓰다보니 가족사랑에 대한 글이 되어버렸는데, 정말 그렇다. 이 카우치서핑을 통해 내가 발견한 또 하나의 소중함이 바로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에게 카우치서핑을 진심으로 추천하고 싶은거다.

 

 

 

여튼! 이제는 정말 마무리를 해야할 시간! :)

집에 돌아온 후, 프랭크보고 빨리 씻고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정말 헤어져야 할 시간이구나ㅜ ㅜ...싶어서 속으론 우울했지만, 겉으론 괜히 늦기 전에 빨리 준비하라며 재촉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랭크와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어느샌가부터 지인들에게는 매일 말하고 다녔던 그 인터뷰 프로젝트! 어쩌다보니 프랭크가 나의 첫 인터뷰이가 되었다.

사실 전 날부터 부탁했던 건데, 이렇게 프랭크가 떠나기 전, 급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정말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고,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

원래 최초의 인터뷰이로 생각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사람 일은 정말 모르나보다. 첫 인터뷰이가 프랭크가 될 줄 내가 어찌 알았을까? DMZ에 가봐야지, 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외국인과 함께 그곳에 가게 될 줄은 몰랐지.. 이토록 인생은 하루하루 예측불가하다. 그래서? 그래서 너무 너무 너무 재미있다! 헤헤!

 

 

프랭크와는 군자에서 바이바이했다. 길을 잘 모를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프랭크가 전철을 타기 전까지 데려다주었다.

아쉬웠던 건, 허그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0.1초? 하하하하핳하하하하 프랭크 보고 있나?

한국말이라 모르겠지만, 여튼 우린 정말 초스피드로 굿바이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헤어졌다.

대신 프랭크로부터 급.선.물을 하나 받았다. 바로 이거이거! 평.안.부? 중국 템플에서 샀다고 했었나..

두 개가 있는 건 줄은 몰랐는데, 이 팔찌와 관련해서도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한테 중국어 읽을줄 아냐며 자꾸 물어보는데 '한자'에 젬병인 나는 뭐가 뭔지도 몰랐다. 그나마 한문을 조금 아는 엄마는 평안까지는 아셨는데, 그 뒤에 그 '부'자를 몰라서 중국어를 하시는 아시는 분께 카톡까지 보내며 팔찌에 새겨진 저 부적의 뜻을 꼭 알아야겠다며 애를 쓰셨었다. 결국 몇 십분만에 알아오셔가지고는 프랭크 앞에서 아는 척 하시며 막~ 알려주는데 너무 귀여우셨었다.ㅎㅎ

아무튼 프랭크에겐 그 팔찌가 되게 소중해보였다. 기념품이지만, 그래도 뭔가 기운이 느껴져서 계속 갖고 정말 그러길 소망하는.

뭐 부적이 다 그렇다마는..ㅎㅎ 나중에 굿바이메시지를 보내기를, 자기도 사실 하나 더 있다고. 같은 팔찌니까 연결되어있는거라고 안전하게 여행하고, 잘 살자고하더라. ㅠ.ㅠ 흐잉 감동감동!!!! 아..점점 블로그체가 아니라 내 온라인체가 나오고 있다...하하하하ㅎㅎ

 

 

여기까지가 내가 한국에서 보낸 프랭크와의 하루 반의 아주 디테일한 여행이야기다.

나에겐 더없이 소중했던 첫 호스트 도전기, 첫 카우치서핑 도전기, 첫 인터뷰, 첫 프랑스인 친구.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가족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에 대한 확고함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는데,

전에도 언급했듯 캐나다 워홀을 가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너무 바래왔던 일들이지만 새삼 '난 왜 워홀을 가려는걸까', '난 왜 여행을 가고 싶어했을까',

'난 왜 다르게 살아가고 싶었던 걸까?', '20대를 어떻게 살아야할까?'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가?'

이런 여러 질문들 사이에서 '여행을 통해 그 답을 깨달아갈 것을 기대해도 된다'라는 답을 받은 느낌.

그래,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여행을 다닌다는 건 말도 안될 수 있지만, 난 이걸 이뤄가고 있고

세상을 무대로 움직이고 싶다.라는 소망들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20대이다.

 

 

내가 프랭크를 보며 느꼈던 건, 지난 여행관련 강연 때 최효석작가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처럼 여행좋아하는 사람 치고 안괜찮은 사람 없다는 거?.. 물론 그 분 경험상이겠지만,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많이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과 틀에 갇힌 사람의 생각차이는 다를 수 밖에 없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그래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고 싶다. 아니,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직접 내 발로 걷고, 경험하고, 전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히히.. 마지막으로 단체사진을 투척! 정말 길었던 포스팅의 끝이다.(읽어주신 분들.. 고생많으셨어요ㅠㅠ토닥토닥!!♥)

훗날 이 기록들이 내가 여행관련 책을 냈을 때, 혹은 어디선가 여행관련 글을 쓰고 있을 때 좋은 여행수기가 될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신 내 버팀목 하나님께, 카우치서핑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주신 최효석 작가님께, 좋은 친구가 된 프랭크에게, 정말 든든했던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그리고 여러분!!!!!!!!!! 저는 또 다른 재미진 포스팅과 함께 곧 돌아오겠습니다!

한국나이로는 22살인 프랭크!ㅎㅎㅎ3개월 간 아시아여행을 마치고 다시 호주의 워홀러 일상으로 돌아간 그의 라이프스타일!

궁금하시다면......다음 포스팅인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대해주세요!!!!!!!!!!!!! 그럼 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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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담아두고 다시 열어볼 수 있는 그런 캡슐이 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캡슐을 만들어낼까?

실제로 무언가에 쉽게 감동받는 내게 그런 캡슐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100개는 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그 중에 하나는 나의 첫 카우치서핑 여행자인 Franck와의 여행이 될 것이다.

 

 

첫째 날, 갑자기 에너지를 쏟아 체력이 바닥난 상태로 겨우겨우 블로그에 업로드했던 글.

[ 한 여행자의 여행을 도우려는 것이 한낱 시작점이었다면, 같은 곳을 그 여행자와 함께함으로써 또 다른 느낌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건 나에게도 "여행"이 된다.] 였다. 참 내 글답게 복잡한 한 줄이지만 심플하게 정리하면 이거다.

같은 길도 다른 사람과 함께 다시 갔을 땐 새로운 길, 새로운 경험이 된다는 것.

어디서 들었던 말이다. 이렇게 그냥 듣고 지나쳤던 말이 나의 경험으로 다가왔을 때,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기억이 된다.

왜 '직접적 경험'이 중요한 지, 왜 그렇게 다들 '책'만 붙들고 있지 말고, '경험'하라고 하는 지 알 거 같았다.

살아있는 걸 받아들이려면 내 발로 직접 그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걷고, 오르고,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부터 정~말 행복했던 하루 반나절동안의 카우치서핑 경험을 기록해볼까? YEAH!!! :D

오그리토그리 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블로깅을 미루고 싶지 않다. 쭉! 가보자. 멈추지 말고.

 

 

 

 

 

2015. 04. 24

 

요즘 아침 10시부터 베이비시터로 알바를 뛰고 있는 나는 그 전날인 23일 아침부터 내 방을 포함한 집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 방만 몇 시간을 했다. 왜 그랬는 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혹시라도 내 방에 들어와 실망을 하게 될까봐?

하지만 우리집에 오게 될 손님은 정작 내 방에서 숙박할 게 아니라는 것.

 

아빠는 그런 나를 보시고서는 뒤에서 이렇게 말하셨다.

"제발 평소에 좀 그렇게 해라."

"아빠, 근데 난 왜 내 방을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거지?...."

"내말이"

 

그렇다. 나는 '손님' 맞이할 준비를 정말, 정말로 열심히 했다. 혹시라도 '이 집은 좀 더럽고, 별로네'라고 평가받기 싫은 마음에 5시간 이상을 청소했다. 베이비시터까지 합쳐서 하루에 13시간 이상 육체노동을 한 것이다. 피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4일 아침, 전날 새벽2시에 이어 동생 강산이의 방(손님이 묵을 방)에서는 '내가 여행자라면 어떤 방에서 쉬고 싶을까?'란 생각을 하며 환영메시지를 적어내려갔다. 적어야지- 하고 생각만했는데 적고보니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단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프랭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이걸 보고는 "So kind!"를 외쳤고, 나중엔 자기 가족들에게도 공유를 했다며 많이 고마워했다.

 

작은 배려, 작은 관심의 표현은 늘 그 이상이다.

 

 

 

 

 

오후 6시31분.

 

OMG!! 알바를 마치고, 10분거리에 있는 중곡역으로 향하던 중에 왜 그렇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지. 어느새 피곤함도 잊은 채 기대감과 떨림으로 가득했다. 숨을 고르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건너편 1번 출구를 보니 한눈에 봐도 '나 여행자임'하는 포스로 엄청난 짐과 함께 외국인이 핸드폰을 보고 서 있었다. 1분을 늦은 나는 다급하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건너편에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Hi~~~ :D!!!!! Nice to meet you!"

이 인사를 건네기 몇초 전 신호를 건너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사는 어떻게 하지, 반갑게 해야되는데, 아.. 그냥 편하게 하면되지 뭐! 한국식으로 해볼까, 아니야..'

뭐든지 처음은 힘들다. 하지만 그 상황을 맞닥뜨리게되면 어떻게든 그냥 잘 흘러갈 때가 많다.

보통 외국인들과의 인사처럼 허그를 하며 어색어색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정말 무거워보이는 여행배낭과 뭘 그리 꽉꽉 채워넣었는지 터질 것만 같은 백팩 하나를 한 손으로 쥐고 가는 게 너무 고생했겠다 싶어 하나 들어주려고 했다.

"도와줄까?" "아냐, 괜찮아 이거 진~짜 무거워"

.......지...진짜 무거웠다....... 그래서 1초만에 바로 넘겨줬다.

 

그러고는 영어리스닝이 시작됐다. 정말 리얼.. 한국어로 '안녕'도 모른다는 프랑스인. 그렇게 그의 말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여행여정이 어떻게 됐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카우치서핑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을 나누었다.

 

"아마 우리 가족들은 좀 긴장하고 있을거야"

 

현관문을 열자마자 고1, 중3짜리 동생들의 반응은 역시나..  

"우오아아아아악" "안...안녕하세요__)" 예의 바르지만 부끄러운 인사.

 

 

그때는 전혀 몰랐다. 한창 사춘기인데다가 여드름과 키크는 게 인생최대고민인 둘째 강산이가 프랭크로부터 더 넓은 세상에 나가는 것에 대해 모티베이션을 얻게될 지(나의 잔소리와 조언보다 몇 배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친해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게 될 지. 그리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우리 가족과 단 하루만에 얼마나 친해지게 될 지를 말이다.

 

 

오후 7시 50분

 

프랭크는 건대에서 친구들을 만나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겨우 하루 반을 머무는데 함께 첫 식사를 할 수 없어나도 가족도 조금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괜찮으면 친구와 같이 저녁 먹는 건 어떻냐는 말에 나도 그냥 조인하게 됐다.건대에 가기 전, 시간이 조금 남아서 식탁에 앉아 여행사진을 보여주었다.

프랑스에 있는 Nancy에 살았던프랭크. 바탕화면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있는 그 광장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 아름다웠다.

"우와!!! 완전 영화같은데?" "그치? 진짜 아름다워, " 정말 그랬다.

그런데 왜 이 사진이 바탕화면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프랭크는 현재 호주에서 워홀러로 지내는 중에 아시아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고, 가족을 정말 그리워하고, 보고싶어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시티에 대한 그리움이 묻혀 있을거다.

나 역시 타지에 나가면 내 바탕화면이 서울일까? 우리 집일까? 아니면 내 방? 잘 모르겠다.

결론은 난시라는 곳, 꼭 가보고 싶을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위 사진은 프랑스 관광청에서 소개하는 사진인데, 프랭크가 갖고 있는 직접 찍은 사진들이 훨~씬 아름답다. 문화유산이 많은 곳.

불어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난시도 꼭 가보리!ㅎㅎ

 

 

 

 

 

위에 있는 사진은 얼마 전에 처음으로 가봤던 커먼그라운드다. 클럽음악이 들려오자 춤추는 걸 좋아한다는 프랭크는 조금씩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사실 이 때 동행했던 다른 한 명은 그가 교환학생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공부했을 때 만난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이었다. 나보다 1살 많은 오빠라 더 반가웠고(헤헤), 나 역시 프랭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인을 통해 프랭크가 예전에 어떻게 지냈는 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여담인데 저 사진에서 나는 아직 프랭크랑 그렇게 친해진 상태가 아니었다. 찍으면서도 "안 친한 거 다 티나죠"하며 찍었던 사진.

 

사실 커먼그라운드에 가기 전, 저녁을 먹으러 로봇김밥에 들어가서도 나는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었다.

마치 내가 가이드라도 된 듯이 건대를 이리저리 훑어봐야했었기 때문이다.

프랭크의 친구 역시 건대가 처음이었고(대학원생이셨는데 부산 출신이고, 공부로 바쁘셔서 늘 신촌 밖으로는 많이 안나오신다는..)

건대를 정말 많이 와봤지만, 늘 가는 곳만 가고 밥집 역시 그냥 보이는데로 들어가도 됐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맛있는 걸 먹여야만 할 거 같았고, 한국적인 음식을 먹여야만 할 거 같은 부담과 꼭 '맛집'에 가야만 한다는 부담이 있었던 것이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했던 건대 2번출구 엔젤리너스 앞에서 나와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로데오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둘은 반가워서 블라블라 얘기를 하는데 나는 여러 번 앞장서서 갔다. 괜히 불안해서..

프랭크와 나는 돈을 뽑아야하는데 ATM기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맛집도 안 보이고,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꾸 꽃보다할배의 '이서진'이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었을까....ㅎㅎ

 

그런데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하진 않은 거였다. 비싼 음식이 아니여도, 맛집이 아니여도, 그냥 평타만 때려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긴장감이 조금 풀리고 나도 조금씩 그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게되었다. 그치만 이 날은 그냥 둘의 시간을 주고 싶어서(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모르므로 나도 별로 할 얘기는 없었...다는 거ㅠㅠ) 리스너와 가이드역할에 충실했다.

 

아, 하나 생각한 건 교환학생갈 기회가 있으면 꼭 가라고 추천해줬는데.. 외국에서 학교생활해보는 거, 정말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예전엔 그냥 해외면 해외생활 다 비슷하지~했는데 이제는 학원이든 학교든 꼭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 중 하나는 교환학생이지만, 그 땐 뭘 몰라도 정말 몰랐던 때였기 때문에 후회할 것도 없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기회들을 바라보자 :-)

 

 

 

첫째 날의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역시 한강이었다.

건대에서 뚝섬유원지를 걸어가는 그 길은 사실 친구들과 걸어갔을 때마다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마실가면 어느새 도착해있는 그 정도의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은 장소로 안내해야만 한다는'책임감'을 느끼다보니 끝이 안보이는 거 같다는 그들의 리액션에 조금 힘들진 않을까 걱정했다.

게다가 프랭크의 경우에는 그 날 DMZ에도 갔다온 걸로 알고 있어서.... 나중엔 너 오늘 충분히 많이 걷지 않았냐고, 힘들텐데 미안하다고 했다. 근데 정말 다행히 프랭크는 그날 늦게 일어나서 못갔다고 했다. Thank god!

 

도착하니 역시나 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랭크는 사실 술 먹는 것, 노는 것, 클럽가는 것을 즐기는 친구인데 무경오빠와 나는 그쪽 문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보통 20대처럼 '한강에선 치맥'문화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고, 치킨은 못먹더라도 맥주는 먹이자!하는 마음으로 맥주와 음료같은 크루져를 사서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강을 즐길 수 있었다.

오는 길에 자꾸 두 사람이 괜찮은지 신경을 쓰면서 왔는데 막상 와보니 너무 좋으니 나 역시 절로 신이 났다.

주말답게 여기저기서 치맥을 즐기고, 치콜(치킨+콜라)을 즐기고 있었으며 소소한 불꽃놀이를 하는 젊은이들도 많았다.

옆에서 무경오빠가 불꽃놀이하는 게 위험해보여서 혼자 자꾸 저~~기 멀리로 도망가있었는데 그냥 그런 별거 아닌 것 같은 순간까지도 다 좋고, 행복했다. 나에겐 익숙한 장소이지만, 그 순간은 정말,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비긴 어게인' 영화대사가 떠오른다.

[ 난 이래서 음악이 좋아,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까지도 의미를 갖게 되잖아.

이런 평범함도 어느 순간 갑자기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거든. 그게 바로 음악이야.]

 

음악 뿐 아니라 여행도, 사람도 그렇다. 지극히 따분한 일상의 순간은 여행을 통해 180도 달라지고, 사람을 통해 360도 달라질 수 있다.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젊음. 나 역시 그 젊음의 시기를 그냥 흘려보내고만 싶지 않은 욕심이 강해지고 있는 최근 몇 년. 내가 곧 떠나게 될 여행 역시 프랭크의 여행처럼 내 삶에 빛나는 순간들, 많은 걸 배우게 될 시간들이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했다.

사람들이 막 몰려있고, 번쩍번쩍이는 조명이 돌아가는 가운데 지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뮤직비디오 촬영같아보이는데 백그라운드에서는 전기가 차단되는 옷같은 걸 입고 지지지지지직- 지직- 거리며 싸우는 듯한 모션을 치하는 두 사람이 있었고, 악기를 연주하는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프랭크는 굉장히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연신 크레이지~를 외쳐댔다.

나 역시 그런 무대는 처음보는 거라 '저건 도대체 뭘까.... 누구일까..'하며 넋놓고 구경했다.

멋있다기보다.. '안전할까?'란 생각이 먼저였다. 그들의 연주가 멈추고,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다시 멈추고나서야 우린 돌아섰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공연이 있어서 또 한 번 웃었구나! 싶다.

 

 

 

겨우 5시간의 일정이었지만, 나에게도 한 순간 한 순간 특별했던 여행과도 같았다.

그치만 피곤한 건 피곤한거다. 노동에 노동에 걷기에.. 나 자신을 토닥토닥하며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정말 감사했다.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신 것. 또 친구의 친구 역시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왜 그렇게 해외를 다녀온 친구들이 친구~친구~거리는 지, 타지에서 챙김을 주고 받는 것이 얼마나 따뜻하고 감사한 일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또 여러가지 감정들. 배움들. 이야기들. 모든게 감사했다.

 

 

 

군자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짧은 시간에 나는 프랭크에게 물었다.

"왜 아시아를 세 달동안 여행하기로 한거야?"

"다른 데 가는 것보다 싸고, 게다가 아름다운 곳들이 정말 많으니까"

"태국의 거리음식은 정말 최고였어, 한국도 베스트3안에 드는 여행지고, %#%$@~"

 

한국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건 역시 전문적인 '산악인'마냥,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마냥 여기저기 비싼 등산용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들, 성형이 너무나 보급화되버린 것이었다. 해외를 많이 다녀온 친구에게도 들었지만, 막상 외국인에게 직접 들으니

'아, 정말 그렇게 느끼고있구나'하고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우리는 중국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한국에서는 중국어열풍이 돌고 있고, 실제로도 외국에 나가면 중국사람들이 없는 곳이 없으며 워홀러로 호주에서 일하고 왔던 프랭크 역시 중국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고 했다.

그렇지만 중국사람들이 여전히 정부에 의해 제한되고 있고, 심지어 구글이나 인스타그램 등등 다른 나라에서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것들이 검열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계속 crazy~ crazy~를 외쳤다. 그 와중에 북한은 최악이란 얘기도 빠질 순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우리는 프랭크가 가장 crazy하다고 생각한 그 북한 땅을 그나마 근접하게라도 볼 수 있는 DMZ구역에 있었다.

 

 

 

 

 

to be continu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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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story

 

중간고사를 보기 며칠 전, 나는 그냥 카우치서핑에 가입했고 몇 명에게 우리집에 묵어도 된다는 쪽지를 보냈으며

일정을 조율하고, 별 다른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그냥 해보기로 했다.

간단했지만, 부모님으로써 딸의 행동은 너무 위험해보였나보다.

"너 집도 아니고, 가족들이 다 살고 있는 집인데, 우린 말도 통하지 않고, 하은이가 혼자 있을 땐 어쩌려고?"

이게 첫 반응이었고, 난 계속 "괜찮다, 긍정적인 평이 많은 친구다, 정말 좋을거다"하며 하루정도는 열심히 설득해야했다.

 

나 역시 걱정이 하나도 없었던 건 아니다. 워낙 사건사고가 많고, 내가 어디서 직접 사귄 친구도 아니었으니.

그치만 난 가족이 있었다. 프랭크입장에서도 그래서 오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가족이 함께 있다는 건 안전하다는 뜻이니까.

지난 최효석 작가님 강연 때도 남녀가 일대일로 있을 때의 카우치서핑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위험할 수 있는지 들었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건 나에게도, 여행객에게도 안전에 있어서는 정말 좋은 조건이라 생각된다.

카우치서핑에 도전하고 싶은데 조금 두렵다면 가족과 함께 있는 집에서 도전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

 

한강에 있었을 때, 조금 늦은 시간이다보니 중간중간 엄마로부터 연락이 왔었는데 "친구 반바지라 춥겠다"라는 문자를 보고 피식했다.

사실 엄마는 이미 프랭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냥 믿음직스러운 친구라는 걸 느낀 듯 했다.

별 걱정없이 오히려 프랭크를 둘째 아들래미같이 챙겨주더라. 긴 바지를 입을까, 짧은 바지를 입을까 고민했던 프랭크에게 그냥 추울 수 있으니 갈아입고 가라했었는데 엄마는 또 안 챙겨 입고갔을까봐 걱정이 섞인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둘은 정말 전혀 영어로 소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소통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거에 대해선 또 둘째날에 할 말이 많으니.. 아껴두기로 하고!

 

첫째 날 느꼈던 것, 경험했던 것을 거의 다 적어두었다.

훗날 내가 어디에 이걸 또 기록하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길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괜찮다.

맨 첫 줄에 캡슐 얘기를 했는데 정말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을정도로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다.

카우치서핑에 대한 준비이야기를 포스팅한 것에 대해 몇몇 친구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는데 '그냥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팁은 '배려'다. 나 역시 아직 해외를 이곳저곳 다녀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해를 하려는 태도는 갖고 있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고, 부족한 게 너무 많다.

하지만 시간약속부터 시작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그 차이를 배워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여행객이라면 어떤 호스트를 만나고 싶을까, 난 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우리나라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심어줄까, 자꾸 고민하다보면 서로에게 따뜻한 시간, 배워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거라 믿는다.

 

꼭 여행객들, 혹은 호스트들의 정보를 하나하나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단순히 재워주고, 내 먹을걸 조금 나눠주는 개념의 카우치서핑을 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만나고, 다른 문화와 생각을 경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내가 현지에 있고, 여행객을 받아준다하더라도 나에겐 그게 호주여행을 간접적으로, 프랑스여행을 간접적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

 

 

+

To. readers

정말 정말 긴 글이었지만, 여기까지 쭉~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유롭게 댓글도, 방명록을 통해 여러분의 생각, 공감거리를 나눠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D 히히

둘째 날 포스팅에서 어린이대공원, DMZ, 가족 이야기를 포함한 interesting 스토리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뿅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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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썼으나 너무 졸리고, 내일은 일정이 빡빡할 것 같으니까 이렇게 몇 줄이라도 적을란다.
한 여행자의 여행을 도우려는 것이 한낱 시작점이었다면 같은 곳을 그 여행자와 함께함으로써 또 다른 느낌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건 나에게도 "여행"이 된다.

It was amazing experience!!

내일은 훈훈한 French guy가 우리집으로 오는 날 :D

그렇다. 카우치서핑을 통해 난 한 명의 여행자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호스트가 되었다. 카우치서핑이 뭔데 외국인을 집에 들이냐고?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한 카우치 서핑의 개념! (사실 나도 방금 알게된 정보들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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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 서핑

[ couch surfing ]

 

여행자가 잠잘 수 있는 「소파(couch)」를 「찾아다니는 것(surfing)」을 뜻하는 말. 현지인은 여행자들을 위해 자신의 카우치를 제공하고 여행자들은 이들이 제공하는 카우치에 머무르는 일종의 인터넷 여행자 커뮤니티다. 미국 보스턴의 한 대학생이 여행을 가기 전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그 지역의 대학생 1500여 명에게 숙소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가 약 50명의 학생에게 답장을 받으면서 기획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숙소의 교류와 동시에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www.couchsurfing.org)페이스북을 통해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세계 10만여 도시에서 약 600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카우치 제공 내용을 기록하고, 카우치를 받은 사람들은 이를 평가하고 평점을 매기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우치 서핑 [couch surfing]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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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서핑을 처음 들었을 때 '오잉? 그런 게 있어? 신기하네'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그리고 두 번째 들었을 땐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해보고싶다.'

세 번째 들었을 땐 '아, 그게 그거였구나. 나도 호스트가 될 수 있고, 여행자가 될 수 있는 거구나?'하고

그제서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된 카우치서핑.

 

 

사실 얼마 전, 최효석 작가님의 '세계일주를 꿈꾸는 당신에게'라는 내용으로 강연을 들으러 갔었다.

그의 1년간의 세계여행은 거진 다 카우치서핑을 통한 여행이었다. 무전여행과 비슷하면서도 아예 이런 시스템이 있다니!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솔직히 남자에 비해 여자에겐 상대적으로 위험하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욕심나는 여행인 것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에, 또 다양한 현지인을 만나기에, 경제적으로도 일석 몇조로..

조만간 내 비전카드 리스트에 카우치서핑에 관한 항목도 넣어야겠다. :)

 

 

그래서 뭘 준비했냐고?... 사실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카우치서핑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입을 하고, 프로필을 채워넣고, 한국에 머무려고하는 이들을 체크하고,

레퍼런스를 보고선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게 쪽지를 보냈고, 그렇게 간단한 루트를 통해 DONE!.

 

지금은 새벽2시인데, 베이비시터일을 8시간 해놓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청소 및 집안일만 4-5시간 해놓고도

이 글을 기어코 쓰는 이유는, 어제부터 하루에 1포스팅을 하기로 나와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벽1시반 정도까지 계속 쉴틈없이 청소를 했다.

한 가지 의문인 건, 분명 난 시험기간인 '고딩'남동생의 방을 빌려주려고 한 건데 왜 내 방을 그렇게 열심히 몇 시간동안 치우고 있었나하는 거다. 생각해보면 남자인 친구가 작년 9월 이후로 우리 집에 오는 것도 처음이고, 내 친구 중에서도 예전에 중국인친구 1명이 잠깐 들린 것 빼고는 우리 집에 그 누구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미안.. 친구들아 초대할게....)

아마 그 이유인즉슨 나까지 포함해서 3명의 자녀가 있는 이 집에 친구 1~2명만 들어와도 꽉 차는 느낌에 조금 더 오바해서 흘러넘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일 거다. 늘 그래왔으니까, 나 역시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일은 드물었던 거 같다.

어쨌든 내일을 위해 쓸고 닦고, 정말 열심히 했다. (물론 쓸데없이 내 방에 격하게 집착한 덕에, 난 너무...행복하다..응?ㅡ.,ㅡ)

 

 

내가 바라는 것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 다른 문화를 접하고 이해하는 것.  가족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

영어를 써먹는 것. 나중에 나 역시 트레블러로 카우치서핑을 할 때 어떻게 해야하나 배우는 것, 예의를 배우는 것 등등.

꽤 많지만, 정말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고, 괜히 한국 홍보대사가 된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든다. :)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냥 나인 채로, 다른 문화권에 있던 친구와 어울리며 그 속에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누리는 것.

ㄲ ㅑ!!!!!!!!!!!!!!!!!!!!!!!! 결론은 기.대.된.다! :D

 

 

 

 

+ 깨알 팁 + My opinion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무엇보다 자세히 나의 루트를 말해주며 신뢰를 쌓는 건 중요하다.

그렇다고 보고를 하듯 하라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게 예의를 지키는 것.

언제 도착할 거고, 언제 떠날 거고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내가 만나게 될 친구들이 있다면, 혹은 식사를 같이 할 수 있다면, 여러 상황들을 두고 자세히 먼저 얘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여행자이고, 난 숙박을 제공하는 호스트다. 그들은 더 많은 이들을 만나보고 싶을 수도 있고, 더 많은 장소를 구경하고 싶을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호스트가 된 이상, 나 역시 그들이 바라는 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한다. 절대 집착하거나, 무신경하거나,하는 그런 극과 극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역시 모든 건 '배려'에서 시작되나보다.

 

 

 

 

 

 

 


히말라야
히말라야는 고대산스크리트어의 눈을 뜻하는 히마와 거처를 뜻하는 알랴야가
결합된 뜻으로 눈덮힌 히말라야의 모습은 경의 그 차제입니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는 파키스탄과 인도북부, 네팔, 시킴, 부탄
티벳 남부를 지나면서 여러곳으로 뻣어내리면서 세계최고의 봉들이 있는
자연이 주는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포카라 네팔에사 가장 트레킹하기 좋은 장소로 호수라는 네팔어 '포카리'에서
유래된 도시로 아름다운 페와호수와 히말라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랑콧등이
있는 네팔 제1의 관광도시랍니다.

[출처] [네팔여행] 여행객의 쉼터 포카라... 히말라야를 만나다.|작성자 따세기사과

1%다.

REVIEW/TRAVEL2013. 8. 29. 00:52


홍콩이 따로 없어서 중국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내가 다녀온 나라는 총 3개. 뉴질랜드, 홍콩, 베트남.

한국에 사니까 한국은 자동 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억지로~)

손보미씨의 블로그를 보다가 50%는 넘겨봤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보고 나 역시 50%는 넘어보자는 다짐을 조심스레 해본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지 않았나. 말이 씨가 되기를 기도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