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ey_licious worlD






#Day187

 in Vancouver

Writer : Hani Kim






2016.04.17


오늘은 주일. 예배를 마치고 늘 오는 랍슨 스트릿 스타벅스에 와있다. 

빅토리아 여행기를 쓰고나서도 오랜만이지만 지난 4일 내내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님 덕분에.

이유는 늘 같아서 이쯤 되면 그냥 그 병이 나고, 내가 그 병이거니 해야겠지만 찾아올 때마다 컨디션을 비롯해 몸이 약해지고 기분이 다운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떤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야할까, 라는 고민은 늘 있지만 사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써내려가면 되겠다싶다. 워킹홀리데이자체가 특별한 경험이니까 꾸밈없이

내가 겪는 것들과 느낌들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말이다.



6개월이 지났다. 가끔 생각해본다. 아니 늘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 있었다면? 그냥 토익학원을 다니고 점수를 쌓고 그렇게 쭉 영어를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했다면?"

"매거진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던 나는 어시스턴트를 시작했을까?"

사실 작년 2015년 2월, 설 기간에 나에겐 아주 감사한 기회가 왔었다. 작은 회사였지만 영상매거진을 포커스로 잡고 하는 매거진 회사의 어시스턴트.

내가 배우고 싶었던 분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영어도 좀 배웠고(유딩수준이지만), 영어를 더 늘리기 위해 아니 그냥 더 큰 세상에 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쭉 해왔기에 막연히 동경해왔던 해외생활을 꼭 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지 하는 마음에.. 

내가 잡을 구하면 그 순간부터 학자금을 갚아나가야하고, 또 매이고, 그 외에도 뭐 가족이 생긴다던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내려놓고 가야할 것들이 너무 많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내 꿈을 하나 져버리게될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 일할 기회를 포기하고 다시 각종 알바를 전전하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 생활도 했다. 

뭘 그렇게 확신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땐 정말 모든 상황들이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가라는 것처럼 나를 이끌었다. 

영어 말하기 대회면접을 보고 운이 좋게 본선까지 올랐고, 보기 좋게 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이 참 좋은 경험이었다.

게다가 여기 오기 전 지인들로부터 얼마나 도움을 많이 받았던지, 지금 돌아보면 정말 받은 게 많아서 그거 다 갚으려면 여행도 안가고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 열심히해서 선물만 사가도 그걸로 끝이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벌써.... 6개월.. 반이 지났다.

방금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그래서 어때??? 계속 있고 싶어? 한국 오고 싶어?"

나는 나답게 반반이라고 했다. 아마 두 달 정도 남았을 쯤, 아니 세 달 정도.. 아니 6개월이 지나고 앞으로 내가 여기서 지내게 될 시간이 더 적어질수록

나는 더 많이 아쉽다고, 있고 싶다고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반 반. 솔직히 조금 아쉽다.

늘 돌아보고, 앞서 생각하고 걱정도 많은 나이지만 오늘의 포스팅 역시 나를 돌아보게 되는 포스팅이 될 것 같다.

뭐가 바뀌었고,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나머지 반개월은 어떻게 지내다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







- 6개월동안 달라진 것 또는 배운 것(In a good way)





1. 내가 평생 의지해야할 분은 하나님.



  

   물리적으로 내가 몇 천킬로미터를 떨어져있는데 가족이 거기까지 올 수 없다. 더군다나 난 이제 성인이다.

   경제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그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홀로서기를 해야할 때이며, 내가 선택하는 것에 대해 그만큼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한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건 하나님이라는 only one인 그 분 앞에서는 한 없이 '아기'라는 것이다.

   '아기'는 기쁠 때, 슬플 때, 힘들 때 아빠를 가장 먼저 찾지 않으면 평안함을 찾을 수가 없다. 누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아빠'의 딸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알아채지 못하면 평생을 그렇게 고아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이다. 

   오늘 말씀에서도 목사님께서 Hunger for a word of God.이라고 했는데 그 Hunger의 대상이 돈이 되고, 지식이 되고, 명예가 되는 순간

   인간의 이기심에 눈이 멀어 결국 끝은 아무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약함을 깊게 깨달을 뿐이다. 



   겉으로 도는 얘기가 아닌 내 얘기를 해야겠다. 나는 소위 말하는 '교회 누나'였다. 

   과거형으로 얘기하는 이유는 내가 교회공동체에 깊이 자리잡았을 때랑 지금 모습이랑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분명 이건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간다. 왜 진짜 믿음은 결혼 후라고 하지 않는가.

   결혼은 둘째치고, 워홀 전 후로 내 믿음을 스스로 좀 들여다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엄마 뱃 속에서부터 교회를 나가던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일요일마다 교회에 출석해야했다. 

   진짜 '믿음'에 대해 진지해진건 스무살 초반대였다. 22-23살쯤, 그 때부터 정말 '진심'을 다해 믿으려고 했던 '진짜'였던 것 같다.

   물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든 게 하나님 계획 안에 있었고, 나는 오랫동안 정말 '보살핌' 속에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더 선명히 느낀다.

   이제 난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받아들인 그 때부터 워홀을 오기 전 까지 쭉 내 안에 자리잡은 생각은 '난 이제 하나님 안에서 기쁨으로, 

   그 분이 원하시는 그 길을 또 내가 원하는 길을 잘 걸어가게 될거야'였다. 실제로 내 삶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도 그 길이 잘 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 신기하게 길이 딱 딱 열렸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으며 내 삶에서의 경험이 될 만한 일들도 많이 했으며, 스스로 내 길을 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또 그 소망을 이어가시겠지,라고 생각했다. 

   첫 번째 달 적응하느라 좀 힘들었지만 그 후 나에게 오는 평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이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직후부터였다. 내게 몰아닥치는 시련. 내가 지은 죄. 걱정, 불안에 의해 그동안 쌓아온 내 믿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내가 잘못해서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에 한 발 한 발 물러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순장이라는 자리에 있었을까. 하나님 앞에 자녀로 살아가고 있었는가. 정말 이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인가. 

   계속 내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고, 외로웠다. 믿음이 한 없이 약해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 많은 이들이 나에게 연락을 주었다. '하니야, 정신차려!' 대놓고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 고맙다.

   그런데도 솔직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 동안 그렇게 추락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단 내 깊은 이야기를 할 친구들이 이 곳에 없었고, 가족들이 없었고, 통화로 하는 건 한계가 있었고 어느샌가 이야기하기도 싫어진,

   그렇게 문을 닫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삶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건 분명 괴로운 일이다. 살고 있지만, 바라던대로 새로운 환경을

   바라보며 매일 새로움을 마주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너무 괴로웠다.

   



   그 외에 내 생활도 엉망진창. 캐나다에 와서 바닥을 찍을 줄 몰랐다. (사실 바닥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는 걸 수도 있다. 합리화하자면ㅎㅎ;;)

   1년동안 쌓아올린 아침 5시 새벽형인간은 어디로 갔고, '다 귀찮아'하며 귀차니즘모드에 쩔어 있고, 영어를 공부하겠다던 나는 일을 다녀오면 그냥 

   뻗고만 싶었다. 투잡을 뛰려던 나는 한 개의 잡으로도 충분히 지쳤다. 그리고 또 인간관계를 통해 내 못난 모습을 자꾸 보게 되면서 실망하고, 

   마치 부모님이 볼 땐 열심히 공부하는 척 하다가 안 볼땐 컴퓨터게임을 하던 중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구는 내 모습이 서서히 질리고, 싫고, 지겹기까지 했다. 

   영어도 배웠다고 했지만 여기와서 내가 하는 영어는 정말 정말 유치원생보다 못했다. 언어공부 평생이라더니.. 정말 그렇구나,하고 벽에 부딪힌 느낌. 

   내가 느끼는 벽은 생각보다 컸다. 정말 몇 년 살아야 그 벽이 뚫릴 것만 같은 그런 벽이었다. 




   이럴거면 왜 나를 여기까지 보내셨냐고, 그렇게 못난 딸래미가 자기가 잘못해놓고 아빠 탓을 하듯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따지고난 후 돌아오는 건 내 자신을 향한 손가락질이었다.

   이래저래.. 그렇게 우울함으로 응어리진 내 마음은 '사람'을 통해 채워지는 것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거. 

   인간의 그 어떠한 욕심, 욕구, 욕망도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실은 매번 느낀다. 

   결국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음을 직감적으로, 본능적으로, 숙명적으로 내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건 본능보다 더 강한 본능이고, 인간의 마음에 품어놓으신 자식과 아비의 그런 서로를 향한 애틋한 설명하기 힘든 마음인 것 같다. 

   내 마음이 아주 평안했을 2번째 달,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영은언니에게서 선물 받은 '폭풍 속의 주님'이란 책을 읽었다. 

   '그래, 맞아, 맞아' 박수를 치며 읽었지만 한 편으론 마음이 이렇게 평안한데 왜 이런 책을 받게하셨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평안함에 대해 묵상해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 내가 이렇게 될 줄 아셨던 게 아닐까.

   절대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던 베드로의 고백과 며칠 후 그의 배반처럼, 나 역시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핑계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내 약한 부분을 가장 잘 아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렇기에 더 나를 방해하는 사단들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또 하나 돈 얘기. 통장에 돈은 날마다 떨어져가는데 쉬프트는 한 주에 8시간씩밖에 떨어지지 않고.(한 주에 72000원을 받고 살아갈 수 없는 워홀생활.)

   내가 하고있는 건 다시, 또 다시 돈걱정이었다. (분명 난 이 부분에서 많이 내려놓았다고 인도네시아 선교때도 감히 앞에 서서 간증을 했었다.)

   그래서 돈 트라우마에 갇히기 싫은데 또 여기와서까지 그래야 하나, 정말 너무 하시네,하고 불평을 할 때 가 있었다.

   그런데 그 돈 걱정보다 훨~~~~씬 중요한 건 하나님과 내 관계가 청신호냐 적신호냐하는 것에 따라 내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말이 자꾸 길어진다. 요약하면 이 곳에 와서 내 믿음의 한계, 믿음의 친구들이 함께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내 믿음의 변화를 봐야했다.

   어쩌면 내가 가진 믿음은 작은 한 알의 씨앗조차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길바닥의 흙가루 정도였을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흙가루정도의 믿음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성찬오빠가 보내온 메시지처럼 '하나님은 날 향해 모래알보다 더 많은 계획'을 갖고

   계신다. 내가 평생을 두고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가야할 것은 그 다른 어떤 게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다.


  

   이렇게 글을 쓰다간 아마 평생 쓸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나를 케어하실 수 있는 딱 한 분은 엄마도 아빠도 아니고

   베스트프렌드도 아니고, 정말 딱 한 분인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내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르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처럼 그렇게

   평생을 지고 따라가며 트레이닝해야한다. 고백하자면, 내가 어떻든간에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위대하신 분이시며, 완벽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나를 다시 만지시고, 토닥여주시고, 세워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도 하다. 


   나는 이제 '교만'해지지 못한다. 어느 순간 내가 정말 교만해지려고 할 때, 그런 생각이 들 때 나는 조금 아플지언정 이 워홀 생활에 무너졌던

   나의 마음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더 감사하게 될거다. 내가 손가락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나고 쭉 하나님 안에 있었던 게 얼마나 감사했던 일인지, 나는 감사하다고 하면서도 그게 얼마나 안전함 속에 있던 환경인지 몰랐다.

   정체성을 잘 모르는 아이였다. 그리고 정체성을 찾다가 또 잃었다. 전에는 그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조언들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몰랐다면

   이젠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나 자신과 싸워야 하고, 세상과 싸워야하며, 하나님 안에 있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하는지 배웠다. 

   폭풍 속에서의 주님처럼 잔잔하고 평안한 믿음은 예수님의 치열한 기도, 자기가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견뎌내셔야했던 죽음, 예수님 뿐 아니라

   그 밑에 정말 치열하게 살아갔던 제자들을 통해 흘러갔던 하나님의 말씀 덕분이다. 나는 그러할 자격이 정말 정말 정말 눈꼽만치도 없는 죄인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다시 만들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다시, 다시.. 이젠 '딱 한 번만요.'라고 말하지 말자. 


   왜 굳이 워홀까지 보내시면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떤 의미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였고 어떤 존재인지. 내 정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셨을까.

   잃어버리지 말자. 한 번 집나간 자식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잔치를 열어준다는 아버지. 그 품을 어떻게 다시 떠날 수 있을까. 

   그치만 또 떠날 수도 있는 게 인간의, 나의 약함이다. 그래서 더 꼭 붙어있어야 한다. 오만함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그 감사함이 너무 커서 더 아버지 안에 있고, 그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


   알았다, 내가 평생 의지해야할 분은 하나님이라는 걸. 어쩌면 하나님은 이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시려고, 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그렇게 내가 다시 일어나기를 누구보다 바라시고 계신 분이시라는 걸. 그걸 알면서도 또 무너지진 말자고 내 스스로에게 계속 말한다. 

   남은 육개월은 하나님 앞에 견고하게 다시 서가는 자녀가 되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 뭔가.... 뭔가 이상하다. 출근하러 가야지..ㅜ.ㅜ

   울컥 울컥.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쓰는 글이고 내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 몸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 말처럼, 지키자.. 정말! 

   사랑합니다, My Lord! 정말 사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만큼, 내 입술의 고백이 행동이 되게하시고 그 행동에 소망이 입혀지길 원합니다!







2. 엄마, 아빠의 수고는 내 상상 이상.




   독립은 내가 쓸 휴지를 내가 사야하는 것이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러운가? 근데 정말 그렇다.)

   내가 책임져야할 건 내가 책임져야하는 것. 당장 살 곳이 없다면 살 곳을 구해 그에 맞는 돈을 지불 해야하는 것.

   먹을 게 없다면 먹을 것을 사먹든지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서 먹어야하는 것. 입을 게 없다면 사서, 만들어서라도 입어야 하는 것.

   기본이 채워지지 않으면 그 외의 것은 사치로 느껴지기도 한다. 채울 여유가 없다.

   그동안 '나는 별로 가진 게 없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하나님을 믿고, 평안해져도 내가 가장 약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경제적인 문제였다.

   그도 그럴것이 자란 환경에 따라 나도 모르게 내 안에 내재된 것이 본성이 되어버렸다.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적인 것에 시달려오다보면

   그것이 어느새 하나의 고질적인 병이 되어 내 평생 따라다닐 것만 같은 끔찍한 생각마저 든다. 그럴 때면 너무나 슬퍼진다.

   근데 어쩌면 내가 완전 0(제로)의 상태가 되어본 적이 없었기에 더 불만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그래도 난 가족도 있고, 학교도 다녔고, 적어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태어나서 교육열이 뜨거운 때를 살아 대학교까지 갈 수 있었고 

   사지가 멀쩡하며#%#!@~~' 이렇게 온갖 이유를 대며 감사를 늘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늘 '부족했던 돈'에 대한 갈망이 있어 조금이라도 더 내 이득을 보려하고, 주기를 아까워하며, 어떨 떈 내 스스로 너무 아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때도 있다. (정작 아껴야할 곳에선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특징 중 하나라는데 정직하게 그건 내 소비방식이었다. 

   적어도 스무살 완전 초반까지는 그래왔다. 알바비로 학자금을 갚기는커녕 최신 유행하는 옥토퍼스화를 산다든지하는 소비 말이다.)


   내가 엄마로부터 '정말 쓸 게 없어.'라는 소리를 귀가 따가우리만큼 들었을 때 "또 그 얘기야?"란 생각부터 들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돈 없는 건 나도 아는데.... 꼭 저렇게 표현하셔야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아빠도 그랬다. 좀만 더 열심히, 안 되는건 포기도 하면서 되는 쪽에 매달리면서 그렇게 젊을 때처럼 돈 좀 버셔서 엄마 좀 안 힘들게 하면 안되나.

   나 좀 안 힘들게 하면 안되나. 그렇게 원망 반, 포기 반. 내가 잘 되야겠다,라는 마음은 가득한데 그렇다고 돈만 바라보면서 일을 구하긴 또 싫고,

   꿈과 비전을 놓치고 싶지 않고. 아무튼 그렇게 날 오랫동안 힘들게 한 돈 문제는 여기 밴쿠버에 왔다고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풀타임잡을 처음부터 구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만족하기로.

   파트타임에서도 진짜 시간이 조금밖에 안되는 파트타임. 또 매니저님이 출근 1시간 전에 불러도 가야만했다.

   내가 왜 여기까지와서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하는지, 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내 생활을 하기 위한 돈을 벌고, 집세를 내고, 밥을 지을 쌀을 사고, 각종 마트를 휩쓸며 가격비교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니

   왜 엄마가 '돈이 쓸 게 없다'는 소리를 하게 되는지 알 것 같고, 한국이 왜 그렇게 물가가 높다고 하는 지 이해가 갔다.

   엄마 아빠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왜 왕창 벌어서 자기 자식 좋은 거 맛있는 거 다 해주고 싶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자기의 커다란 부분을 희생시켜 또 다른 누군가를 오랫동안 보살핀다는 것이 '그냥' 그렇게 받아들일만한 당연한 일은 아니다.

   말로는 다 안다고 했어도, 실제로 그것을 느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다.

   난 아직 자식을 가져본 적도, 아니 어떤 배우자를 만나 그 배우자를 지켜주는 것 역시 해본 적 없기에 꼭 돈이 아니라 시간에 관한 희생 역시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니 어쩔 땐 자기 의지를 초월해서라도 지켜야할 것들을 지켜야하는 책임감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부모님은 나를 위해, 그리고 또 아직 어린 중고등학생인 내 동생들을 위해 그렇게 하셔야만 했다.

   감히 그 무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가 먹으면서 그걸 천천히 이해하고, 배우면서 부모님께 더 죄송해지는 자식들..

   그리고 또 그걸 반복하며 살아갈 자식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걸 깨닫는 순간순간 부모님께 더 잘 하고, 가족들에게 더 잘하고.

   가족 뿐 아니라 내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하는 것. 아니 더 나아가서 내 사람이 아닌 그냥 마주치는 사람들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일테니

   그들에게도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고 살아야한다.


   결론은 엄마, 아빠에 대한 감사함. 죄송함을 지금까지 한국에서 했던 내 초중고대학생 시절을 통틀어 여기와서 더 깊이 느끼게 된다는 것.

   그러고보니 사실 해외생활을 하는 것은 이것에 의의를 두어도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싶다. 물론 자취생활을 하면서도 느낄 수 있을테지만

   유학생, 워홀러, 자취생, 회사원 등 다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느끼는 것도 다를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엄마, 아빠, 동생들과 같이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다. 그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지만 막상 나와보니 더욱 소홀히 여기면 안되고

   행동에 바로바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 보고싶어용 사랑해용♥)

    


   


(김병만 인터뷰 - SBS스페셜)




   3. 인생은 나와의 싸움(습관, 감정 컨트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나와의 싸움이었고, 앞으로 살아갈 삶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넘어서야 그 이상의 나를 만날 수가 있다.

   솔직히 나는 그런 경험이 많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정말 무난하고 평범한 학생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공부만이 답인 환경 속에서 자랐고, 

   대학에 가선 스펙이 답인듯한 환경에 적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내 인생 몇 번의 모티베이터가 되어주신 분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외국 땅을 밟게 도와주신 모세리 선생님(+당연히 전적으로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 우연히 들으러 간 영어회화강의를 통해 공동체생활과

   즐기며 배우는 영어, 비전에 대해 현실적으로 이뤄갈 수 있게끔 이끌어주신 소리드림의 문성용코치님, 다녤헬퍼님, 우리 다크호스. 

   또 늘 도전적으로 살면서 나에게 도전을 주는 친구들. 매 번 글을 적을 때마다 나열하게 되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 한국사회에서 정말 치열하게 

   도전하고, 부딪히며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내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반대로 타지에 와서 나홀로 그 습관들을 지켜가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좋은 습관들을 쌓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내가 여기에 왜 있을까'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 때가 있다. 분명 오고 싶어서 온 거고, 보통 청춘이라면 아니 꼭 젊은이가 아니여도 

   평생에 한 번쯤은 해외에서 머물러보고 싶은 꿈을 누구나 가진다. 원해서 왔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처음엔 분명 영어, 여행, 어느정도의 돈. 경험. 이런 정도로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차차 여기서 몇 년 산 사람처럼 내 몸도 마음도 모든 것에 적응해버린다.

   원래 하나가 무너지면 또 하나가 무너지게 되어있다. 하나가 무너졌을 때 그 하나를 다시 세울 정신력, 체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습관, 마음, 신앙, 건강 이 모든 게 조금씩 무너져내릴 때 내가 했던 건 자기비하였다. 정말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짚고, 고쳐야 한다. 그리고 바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다시 훈련모드로 들어가야한다. 

   아무튼 나는 느린 캐나다만큼이나 몸과 마음 모든 게 느려지고 말았다.



   워홀로 와있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할 것이 있는데 그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푸쉬해주지 않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 주어진 하루를 새로운 곳에 가서 여행을 하며 보낼 수도 있고, 집에서 영화 1편, 드라마 몇 편으로 보낼 수도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님'말고는 이 땅에서 그 누구도 나를 주시하면서 '너 그렇게 살면 안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빡센 한국생활에서 벗어나서

   저렇게 여유를 즐기면서 낮잠도 자고 사는 게 뭐가 나쁜가. 내게도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자,라고 생각하게도 된다.

   나는 워홀생활을 6개월간 하면서 내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만큼 확고하지 않다는 것. 트레이닝이 아직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국이라면 여기저기서 푸쉬하는 소리로 가득찼을텐데... 라는 생각이 스쳤던 걸 보면 정말 그렇다. 한 사회에서 오랫동안 몸을 푹 담그고 살았구나싶다.

   지나치게 남을 신경쓰고, 나이를 자꾸 되새기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과 할 수 있는 것들을 구분하며 제한하기도 하고. 

   "회사가면 또 그렇게 흔들리게 된다니까"라는 헬퍼님의 말은 참이었다. "세상에 나가면 또 그렇게 흔들릴 수 있다"는 크리스찬의 약함처럼.

   어느정도의 트레이닝가지고는 세상에 맞설 힘? 아니 나 자신과 싸워 버텨낼 힘도 부족하다.  내가 나를 믿어주고 계속 모티베이션을 줘야 한다. 

   내가 나를 더 믿고 사랑해줘야한다. 게을러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 그 균형과 자기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글 쓰면서 늘 느끼지만 이렇게 쓰면서 다짐해도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나라서 부끄럽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되새기고, 또 의지를 갖게 된다.

  


   또 하나, 살다보면 내가 어쩔 수 없이 맞게되는 상황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두달 전 외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너무 많이 예뻐해주시고, 사랑해주셨는데.. 왜 하필 내가 여기 있을 때, 효도 한 번 해본 적도 없는데 꼭 그러셔야했냐고 하나님께 묻기도 했다.

   그러나 인정해야할 것들은 인정해야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인정하고 다시 살아가야하는 것들.

   아직도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할아버지는 천국에 가셨지'하고 나쁜 일만은 아니야,라고 슬퍼하지 않다가도

   소중한 사람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치기도 한다.



   결국 모든 것을 인내하고, 넘어서고, 맞서 싸우고나서야 조금 더 성장한 나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살아갈 수 있다.

   뜬금없지만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말이 예전보다 더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생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내야한다는 것. 그럴 의무와 책임, 권리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그러니까...................... ㄷ ㅏ ㅅ ㅣ.............시작하자!!!!!!!!!!!ㅎㅎ


   1) 물 1.5L

   2) 빵 안먹기

   3) 아침형 인간

   4) 1일 1글

   5) 인터뷰 4월 안으로 마무리하기(지금까지 한 것)

   6) 미국드라마 Smash 1일 1화 공부

   7) 30분 걷기 / 스쿼트

   8) 도시락 싸서 다니기

   9) 한달에 책 4권

   





   4. 다양함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



   캐나다 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다양함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이 부분에 있어서 철저하게 교육받아왔기 때문인지

   정말 이 곳 저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대체로 잘 어울려 살아간다고 느끼게 되는 걸 보면 내가 평소에 꿈꿔왔던 '세계화'가 가장 잘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가 여기이지 않을까싶다. 유럽 쪽은 어떤지 궁금하다. 


   사실 내가 한국에서 배워 온 교육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 다른 게 하나 있다면 한국에선 교과서에나 통하는 얘기라는 것.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크게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을 제공하는 나라

   어제도 친한 언니와 카톡을 하다가 나온 얘기인데 외국생활을 하고 한국에 들어가면 그리워지는 그 때의 여유로움, 투잡, 쓰리잡을 뛰면 먹고 살만한

   나라라는게 부럽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워홀러의 경우 투잡만 뛰어도 생활+돈 모아서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하다. 최저시급이 11불. 한화로 10,000원.

   물론 여기서 택스를 빼면 더 적어지지만 택스리턴할 때 다시 돌려받는 돈도 꽤 크니까!ㅎㅎ 홀리데이나 주 40시간이 넘어가는 시간에 있어선 1.5배로 16.5불

   을 받는다. 베이비시터같은 내니의 시급은 꽤 높은 걸로 알고 있다. 18불?...20불? 뭐 그것도 경력에 따라 많이 다른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일하고 있는 스타벅스에서 내 위로 있는 선배 두 명은 분명 지난 겨울에 1달, 1주씩 멕시코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다가오는 5월에 또 1달, 1주간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한 명은 토론토로, 또 한 명은 어디로 가는지 까먹었음.. 

   한국인의 시선으론 오래된 스타벅스 정규직이 일년에 2번씩이나 긴 휴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으로 '우와.. 정말 대단하다'라는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는데 이들에겐 어쩌면 '당연한' 생활방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도 야근을 하며 야근수당마저 백퍼센트 챙기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회사원들이 생각나      씁쓸했던 적이 있다. 

 

   나이, 직업, 성 등 차별에 매이지 않는 문화덕에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

   '외국에선 직업차별이 없다' '캐나다에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정도 쉬면서 미래에 대해 뭘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정상적이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오..정말 그럴까?'하며 믿기 어려워썬 것들이 여기 와서 같이 일하는 코워커들조차 어릴 때부터 알바 경력을 쌓고 사회생활을 하는 걸 보면서

   정말 그렇구나,하고 끄덕이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는 학생들을 그냥 정상적으로 봐주는 사회가 한국에서 가능할까? 

   나는 정말 그런 한국을 꿈꾸고, 그런 한국을 만들어가는데 자그마한 기여를 하고 싶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젊은이이고 싶다. '더 이상 희망이 없어'라며 헬조선이라고 손가락질한들 그걸 그냥 놔두는 젊은이이고 싶진 않다. 


   왜 다름을 얘기하면서 최저임금이 더 높은 나라의 이야기를 하고, 어차피 이 곳에서도 변호사나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있는데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걸까,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여긴 '획일화'되어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가 아닌 자기가 좋은 삶을 살아도 되는, 그런 사회라는 걸 말하고 싶다.

   물론 영어를 못 한다고 무시하거나 '됐어요'라고 말하는 손님들도 있다. 근데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이다.

   '취업해야되는데 왜 여기있어?'가 아니라 오히려 '우와 ,너 정말 용기있다.'라고 칭찬해주는 분위기이다. 

   얼마 전 다른 스토어의 매니저님은 나에게 '한국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갈 수도 있어, 그럼 도와줄거야?'라고 묻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포용할 줄 안다.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번에도 했으니 여기선 깊게 얘기하지 않겠다. 

   캐나다가 '약자'들을 위해 배려한 시설은 대중교통시설에 약자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존재한다는 사인정도가 아니다. 

   모든 시민들이 휠체어를 탄 이들, 아이를 데리고 유모차를 끌고 버스와 지하철을 오가는 이들을 배려한다. 

   내가 늦었을지라도 그들이 오르고 내리는 그 시간들을 기다려줘야하는 것. 그것에 대해 불평할 수 없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이다.

   아니, 오히려 도와주는 분위기다. 약자들을 위한, 소수자들을 위한 어떠한 '권리'와 '배려'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윗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게

   지켜오고 만들어왔던 전통과 역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리고 정말 아주 '작은 친절'도 기꺼이 행하는, 나와 다른 이를 기꺼이 끌어 안고 가는

   사회이기에 그게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문화로서 자리잡힌 게 아닐까한다.


   어떤 걸 바꾸려면 나부터 바꿔야한다. 그러나 한 번에 띡-하고 내 모든 걸 바꾸기는 역시 어렵다. 요즘 '린 인'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이자 영향력있는 여성으로 꼽히는 셰릴 샌드버그는 윗 사람이 아랫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고 듣는 그런 수평적인 문화를 지향하고

   여성을 대놓고 차별하는 것이 전세계적으로 뿌리박혀있다며 그것들을 자기와 자기가 속한 공동체부터 바꿔나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자로써 겪어야하는 '육아'나 '승진에 대한 차별' 그런 이야기들과 더불어 전세계 여자들이 얼마나 '여자'라는 것에 매여 자신감없이 행동하는지,

   어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남자는 '할 수 있다'며 덤비지만, 여자는 온갖 안되는 이유를 대면서 그 기회를 아쉽게 져버리는지.

   가정교육이나 사회적인 분위기에 의해 스스로를 속박하고 그렇게 커리어 역시 환경에 매여 더 도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지적한다.

   남자와 여자가 '동일'하다는 입장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

   마치 연애를 할 때 역지사지 정신으로 내가 남자의 뇌를 남자가 여자의 뇌를 분석하며 어떤 감정이겠다-라고 상상하며 조금씩 더 배려하고 조화를 

   이루어가듯 하나의 사회도 각각의 다름에 대해 그런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내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조금 더 친절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자기가 가진 직업에 대한 소명과 즐거움이 만나는 그 포인트가 중요한거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내가 이 직업을 가져서 사람들이 날 어떻게 평가할 지 두려워하는 사회가 되면 안된다.

   100일 기념으로 썼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정말 왕팬인 20대 흑인 버스기사 언니가 있는데 아델의 헬로우를 흥얼거리며 손님들에게 오늘은 어땠냐, 

   좋은 저녁 되라, 잘 지냈냐, 하는 따뜻함에 내가 감히 '왜 저 언닌 젊은데 버스기사를 하지?'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전혀.

   오히려 존경심이 생기고, 저렇게 신나게 일할 수 있다면 그것만한 게 또 어디 있을까란 생각부터 들었다. 



   근데 이건 좀 너무 한데..?

   다른 한편으로 '다름'에 대해 너무 줏대없이 인정하게 되면 '마리화나'축제같은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약을 인정해달라는 건.. 글쎄.. 이 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 걸 보면 마이너스적인 요소인 건 확실하다.

   잘못된 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한다. 이틀 전 밴쿠버 잉글리시베이 쪽에서 마리화나축제가 열렸다.

   너무나 궁금해 혼자서라도, 딱 20분만 볼 수 있어도 꼭 보고싶어서 갔다. (어제 엄마께 말씀드렸더니 아빠를 꼭 닮았다며ㅋㅋㅋ....)

   위험할 것 같았지만 막상가니까 경찰들, 엠뷸런스, 마리화나 지지자들, 나같은 관광객들로 붐벼 생각보다 완전 안전했다.

   얼마나 다름을 인정하는 분위기면 10대 청소년들까지 마리화나를 피게 해달라고 거리로 나올까,하는 생각이 든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뭐???????? 거긴 왜 갔어?'라고 반응하는 걸 보면 역시 모두가 마약인정에 대해 많이 우려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마약냄새가 나는 이들을 향해 예전에 마약을 했던 사람이었는지 '나도 예전에 너처럼 그랬는데 어디 센터에 가봐라, #$&#$)@$@#~~'

   하면서 잔소리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옳지 않은 건 역시 옳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축제 자체를 하게 해준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아마 게이 축제 때가 그 정점을 찍을 것 같긴 하다. 어느정도의 규모일지 너무 궁금하다. 꼭 가봐야지!!

   

   결론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려면 사회규범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인정되어야하는 게 맞고, 

   또 개인적으로 내가 정말 인정할 수 없는 것에 있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수용되어야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진짜 마지막.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건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그에 맞춰 '작은 친절'을 베풀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캐나다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딱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어딜가든지 작은 친절 하나를 남기고 오라"는 어떤 노트의 문구.

   영어 자체가 밝은 언어라 그런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밝게 웃으며 함께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습관처럼 그렇게 하는 문화가 좋다.

   어떨 땐 너무 힘들어 설명하기도 싫으니까 good이라고 대답하고 그냥 넘기는 때가 있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번 더 그 사람의 기분을 살필 수 있고,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마다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것. 안부를 묻는 것. 한국에서도 간단히 '인사'를 하긴 했지만 돌아가서 매일 매일 기사아저씨께

   우렁차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손님이 되고 싶다. 그런 나를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따뜻한 인사 한 번 건넬 수 있도록.

   내가 생각하는 '다름'을 이해하는 사회는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다 Yes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Yes도 No도 포용되는 사회이다. 

   그걸 어떻게 살아낼 것이고,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는 잘 모르겠다. 그게 내가 살아온 습관 전체를 조금씩 바꿔나가야할 문제라....

   그냥 단순하게 하나씩 하나씩 바꿔가보면 어떨까,싶다. 


   "오늘은 매니저님 입장이 되어서 내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고 일을 해볼까?"

   "내가 기사 아저씨라면 인사 뿐 아니라 너무 고맙다고,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까지 말해주는 승객이 좋겠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관점을 바꿔보는 거다.

   사실 다름에 대한 인정은 내 자신부터 시작해서 내 가족, 친구, 지인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으아아아.!!! 사실 아직도 어려운 과제이고, 생각보다 뿌리가 깊이 박힌 나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노력하자. 노력!    

 

   



   


   







5. 나에 대해 알기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늘 말하는 게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마주하면서 자신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아가고 예상치못한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며

   그렇게 계속 새로운 자신을 발견해간다고. 나 역시 그러고 있다. 사서 고생하는 나는 한국에서 챙겨온 몇 개의 햇반 빼고 여기서 햇반을 구입한 적이 없다.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될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자꾸 재료를 사다놓고 싶은 욕심이 과할 줄은 몰랐다.

   가족들이 많다보니 뭔가를 사도 늘 한 개씩 더 사고, 싼 걸 찾아 통으로 사다놓았던 소비패턴이 여기에 와서 자꾸 애 키우는 엄마인 양

   한 보따리 장을 봤다가 채소를 썩히기도 하는 걸보면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 아무렇지 않게 해오던 것들이 내가 그런 환경에 놓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지, 또 다른 환경에 놓이면 그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이건 단지 하나의 예시일 뿐. 너무 미안하지만 막내동생한테 500원씩, 1,000원씩 준다고 생색내면서 안마를 해달라고 매일 밤마다 부탁을 했던 나를 

   떠올리면.... 부끄러울 정도로 미안하다. 그리고 밤마다 팔 다리가 쑤셔오는 늙어가는 내 몸이 느껴지면 동생의 야무진 손길이 미친듯이 그리워진다.

   그 땐.. 그게 너무도 당연했는데 여기 와서보니 동생이 나에게 매일 밤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안마를 해줘야할 의무는 없더라. 

   물론 넘나 착한 내 동생(♥)은 내가 부탁할 때마다 싫다고 하면서도 억지로라도 언닐 위해 시간도 힘도 희생해주었다. (동생아..미안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

   적어도 난 돈을 더 주던가... 같이 해주던가.... 뭐 어떻게든 막내를 배려해주는 무언가를 했었어야 한다. 역지사지!!

   아님 동생이 안마를 해줄만큼 정말 예쁜 짓을 하는 언니라든가ㅎㅎ 왜 이야기가 이리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결론은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님을 멀리 떨어져보니 알게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들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이로든 나를 만들어가고 어느새 내 자신이 되어있더라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익히 알고 있던 나의 모습, 그렇지 않은 모습 둘 다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 내가 알고 있던 나

 

   하나님없는 나는 앙꼬 없는 찐빵

               (무슨 말이 필요할까...ㅜㅜ이미 위에서 다 씀)

   우유부단의 갑

               (모든 면에서 여전히^0^..)

   감성충만한 여자

                (한국에서 가족,친구들이 줬던 편지 다 싸들고 와서 뜬금없이 보다가 펑펑 움, 넘나 고마움♥, 아티스트들이 많은 다운타운에서 나도 거지면서 가끔씩

                1달러를 기부함. 그랜빌아일랜드같은 관광지가면 혼자 30분동안 앉아서 구경할 때도 있음)

   사서 고생하는 거 짱 좋아함

                (예를 들면 사먹어도 될 케익을 굳이 굽는다고 케익값의 2배는 내야 하는 재료들을 낑낑대고 사서 들어옴)

   음악 진짜 사랑함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 혼자 살다보니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끼고 살 수 있음)

   사진을 짱 열심히 찍고 다님

                (자연 그 자체인 밴쿠버에서 늦은 출근길에도 넘나 멋진 풍경이 있다면 허리를 숙여 사진을 꼭 찍고가는 나란 녀자, 찍사본능)

   내 표현 방식은 글쓰기

                 (편지도 너무 좋아하고, 굉장히 old하지만 그래서 더 나와 맞는 표현방식. 나를 계속 성찰할 수 있게 하는 글쓰기는 네~버엔딩

                 +여기에 대해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내가 가져온 노트들, 새로 산 노트들, 사게 될 노트들..무겁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은 필수아이템ㅋ)

   가 족 사 랑

                (어린 동생(중고딩)이 둘이라 그런지 더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함. 난 첫째야,하며 스트레스받는 일은 언제부터인가 많이 내려놨지만 가족에 대한 애정은

                 내려놓을 수가 없음. 그래서 한국에서 평생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음. 어디로 이끄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지금 내가

                 속한 가정 안에서 우리 가족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어가고 싶음. 여행도 가고. 누려보지 못한 것들을 많이 누리고 싶음!)

   저질체력 & 장 상태 안 좋음

              (나에게 운동이란 다이어트보단 체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아랫뱃살이 스무살쯤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들어가지 않고 있는 걸 보니

               정신 좀 차려야겠단 생각이 든다. 알바를 섭렵하고 다녔던 이십대 초중반과는 달리 이 체력가지고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약한 생각을

              하게 된다. 다 할 수 있어!!!!!!라는 마음가짐을 뒷바침해줄만한 체력을 갖춰야한다. 또 다른 넘어섬ㅠㅠㅠㅠ저질 저질 저질체력.. 저체력... 몸이 약하다.

               소화기관도 19세 이후로 쭉 나빠졌는데.. 작정하고 고치지 않으면 생명에 위협이 갈지도 모르겠단 두려움이 들기 시작..)

  방향감각 제로, 길치

              밴쿠버에 오면서 베이징을 거쳐와야 했는데 내 '길치 내비게이션'이 작동했는지 같은 길을 몇 번이고 왔다갔다하면서 몇 시간동안 스테이할 라운지를

              찾는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린 기억이 있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게 마냥 짜증만 나진 않았던 게 혼자 이렇게까지 멀리가는 여행은

              처음이여서 그만한 설렘이 있었고, 나는 '길치'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길을 잃어도 괜찮아라는 마인드가 늘 나를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타지에서 살다보니 새로운 길을 가는 건 늘 있는 일이 되었고, 그 말은 길을 더 자주 잃게 되었다는 말인데 정말 정말 '구글맵'이 없었다면........ 

              어디가서 혼자 못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아마 방향감각이 제로이기 때문에 길치일지도 모른다. 자꾸 옆에 벽이 있는지 모르고 부딪히고... 

              그런 나를 보면 참 바보같긴 하지만, 그게 또 나인 걸 인정하게 된다. 내가 만약에 드라이브라이센스를 따서 잘 운전하고 다니면 그건 완전 은혜!!!!!!!!!ㅋㅋ               포기하기 전에 해볼거긴한데 딱히 내가 못한다고해서 그게 말이 안 되진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ㅠㅠ


  난 이기적이야

              연애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건 뭐라고 생각해? 모쏠인 내가 늘 친구들에게 궁금해했던 것. 그들이 하나같이 말했던 건 바로 배려심이었다.

              인큐의 윤소정CEO의 책을 너무나 읽고 싶어서 친한 동생이 찜질팩 보내준다고했을 때 보내달라고 부탁했던 책에서 '역지사지'정신이 인문학의 기본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최고의 지혜임을 배웠다. 근데 그건 그냥 책에서 읽었다고해서 배워지는 게 아니었다. 

              정말 실천해야만, 경험해봐야만, 얼마나 부족한지 느껴봐야만, 연습해야만 내꺼로 만들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배려심이었다. 

              멀리 떨어져있으면서 그동안 부모님으로부터, 동생들로부터, 교회 친한 언니, 친구, 동생, 또 여러 친구들, 선생님 들로부터 내가 받아왔던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음을... 그와중에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게 생각하고, 대하고, 그렇게 맺어갔던 관계들. 부끄럽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에 있어서는 조금 더 이해심있는 사람으로, 인격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이기적으로 살아왔기에 희생하며 살아야겠다는 게 아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배려하면서 서로 서로 기분 좋을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그런 사람이고 싶은

              거다. 좋은 사람이 된 다는 건.. 어떤 위대한 일을 해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점에 내 마음이 어딜 향해 시작되었는지가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

              

  먹는거...짱 좋아함

             솔직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필수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서 누구나 먹는 걸 좋아하고, 음식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자랑거리를 넘어 이젠 그 자체가

             문화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런 문화가 오히려 더 '탐욕'의 시대로 사람들을 몰아가는 것만 같아서 별로일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정보들을

             공유하며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나은 것들을 추구하는 본성을 제대로 자극한 것 같다는 생각이....ㅋㅋㅋ

             아무튼 요점은 먹는 걸 만드는 것도, 하는 것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걸 넘어선 듯 하다.

             먹방이 넘실대고 있는 유투브....가 백도 이해될만큼 진짜 먹는 게 너무 좋다. 탐심이야 이건...ㅠㅠ 은근 죄악감 드는 부분이다..

             그냥 심플하게 먹어도 되는데.. 왜 자꾸 나는 뭔갈 채우려고 하는가????? 이러면서 닭갈비 레시피 검색하고 있는 나... 하하

             인정, 먹는 거 좋아한다. 아빠 닮은 식성이 어디가랴. 그렇게 태어났다. 


  꿈 쟁 이

        어떻게 나를 이끄실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하나 분명한 건 앞으로 더 하나님의 딸로써.. 많이 낮아지고, 엎드려지고, 새 삶을 주신 분께 순종하며 그렇게

        주신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고싶다는 것. 승연언니와의 인터뷰처럼 내가 뭘 하든 어디있든 '잘 사는 것'에 대해 사색할수록 느껴지는 건 돈이고 명예고

        그 모든 것에 잘 사는 의미가 담겨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 나는 늘 꿈을 꾸길 좋아하고, 상상하는 걸 시도 때도 없이 하는데..

        반대로 나를 돌아보는 걸 너무 많이해서 우울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내면을 파고들면 들수록 나는 '꿈쟁이'라는 걸 느낀다.

        수많은 유투버, 강연가, 스승들이 제자들에게 꿈을 꾸라고, 이루라고 말하듯 나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 그 위치에서 꾸준히 '꿈'을 꾸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다른 이들의 꿈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친구, 멘토, 언니, 누나, 선생님 등 그 어떤 모습으로든 상관없다.

        그냥 나를 딱 떠올렸을 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엎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아는 사람. 일어나려고 노력하는 사람. 꿈꾸는hn, 내 아이디처럼 :D

        


  

   

    -  내가 몰랐던 나


   여 우....(이거 보면 친구들이 픽-하고 웃을지도ㅋㅎ니가?) 

       이건 노코멘트. 그냥 나도 여자라는 거.......ㅋㅋ

       궁금하신 분들은 나중에 개인적으로 물어보도록.....XD 생각해보니까 난 몇 년 동안 스스로 여우라고 자칭하고 다녔는데..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하핳


   귀차니즘을 감추고 있던 집순이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전~혀 집순이가 아니였다. 오히려 그만 좀 싸돌아다니라며... 집에 있으면 아프다하고, 아픈데 밖에 놀러다닐 힘은있냐며 잔소리를

       들어야했다. 사실 놀러다니는 것만은 아니었다. 순모임, 여행강의, 카페가서 공부 등 나름 유익한 시간들을 보냈던건데...(......이와중에 억울해서 또 쓰고 있음)

       부모님 눈에는 어떻게든 나가려고 하는 딸래미였던 것 같다. 솔직히 많이 나가긴 나갔으니 인정!ㅠㅠ

       그러던 내가 밴쿠버에서 일주일에 4-5번은 비가 오는 레인쿠버를 내 일상으로 받아들이자니....."어....음.... 난 우울하지 않아, 축 쳐진 건 결코 날씨 때문이                  아니야"라고 말해봤자..... 소용없을 정도로 어느새 내 모습이 그냥 귀차니즘에 쩔어있는, 일이 없을 땐 밖에 나가지 않는 그런 집순이가 되어있더라.

       충격적이었다. 게을러진 건 둘째치고... .'아...... 귀찮아.........'라는 말을 내뱉는 내 자신이 처음엔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뭐, 지금은 잘 받아들이고 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반.전 처음엔 이거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스트레스도 꽤 받았는데 이젠 이것도 밴쿠버니까

       가능한 삶이려니 하면서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시간낭비를 하는 부분이 여전히 많은 삶은 너무 싫어서 최소한 내가 정한 룰(출퇴근시간 책 읽기, 기록하기 등)

       은 잘 지키는 게 목표.


   

   외모에 대해 내려놓은 나

       소리드림 특훈 이후로 옷, 화장품에 대한 소비가 현저히 줄었다. 분명 20대 초반에 알바한 돈의 큰 부분은 먹고, 입고, 무언가를 사는 것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있        었는데... 아, 물론 지금도 먹는 건......중요하다. 여전히. 그런데 옷이랑 화장품에 대해서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화장품 욕심은 좀 있지만 예전처럼 막 사진 않는다.

       지금까지 쓰고 있는 섀도우들을 보면 족히 3-4년은 된 섀도우가 있는데... 이거 눈에 안 좋은 거 아닌가 싶다.ㅋㅋㅋㅋㅋㅋ

       아무튼 특훈 땐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좀 꾸미고 다니고, 오히려 많은 시도를 해볼법도 한 때인데.. 아무래도 막 여유있어서 온 게 아니다보니...

       그리고 나이를 먹었는지, 아니면 우선순위가 많이 바뀌었는지 막 꾸미는 것에 지나치게 소비를 하지 않게 된다. 나갈 때도 대충대충....

       마치 유니폼처럼 맨날 같은 옷 입고...ㅋㅋㅋ 그런데 진짜 밴쿠버에서도 한국인들은 정말 많이 꾸미는 편이다. 그래도 일할 땐 화장을 열심히 하는 편인데

       확실히 한국에 있을 때처럼 매일같이 렌즈+화장이 기본이진 않다. 그냥 안경쓰고 출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남은 렌즈도 얼마 없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 많이 없다보니 더 그런 것 같긴하다. 옷구경을 가도 후들후들거려서 막상 뭘 사진 않게 된다. (쓸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을 볼 때도 거의 쌩얼같아도, 안 꾸민게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인가보다,하게 되는...ㅋㅋ

       한국 가면 또 엄청 신경쓰게 될 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금 여기선 그렇다. 외국인들을 볼 때도 세포라만 가봐도 '진짜 열심히 꾸미고 다니는 사람'은 그냥 

       평소에도 그런 사람. 아닌 사람은 정말 1도도 꾸미지 않는 사람. 우리나라 대학생들처럼 대학교에 잘 꾸미고 다니는 대학생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한 가지 지키고 싶은 건, 여자로써, 아니면 어딘가 갈 때, 나는 꼭 꼭 멋지게 예쁘게 잘 꾸밀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 XD

       





   1년동안 '역지사지'를 연습할 것. 

역지사지[  ]

(바꿀 역, 처지 지, 생각할 사, 이 지)





문짝에 붙여놨다가 실천하지도 못하면서 걸어놓기만 해서 스스로 짜증나서 떼어버린 1년 계획표가 떠오른다.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저장되어있지만 말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한창 밑바닥을 찍을 피폐한 그 때 내 목표는 참 높았다는 거다. 우스우면서도 그런 내가 너무 나다워서 다행이다싶다.
1년동안의 내 키워드는 'Hatch' 해치다. 친한 교회언니, 동생들과 함께하는 4자매모임이 있는데 카톡방에서 서로의 1년계획, 기도제목 그런걸 나누다가
또 난 나름대로 키워드를 정해보겠다고, 근데 요즘 너무 힘들다고 블라블라 떠들어대고 있었는데 재영언니가 '부화'로 하라고 말해줘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영어로 찾고, 서울의 캐릭터 '해치'에 대한 의미도 찾아보다가 '헐! 이거다!'하고 좀 민망하고 유치하지만 키워드를 해치로 정했었던 기억이 난다.

해치 ; 전설 속 동물이라 일컬어지는 '해치'는 선악을 구분하고 정의를 지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영어로 하면 Hatch는 부화. 즉, 알을 깨고 나오는 그 연약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생명을 말한다.
처음 뜻은 내가 나를 깨고 나오는 기간. 내가 생각하던 그 모든 틀을 깨고 나오는 시간을 보내고 가겠다는 각오. 
내 모든 고정관념을 깨고 나오겠다는 그런 의지가 담겨있는데 12개월 중 4개월이 지나고 보니 그 부화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어떤 작지만 아주 강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내 믿음도 2016년 이후로 다시, 또 다시 점을 찍고 새로 시작되는구나,하는..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당연히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싶다. 그래야만 하고.
그 기본은... 역지사지가 아닐까? 인문학 인문학,하는데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그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먼저 대접하고. 내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계명. 그 기본은 역지사지 정신이다.
그리고 모든 바탕엔 하나님이 우릴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아주 명백한 이유가 있다.

길치에다 공간감각 없는 나,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이 역지사지 마인드가 부족해서 남을 먼저 배려하는 연습을 한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차가 지나가는지, 안 지나가는지 먼저 보고 지나갈 차가 있다면 그 차 뒷 쪽으로 가서 건너는 센스. 그런 게 나한텐 없다.
이건 친한 사람 몇 명을 보고 느꼈던건데 나와 꽤 다르다고 느꼈던 이들에게서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건 남을 향한 깊은 배려심이었다.
이 통찰은 여기와서 더 깊이 느꼈다. 아, 나는 저런 센스가 없는 사람이었구나. 겉으론 착한 척 배려심 넘치는 척 해도 속으론 욕심덩어리로 살았구나.
남에 대한 관심이 없었구나. 있는 척만 했구나. 이런 것들.. 

앞으로 평생 연습하며 적용해야할 '역지사지'정신. 밴쿠버에 온 이후로 내게 가장 부족하다고 느꼈던 정신이 바로 저 정신이었다.
'내가 ㅇㅇㅇ였다면?"이라는 생각을 아주 깊이, 골똘히 해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내가 하나님이였다면?(감히 생각지도 못할 마음이겠지만)
내가 이런 상황에서 엄마였다면?
내가 알바 몇 명을 거느리는 매니저였다면?

더 깊이 들어가서

죄를 짓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갑자기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는 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외할머니를 두고 가셔야했던 외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외할아버지 생각을 하면 가끔씩 자꾸 죄송해서 눈물이 난다. 아주 갑자기, 갑자기.. 한국에 가서 외할머니를 얼른 뵙고싶다.)
귀여운 늦둥이들이 겪어냈어야할 엄마아빠의 마음은 어떘을까?
내가 강산이였다면, 하은이였다면 지금 학교생활을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할까?
예배에 처음와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데 앞에 감격하며 찬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떨까?


너무 많은 이들의 생각을 공감해서 머리아픈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되어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또 나의 마음을 지혜롭게 전하는 것.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만 있다면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있어서,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같이 살게될 가족관계에 있어서
나름 오랜기간동안 바쁘단 핑계를 대면서 소홀히 했던 친구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주 조금은 나도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특훈을 하면서 '경청'에 대한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친한 친구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서 매번 생일이 되었을 때 뭘 사줘야할 지 몰라 고민했던 경험을 털어놨었다. 그걸 토대로 한 달동안 경청노트라고 해서 친구들이 말하는 걸 적어놓기도 했었다. (물론 한 달이 가지 않았다.ㅋㅋㅋㅋ)
그러나 이런 것 역시 하나의 연습이 될 수 있었다. 경청의 기본은 배려심, 역지사지에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누구나 자기 얘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얘기하면서 한 걸음 물러설 땐 물러서서 그들의 이야기에 온 감각을 다 집중하고 들어주는 것.
나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지만 안다. 연습하면 할 수 있다는 걸. 기도하자. :D

 






이거 글 쓰는데  열흘은 걸렸던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어디로 워홀을 가든 그 복잡한 마음, 내려놓는 마음, 그렇게 왔다갔다하는 마음은 다들 비슷할거라 생각한다. 하나 말하고 싶은 건 '실패'한 워홀, '성공'한 워홀.. 그런 걸 구분해서 생각했던 것 자체가 어쩌면 내가 이 생활에 대해 완전히 몰랐기 때문에 그런게
아니었을까, 한국식 사고로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싶다. 각자가 깨달아야 할 포인트가 다 다른데 어떻게 이건 실패다, 성공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이는 영어에 대한 동기부여를 1년 내내 받아갈수도 있는거고, 어떤 이는 여행에 대한 꿈을 더 크게 꾸고 돌아갈지도 모르는..
그냥 각자의 삶의 스타일이 다 다르듯, 그렇게 자기 기준에서의 워홀생활을하고 가면 그걸로 만족인 게 아닐까? :D
그렇다고 너무 아무것도 안 하고 가진 말자......ㅋㅋㅋㅋㅋㅋㅋㅋ1년 너무나 길고도 짧은... 지나고 나면 너무 짧은 기간이니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