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th interview with 박윤혜
#13th interview
WE ARE IN 20S
Writer : Hani Kim
2015.10.10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박윤혜고요. 나이는 25살, 하니 친구입니다. 현재 저는 4학년 2학기, 산업공학과와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있어요.
또 기자준비를 하고 있고 아직은 준비 초창기에 있습니다. 어떤 기자요? 정통 기자요.
박윤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거 있잖아요. 작은 거인?
저는 그 타이틀 되게 좋아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울 리더, 안녕하세요. 작은 거인 박윤혜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요즘에 저는 한량이에요. 학교에서 9학점을 듣고 있고 일주일에 2번밖에 안 가니까. 최대한 많이 안 가려고 했던게 신문사 인턴쪽에 지원이 많이 올라와서 그런걸 하려고 했어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일주일에 하루라도 학교를 가게 되면 풀타임으로 근무를 못해서 아예 지원조차 할 수가 없는거에요. 그래서그건 안하고 학교 다니면서 기자 준비를 하려고 하고 있어요. 맨날 말만 이렇게 해서 짜증이 좀 나는데..
다음주 월요일부터 프렙스쿨이라고, 저널리즘스쿨인 프리퍼레이션 스쿨이 있어요. 그걸 시작하기로 해서 6주 과정을 하게 되요.
우선 그건 돈을 내는 건데, 프로그램 주최자가 이화여대에서 하는거에요. 그것도 약간 소리드림 비슷한 느낌인데, 저널리즘스쿨이 우리나라에 별로 없어요. 이화여대가 그나마 괜찮은데였거든요? 돈이 되게 비쌌어요. 한 학기당 막 이 백 얼마씩 했었죠. 대학등록금만큼. 근데 이걸 SBS랑 같이 손을 잡고 전면 무료로 시행을 해서 지난 9기부터, 그러니까 작년 2014년부터는 무료로 진행이 되었고 이번 2015년도에 뽑았어요.
2016년도에 10기를 뽑는데 그걸 하기 전에 이 프리페이션스쿨을 하고나서 열심히 하려는 애들을 미리 걸러내려는 거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 지원을 했죠. 저는 학교에서도 실제로 기자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못 만났고, 과도 그 쪽이 아니기 때문에 접할 수 있는 그 껀덕지가 없었어요. 제가 봤을 땐 이게 그 첫 시작이 될 것 같아요. 이제는 기자를 어떻게 준비를 하려고 하는지 좀 알아가는 때인 것 같아요.
(다음 문단부터 자연스럽고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반말로 진행되는 점 양해해주세요♥)
그래서 배스킨라빈스 알바를 하고 있는데, 얘기했나? 아니. 팔 진짜 아프겠다. 응. 팔목이 아픈데.. 3주 째 집근처에서 하고 있어.
학교를 일주일에 2일, 알바 3일 하니까 딱 맞아. 아싸라비야-하고 바로 했는데 준비를 하려다보니까 다른 애들처럼 딱 착실하게 대기업을 가려고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공채기업을 준비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공채가 바로 뜨면 지원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언론은 딱 정해져있잖아. 준비가 안되어있으니까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건 확실하고. 그래서 남들은 어떻게 볼 진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 알바에서도 내가 나이가 제일 많기도 해. 근데 기자 준비하면서 책도 많이 필요하고, 학원비도 필요하고 하니까 마냥 이젠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학교를 안 가는 날에는 알바하면서 준비하고 있어.
부모님은 뭐라셔? 기자를 준비하고 알바를 하고 있는 거에 있어서.
부모님은 나를 볼 때 현재로 판단하시진 않는 것 같아. 쉽게 너 지금 뭐하고 있니, 너 왜 그러고 있어,라고 말하지 않으시고.
나같은 경우도 워낙 미래를 보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니까. 그거에 대해서 딱히 크게 제지하시진 않으시니까.
오히려 아빠가 지금 취준생인데 알바를 갑자기 구해서 한다니까 '너 뭐 알바한다고?' 하시지.
근데 난 당당해. 왜냐면 내가 필요한 거 내가 충당하는거니까. 하겠다고, 마냥 놀면 뭐하냐고. 놀면 그냥 시간 막 쓴다 그랬지.
엄마도 거기에 대해서 딱 히 별 말씀 안하시고. 어떻게 보면 책임감으로 다가오는거지. 원래 선택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지는 거잖아.
엄마아빠께서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건 내가 내 인생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하는 말 같아서, 그래서 더 이상 터치하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
난 벌써 기자를 하겠다고 당당히 말씀을 드렸고, JTBC의 기자를 하고싶다고 얘기도 드렸고. 엄마도 'JTBC에 되게 좋아하는 기자가 하나 있는데, 너도 그 기자처럼 될거냐고.' 물어보시더라고. 그 기자 맞다니까, 그럼 하라고. 그래서 준비하고 있지. 근데 엄마도 가끔씩 삼성, 무슨 대기업 그런 전단지 찢어서 가져오신단 말야. 아무래도 엄마도 불안하신거지. 내가 취업전선에 있어야하는 건 맞으니까.
그래도 믿어주시는구나. 응. 믿음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난 그런거에 대해선 불안해.
내가 지금 학생이란 신분이 있기 때문에 굳이 큰 터치를 받지 않지만, 난 2월 달에 졸업을 확실히 할거야. 졸업유예를 하지 않을건데. 졸업하고나서 나의 모습을 봤을 때 그 땐 어떤 소속에도 들어가있지 않잖아. 그치만 또 9월달에 공채가 뜰 거고, 준비를 할텐데 아마 취준생이 겪는 그런 불안감을 겪겠지? 그 때 좀 다른 방법, 새로운 방법으로 하고 싶어. 개척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마인드를 바꾸게되면 준비하는 과정이 분명 다를거란 말이야.
남들처럼 똑같이 기자를 준비하고 올인하는 언론고시생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하는 일이 분명 있기 때문에 기자를 하고싶어 하는 거잖아.
이번 세미나를 듣고 그러면서 내가 기자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알게 된거야. 내가 왜 하고 싶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되면서 확신이 생긴거지.
나는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쪽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아.
이유는? 아까 말했지만 세상을 바꾸는 소울 리더라고 했잖아. 세상을 바꾸고 싶었단 말야.
Why not change the world?란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했는데 되게 어렵고 큰 건 줄만 알았어. 근데 몇일 전 세미나에서 SBS국장님께서 나오셔서 채용설명회를 하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거야. 인재상을 얘기하시면서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다 똑같아. 그건 누구나 다 알아.
'다 똑같죠?'하면서 기업들이 원하는 게 다 똑같다고.
그러면서 얼마 전에 시리아에서 난민 문제로 그 아기가 죽은 사진을 찍은 사진 기자가 있었어. 근데 그 사진기자가 아직 무슨 상을 받진 않았지만,
한 인터뷰 기사에서 어떻게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느냐고 물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는거야. 그 기자는 촬영기자고 사진기자인거야.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건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것 밖에 없는거야. 근데 그 사진 한 장으로 전세계가 움직였잖아.
그런거야. 그렇게 되게 사소하고 별 거 아닌건데 이런걸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되면서 '아, 맞다. 이러려고 기자를 하고싶어했던건데, 왜 잊고 있었지'란 생각이 들면서 글로써 혹은 인터뷰로써 단 하나의 그 어떤 컨텐츠가 다른 누군가에게 변화가 되고 이걸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라고 느꼈지.
꼭 기자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할 수는 있는거니까.
그럼 세상은 바뀔까? 이렇게 한 명 한 명이 헌신을 하고, 자기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그럼 세상은 바뀔까?
바뀌죠. 그건 너무 저명하게 역사가 말해주잖아. 우리나라 보면 알잖아. 이게 너무 비극적으로 그려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뭔가 희생한 사람들을 많이 부각시키잖아. 근데 실제로 그들의 삶이 정말 그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고,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거고. 그냥 역사를 비춰봤을 때 그게 우리의 모습인거야. 역사를 보고 배운다고 하잖아. 지금 내가 진짜 별거아닌 것 같고, 되게 작은 도움인 것 같지만 코치님 마인드처럼 A4 용지 한 장 한 장 쌓이듯이 진짜 한 걸음 한 걸음 갔을 때 나중에 저기 가있겠지? 그리고 그 뒤에 누군가 따라오겠지? 그럼 그런 게 조금씩 변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 아무런 노력없이 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거야 아무런 변화가 없고 그냥 똑같은 거겠지. 열정적인 20대다. (하하)그러게요.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20대들을 봤을 때 어떤 것 같아?
어... 우리나라 20대는.. 되게 옛날에는 무조건 너무 답답하다, 절망적이다 이렇게만 이야기했는데 마냥 그렇게만 표현할 건 아닌 것 같아.
진짜 많이 모르는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나도 지금 많이 모르고 배우고 있는 과정인데, 알려고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아.
왜냐면 지금 내가 서있는 상황이 너무 바빠서 신경쓰지 않는 것도 있어, 물론. 그렇지만 알려고 하지 않아. 왜냐면 무서우니까. 도전해야하잖아.
바뀌어야하잖아. 내가 바뀌어야한단 말야. 그걸 싫어하는 것 같아. 그래서 자꾸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것 같고, 똑같은 후회를 계속 하고.
어른들이 반복하는 실수를 하고. 그러면서 똑같이 거기에 갔을 때 자기 후배들에겐 청춘이니까 꿈을 꾸라고하고 얘기하고. 자긴 그러지 않았으면서. 그런 모습들을 봤을 때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더 내가 열심히 부딪히고 쓰러져봐야되는데 그런 걸 좀 두려워하는 겁쟁이같은 느낌이 많이 들지.
친구들 중에는 되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보통 애들이 다 그런 느낌이지. 약간 이런 느낌? 한 발짝 딱 가려다 다시 주춤하고, 한 발 겨우 갔다가 다시 돌아가고, 그래도 한 발짝씩 겨우 갔던 친구들은 그 맛을 알아서 조금씩 가려고 하는 그 느낌은 알지만 그러지 못하고 종종걸음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게 좀 안타까운거지. 그들을 변화시키고 싶은 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일이나 삶을 통해 정확하게 어떤 사람들에게 타겟을 두고 인사이트를 주고 싶은거야?
준비를 하면서 하고싶은 것들, 해야하는 것들 중 하나가 현장에 가보는 거거든. 내가 너무 많이 안타까웠던 거는 세월이 사건이 터졌을 때 그 팽목항에 가보지 못한 것. 그리고 안산에 있는 분향소에 가보지 못한 것. 나는 그게 되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청년으로서 그런 것 조차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호 자체에 대해 논하는 것이 너무 어리석단 생각이 든단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엔 청소년이겠지만, 그렇게 가기 전에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도 그렇고,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그거는 결국 마음이 궁핍한 사람들에게 진짜.. 좀 따뜻하게 해주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겠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구나, 이렇게 갑갑하고 억울하고 분해도 세상은 살만하구나라는 걸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 내가 JTBC 마인드 중에 되게 인상깊었던 게 뭐냐면 청중 대상을 일반시청자가 아니고.... 아.......진짜 너무 인상 깊었는데 까먹었다.(........) 아, 까먹었다. 그냥 거기 마인드가......
(정확히 기억안나서 괴로워하는 윤혜) 아, 청중 누구였지 진짜!!!!! 손석희가 한 말이 있어. 우리 청중은 그냥 일반 시청자가 아니라고. 분명 지향하는 바가 있어. 그걸 딱 보는 순간 나도 그러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처음이었어, 언론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게 언제야? JTBC에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 건 불과 2달 전이고, 맨날 이야기를 하고 다니다가 사실 왜 거기에 들어가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진정성이 있고 손석희가 있다는 게 컸지. 근데 최근에 미디어 50주년 컨퍼런스를 지지난 주 월요일날 했었어. 채용설명회도 같이 해서 갔다온 거란 말야. 그리고나서 JTBC랑 중앙일보 책이 나왔어. 입사설명서 그런거. 웃기지. 언론사에서 나온 건 최초인 것 같아.
그걸 보는데 되게 내용이 알찬거야. 그 중에 손석희 인터뷰가 있었어. 그 인터뷰를 보는데 그 짧은 인터뷰에 되게 마음을 울리는 게 많더라고.
그 사람은 팩트만 이야기하는데 되게 감동을 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박윤혜에게 손석희 아저씨란?
아우어오~~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그러게. 딱 정의해보진 않았는데.. 멋진 말로 얘기해야 돼? 아니? 하지만 난 그대로 싣을거야.
뭔가 좀 의미있게 말하고 싶은데.. 그냥 롤모델이라고 생각했어. 만약에 지금 특훈에서 강말을 시켜서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난 손석희라고 대답할거야. 나한테 그렇게 영향력이 컸나 싶었는데.. 정말 컸더라고. 내가 그 자리를 꿈꾸게 한 것도 손석희였고. 발전하게 된 계기고 그랬고.
결국 다 손석희 때문이였으니까. 근데 그 사람이 전부는 아니야. 내가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그 사람때문은 아니야.
그런데 분명 내가 언젠가 한 번 만나야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지.
어떤 사람 같은데?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떤 이미지냐고? 굉장히 냉철하고, 차가우리만큼 팩트만 다루고 정말 정직한 언론인인데 그 안에 따뜻함이 있는거야. 그 분이 세월호 관련 뉴스를 발표하면서 중간에 말을 두 번 정도 못 이었어. 근데 그 모습이 시청자들에겐 크게 다가온거지. 근데 그 모습 뿐 아니라 너무 인간적인 거지. 그 사람은 지극히 인간인거야. 또 자기가 인간임을 인정하는거지. 그러면서 언론의 중심에 서고 싶어하시는거지. 그냥 그런 모습을 닮고 싶어. 나는 너무 미숙하니까. 또 그런 마인드가 부족하고. 되게 삶이 멋있어. 소박하고, 욕심 없고.
비춰지는 모습이 전부겠지만 왜 그렇게 얘기 하냐면.. 자기 딸이 손목시계를 사줬다고 그걸 차고 나왔는데 그게 유명 검색어로 올라온 적이 있었어. 손석희 시계라고. 정말 1-2만원짜리 검정색 정말 투박한 시계였어. 근데 그런 걸 정말 개의치 않아하는 걸 보면서 인간적인 사람이란 걸 보게 되었고..
또 JTBC에서 스타인터뷰라고해서 G-dragon도 나오고, 진짜 한 번쯤 들어본 연예인들도 많이 나오는 게 있어. 한석규도 나왔고.
인터뷰를 하는데 되게 칼 같은거야. 얼마나 딱딱하겠니. 질문하는 게 되게 예리한데 그 안에 또 뜻이 있고. 한석규가 자기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긴장해본 게 20년만에 처음인데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되게 조심스럴운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했단 말야. 그런걸 보면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고, 힘이 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지.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어.
박윤혜다. 갑자기 그거 생각났어. 너 예전에 면접보는데 헬퍼님이 너 앞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고. (깔까깔까띾ㄹ)
그럼 핵심질문으로 넘어가보자.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뭐야?
우선순위를 물어보는거야? 그렇지. 신앙이지. 26살 지금? 하긴 평생토록 신앙이겠지? 그렇지. 그건 나이를 불문하고겠지.
왜냐면 나의 삶의 모든 방향과 결정이 거기에 의해 결정이 되니까. 나는 모를지언정, 아니라고 할지언정 실제로는 신앙일 수 밖에 없는거지.
그리고나서 두 번째라면 20대에 가까울 것 같아. 너무 뻔하지만 비전에 대한 갈망이 가장 크니까, 꿈. 그게 가장 큰 타이틀이 아닐까 싶어.
10대 때부터 이 꿈을 꿔왔고, 계속 ing에 있는 상태잖아. 청춘이라고 해서 사실 다를 건 없는 것 같아. 또 30대가 되고 40대가 된다고 해서 다르지 않고 다 같은 마음이야. 하지만 시기가 다를 뿐이고, 결혼을 했고 상황이 다 다를 뿐이지. 지금 내가 자유로운 시간이 20대-30대초반 뿐이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
그래서 그 와중에 있다면 나는.. 아, 근데 비전이라고 얘기하기보다는 두 번째 가치는 사랑이라고 얘기하고 싶어. 이건 모든걸 통틀어서 똑같은 것 같아. 내 일을 사랑하는 것과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도 분명히 포함이 될 거고. 친구들, 가족들도 그럴거고. 사람들은 당연한거고. 그런걸보면 사랑이란 가치가 정말 큰 것 같아. 되게 좌지우지하는 요소인 것 같아. 아무것도 아니고 뻔한 말인 것 같지. 근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꼭 사랑이 연애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은 어떤 사람 같은 경우엔 사랑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야. 근데 20대들에게 사랑을 말하면 모든 사람들이 연애에 집중을 한다는거지. 그랬을 때 약간 결과가 다르다는거? 물론 연애에 집중을 하고 싶긴 하지만(하핳) 그건 또 다른 에너지인 것 같아. 그래서 사랑이 아닐까 싶어. 내가 할 일들을 사랑하는 거. 너도 그러지 않나?
그럼 너는 너의우선순위에 맞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아까 말했잖아. 나 막 한량이라고. 근데 집에서 티비 다시보기 1~8화까지 드라마를 막 보고있더라도 그게 나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 그치.. 그대로 살아가고 말할 수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꿈은 변하지 않으니까. 늘 거기 있으니까. 내 가치관도 확실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어떻게 보면 내가 너무 기특해. (우하하하) 아무도 나를 기특해하지 않지만 나는 좀 내가 기특하다고 나한테 해주고싶어.
난 불우이웃도 아니고, 엄마아빠가 안 계신 것도 아니고,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힘든 것도 없었지만 혼자서 해야할 일들이 정말 많았거든, 진짜? 독립적으로 내가 해야하고, 선택해야할 것들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 또 그런 상황을 너가 만들어 왔고. 응. 자처해서 사서 고생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중에 내가 충분히 흐트러질 수 있는 것들이 다분했는데 그러지 않고 그래도 내가 꿈꿔왔던 것들을 그대로 하고 왔다는 게.
그 모습이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고, 막 대박!!이러지도 않지만 앞으로 더 가야겠지만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정말 수고했다고 나한테 얘기해주고 싶은거지. 사실 가치관대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드니. 가치관을 내가 의식하고 살아간다는 게 정말 말도 안 되는거야.
나도 모르는 게 내 가치관이고. 맞아. 계속 알아가는 거니까. 그치.
특훈 때 우리 진짜 바빴잖아. 바쁘지 않으려고 해도 그런 스케쥴이었잖아.
그 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뭐가 달라진 것 같아? 어떤 모습을 말하는거야? 시간을 다루는거나 삶의 패턴에 있어서?
나는 깨달았어. 나는 바쁠 때 더 살아난다는 걸. 나는 바쁜 게 싫은데 바쁘지 않으려고 하면 못 견디겠는거야. 맞아. 스케쥴이 있어야 생동감이 돌고 자꾸 밖에 있어야 내가 뭔가를 하는 게 확실하잖아. 근데 특훈을 하면서 내가 느꼈던 건 나도 이만큼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걸 처음 느꼈어.
난 한 번도 끝까지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예를 들어 만약에 내가 이걸 원했어. 목표를 달려서 끝까지 가서 성공을 한 적이 별로 없던 것 같아. 끝까지 가본 적은 있지. 하지만 결과가 성공이라고 말해주는 건 그렇게 크게 없었던 느낌?
근데 코치님도 이런 걸 성공담을 주시기 위해서 시작하신 거잖아. 아침에 그렇게 일찍 가서 온몸을 불사질러서 하는데 그렇게 1년 지나서 보니까 내 에너지가 이만큼은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 시간관리하는 거는 하면 하겠는데.. 지금은 놓고 있어. 시간 관리를 안 한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굳이 나의시간을 어떻게든 쪼개서 쓰려고 하진 않아. 왜냐면 그게 싫어졌어. 좀 답답해진 느낌?
옛날에는 그렇게 썼었는데. 내 후배가 그랬었어. '언니는요. 시간을요. 잘 활용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쪼개써요.' 없는 시간까지 쪼개쓰는 느낌까지 든다는거야. 그 전까지도 정말 그랬어. 소리드림 전에도. 끝나고 나서 돌아보니까 뭔가 남긴 많이 남는거야. 근데 내가 없는거야. 그 순간에 내가 그게 너무 싫었던 거지. 그래서 지금은 그냥 나한테 주어진 시간은 정말 나한테 쓰고, 해야될 일들은 뭐 학교를 가는거나 알바를 하는거나 열심히 하고 있고 있어. 나도 요즘엔 잠은 잘 자고 있어. 나도 잠 대박 잘자. 원래 특훈 끝나고 나서는 늘어지는 것 자체에 대해서 내가 나를 용서하기가 안되는거야. 막 자연스럽지가 못한 거야. 그래서 잘 못 쉬는 거 같은거. 어. 맞아. 그런 것도 있어.
근데 이제는 그냥 내 몸에 휴식을 줘야되는구나, 우리집에 사는 중국인이 1달 동안 지내고 있어. 근데 그 친구가 1시 넘어서 자면 꼭 한 10시쯤 일어나고 알람을 맞추지 않아. 그냥 자. 자기는 자기만의 바디 시간이 있대. 푹 자. 근데 그게 맞는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해야 또 활기차고. 맞아. 나도 진짜 잘 자. 옛날에는 우리 고등학교 때만 해도 3시간 자고, 4시간 자면 남편이 달라진다고 했잖아. 고등학교 땐 밤새서 공부하는 게 정말 길인 줄 알았지. 근데 실제로 공부 잘하는 애들은 또 안 그래. 소아언니 봐. 열 두시 되면 무조건 딱 자고. 공부를 잘 하는 애들은 집중력이 높고 그냥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거야. 맞아. 공부를 더 많이해서 잘 하는게 아니고. 근데 그걸 왜 지금 깨달았지? (둘다 푸하하하)
그 전까지만 해도 잠을 맨날 잘 못 잤으니까 못 자는 게 너무 당연했는데 요즘엔 진짜 8시간, 9시간 자는 것 같아. 그리고 잠을 자면서 되게 삶의 행복도가 높아져. 너무 편하고 좋더라. 이러다가 너무 자서 몸이 진무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그 정도야? 보통 12시, 1시에 자면 아침 9시에 일어나니까.. 진짜 상상도 못했던 일이지. 어떻게 그 시간에 일어나. 근데 학교가는 날 빼고는 뭐.. 이제 엄마도 아시는거야. 내가 이걸 하기 전에도 한 번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나중에 직장 생기면 어떻게 출근할지도 모르는데 우리집에서 한 시간 걸리면 있는 송도가 있어. 학교가 거기 있거든? 근데 송도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오픈 일을 했어. 7시에 오픈 해야되거든? 그럼 6시 반까지 가야 돼. 아침에 맨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갔으니까.. 그 때가 22살, 23살 그랬단말야. 그랬던 애가 또 특훈을 한다고 하니까 엄마는 얘가 그렇게 해도 하긴 하겠구나 하신거지. 지금은 그냥 지가 할 거 있으면 알아서 일어나고, 자야할 때가 있으면 자고. 엄마가 깨웠는데 내가 안 일어나면 그 날은 그냥 뭐가 없구나, 안 깨워도 일어나 있으면 오늘 뭐가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거지 이제는. 할 거 있으면 하고 너무 빡빡하게 살진 않고, 근데 한계는 좀 정해놓아야 할 것 같아.
나태해지면 안되니까. 막 나태해지면 우리는 스스로 용서 못해. 아니, 나는 너무 화가나. 난 나한테 막 쓰레기라고 해. (듣고 빵터짐)
아, 오늘 진짜 왜 이러니. 쓰레기... X쓰레기 막 이러면서.. 막 어떤 애는 '언니가 쓰레기면 전 나가 죽어야되나요' 이러는데.. 진짜 쓰레기야.
아 웃겨..ㅋㅋ 근데 그런 건 특훈하면서 더 심해진 것 같아. 맞아.. 그렇지. 특훈. 어떻게 그 1년을 보냈나 몰라. 지금 하는 애들 보면 너무 신기해. 나는 그 때 어떻게 했나 싶어. 다시 1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어? 지금 이 상태로 1년 더 하라고 하면 못 해. 군대 1년 갔다 온 거랑 똑같아.
근데 내 기억을 리셋시켜주고 다시 하라면 할 거야. 무조건 할 거야. 왜냐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근데 다 알면서 하지는 못 해.
소아언니는 할 수 있다고 했던 것 같아. 언닌 하겠지. 정말 독한 사람이야. 언닌 할 거야.
근데 진짜 소리드림 사람들 다 그렇게 얘기할 걸. 해야만 하는거야.
(쉬어가는 수다타임♥)
질문을 해야되는데...... 인터뷰 진짜 좋다.
하다보니까 진짜 좋은 매개체라는 걸 알았어. 인터뷰하면 오늘 딱 하루정도는 너가 스스로 뱉은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잖아.
그치. 그래서 그 사람한테도, 나한테도 좋은 것 같더라고.
많이 생각하게 되고.. 그냥 걸어다니는 도서관 그런 거 있잖아. 교회 수련회가면.
그런 걸 계속 듣는 느낌. 막상 얘기하면 '아,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그런 거..
난 나랑 정말 다른 성향의 애들하고 친하다? 너도 영은언니랑 완전 다르잖아.
넌 어때? 너랑 친한 애들 보면 어때? 영은언니과야? 아니. 언닌 나랑 독보적으로 다르잖아. 너무 다르니까 잘 맞는 것 같아.
언니는 나를 되게 포용해줘. 그래서 잘 지내는 것 같고. 친구들 보면 되게 솔직한 애들이 많아. 근데 내 솔직함하고 다른 솔직함같애.
나는 좀 공격적이거나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하는 반면에 친구들은 그러진 않고, 진솔한 친구들이 많아.
요즘에 약간 의문이 들어. 왜 나는 이런 친구들(쎄보이고 솔직하고.ㅋㅋㅋ)이랑 오래가는거지?
박윤혜도 약간 그렇고. 나는 가다 말았지. 중간 정도.
20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궁금한 거 있어?
궁금한 거? 그럼 해결점이 나와? 음..... 그럼 궁금해할래.
조언도 좋아. 내가 20대인데 내가 누구한테 조언을 하지. 나보다 어린 애들한테? 너무 다 똑같은 말인데.... 그 때 그 시기를 생각하면 너가 뭘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렇다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절대로 나쁜 게 아니야. 친구들이랑 같이 술 마시고, 미팅도 하고, 시험기간 되면 시험공부하고, 알바하면 알바하고.. 그렇게 1년이 금방 지나가버리잖아. 근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중에 돌아보면 1학년 때 뭐했어? 그러면 "어.. 한 게 없는데?" 다들 그렇게 얘기한단 말야. 그렇게 사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근데 1학년 때 뭐했냐고 물어봤을 때 "아, 저 진짜 미친 듯이 신나게 놀았어요."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당당해.
근데 그것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삶 말고, 진짜 하나에 미쳤으면 좋겠어. 나는 매일 미친듯이 바빴으니까. 물어보면 그냥 바빴다고 말했지.
그래도 몇 년도에 뭘 했는지 안 단 말야. 어디 늘 소속되어 있었고, 그때그때마다 사건이 있었으니까. 그런 걸 말하는거야.
만약에 내가 '1학년 때 뭐했어요?'라고 물어봤으면 어딜 갔었는데 이런식으로 에피소드란 게 있을 수 있잖아. 근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저냥 흔들리는대로 살면 아깝잖아. 나도 그렇게 살았었지 정말. 근데 내가 지나고 보니까 그런거지, 내가 20대 중반에 딱 있는 입장에서 그 때를 바라봤을 때 그렇게 바라보면 후회가 되지 않을거란 생각이 드는거야. 그게 후회하지 않는 삶이고. 내가 얘기할 때도 당당하고.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다고 했잖아. 걔네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나, 어떻게 살아갔음 좋겠다, 하는 게 있어?
너를 진짜 많이 사랑해줬음 좋겠어. 너를 진짜 진심으로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가장 큰 말인 것 같아. 나는 그 때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었거든?
알았었어. 나를 사랑해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어. 근데 그 방법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 내가 찾는거야.
근데 그 방법을 말만 그렇게 하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살아가면 그건 아닌듯... 그게 답인 느낌도 들어.
난 이런 생각 가끔해. 내가 진짜 고등학교 때부터라도, 물론 그 때 나는 충분히 나를 사랑했지만 제대로 나를 바라봐주고, 외적인거나 내적인거나 바라봐주면 지금 되게 많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거야. 외적으로도 그 때 자신이 너무 없었고, 무조건 공부만 살길이라고 생각을 했었고.
남들과 똑같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들이 어차피 필요할 수 밖에 없는거야. 근데 그 와중에도 할 건 하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거야. 그렇지 않고 그 시간을 그냥 보내버리거나 다른 것에 더 치중하게 되면 아무것도 붙잡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 다음 너한테 질문할 게 뭐게~ 사실 난 너가 미국갔던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 공유해주고 싶었어.
아~ 20살이 끝나고 21살에 미국에 갔는데. 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고, 기자가 된다면 적어도 뉴욕타임즈에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부터 최종목표를 뉴욕타임즈로 정했어. 뉴욕을 가야겠단 결심이 들었는데 맨날 뉴욕간다고 얘기했는데 뉴욕이 어딘지도 모르는거야. 그게 호주에 있는지, 캐나다에 있는지, 영국에 있는지도. 근데 미국에 있다는거야. 그래서 안되겠다,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1학년동안 학부생활을 하면서 확실한 결심이 들었어. 저널리즘을 선택하는 건 후자일이고, 한 번 경험해보자하는 생각이 들어서. 내 진로가 확실히 정해지기 전에 뉴욕에 가서 어떤 진로를 정하든 한 번 시간을 줘보자하는 생각이 들어서 일 년이 끝나고 엄마한테 가겠다고 말씀드리고 준비를 하려는데 엄마가 그냥 바로 가라고해서 9월이 아닌 6월에 가게 되었고. 그래서 1년을 있으면서 많은 걸.. 그 땐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사소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많은 걸 경험하고 보게되었던 거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지금 가면 물론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있을 수 있겠지만 그 때 나이 때론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최대로 많이 경험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갔더니 19살이었고, 미성년자란 신분으로 미국에서 1년을 보낸다는 것은..뭐랄까.
또 학생 노동자였으니까. 불법 체류자였나요? 불법 체류잔 아니었어. 불법 노동자였지. 그럼 제가 지금 신고해도 되나요?
아, 신고해!! 신고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방당해야되는데 어차피 지금 벌써 들어왔으니까.
학원도 일 주일에 한 번씩 빠지고, 잠도 자보고, 내가 사고싶었던 물건들을 사보면서 그런 맛도 좀 알게 된 것 같아. 돈을 정말 아껴썼지만 내가 사고싶은 것은 샀거든. 카메라, 노트북 이런 큼직한 것들은 돈을 모아서 사게 되면서. 오롯이 너가 번 돈으로 샀어? 말했잖아. 엄마아빠한테 돈 보내지말라고 하고 간 거라 돈을 받을 구실이 전혀 없었어. 근데 가자마자.. 이 얘긴 내가 진짜 잘 안 하는데 2주동안 삼촌네 집에서 있었어. 삼촌네 나랑 동갑인 사촌동생이 있는데 그 친구는 얼굴은 동양인인데 영어가 편한 친구. 근데 한국어는 겁나 잘하는. 그런 애들 앞에서 영어 못해 원래. 왜냐면 내가 한국식으로 하는 거 다 알거든. 아무튼 그건 둘째 치고. 그렇게 2주 쯤 뒤였던 것 같아.
알바를 구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갔는데 막상 구하기 너무 힘들고 막막한거야.
그러고 있던 어느 날, 내가 앉아서 혼자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삼촌이 낮잠을 주무시면서 전화를 받으시는거야.
우리 엄마였었어. 삼촌은 내가 있는 걸 모르셨던 것 같아. 일하시다가 뭐 윤혜 어떠냐고 물어보셨나봐. 근데 이러시는거야.
아니, 뭐 애가 적극성도 없고, 활발하지도 않고, 그냥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얘길 하시는거야. 근데 취중진담이라고 잠을 막 깨신 다음에 하시는 말인데 그게 진담이잖아. 그 말을 듣고 난 되게 충격을 받았어. 진짜. 내 인생에! 박윤혜 인생에! 이런 말을 들어? 진짜 말이 안되는거야.
그 순간 바로 뭐 케이 코리아, 이상한 뉴욕에 있는 한인타운에 들어가는 사이트 다 뒤져서 막 알바를 구하기 시작했어.
맨하탄가서 10번의 면접을 보고 다 떨어지고는 우리집 근처에 있는데를 갔는데.. 근처에 있다고해도 걸어서 30분이야.
버스타고 한 3정거장 가야하는 거리야. 근데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안 돼.", 두 번째 냈을 땐 "시간이 안 맞아서 안 돼.", 그리고 세 번째 냈어.
그렇게 기적적으로 한 달만에 구한거야. 그 알바를 하면서 여행자금까지 모으면서 아끼고 아껴서 돈을 썼지. 생활비, 버스비 나누고.. 버스비가 한 달에 십 몇 만원이었어. 티켓 딱 하나. 지하철권도 아니야. 버스 티켓 한 개. 13만원? 14만원? 이랬어. 136불이었으니까. 그거 빼고, 진짜 이 주에 한 번 장보는 것 딱 빼고. 돈을 현금으로 모으기 시작한거야. 은행도 못 믿겠는거야. 그렇게 돈이 모여지면 노트북을 나한테 선물했고, 좀 지나고 나서 여행을 가야하는데 사진기가 없으니까 사진기도 샀고. 거기가 기기가 훨씬 싸, 여기보다. 이런 건 뭐 개인적인 거니까. 막 눈도 퍼내기도 하고..
눈이 막 허벅지 위까지 차는거야. 문도 안 열려. 온 세상이 하얘. 그렇게 주인집 아줌마랑 같이 눈 퍼내고, 아줌마랑 같이 삼겹살 막 먹고.
그런 기억도 있고.. 또 사람을 되게 많이 만났는데.. 난 내 인생에 처음으로 멘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났었어. 근데 그 언니가 해준 말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 너무 좋은 말을 많이 해줬거든. 그 언닌 스물 아홉이었고, 지금은 서른이 훨씬 넘었겠지만. 좀 되게 새로웠었어.
언니 얘기를 들으면서 자극을 되게 많이 받았고.. 실제로 당당한 유학생만 있는 건 아니야. 진짜 한국에 돌아가서는 아무것도 없는, 그래서 거기서 뭔가 해내야하는. 하지만 너무 해야할 게 많고, 그 해야할 게 되게 큰거야. 그렇게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나는 그 때 솔직히 스무살이었고, 아직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여물지 않은 스무살이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공감을 하면 내가 얼마나 했겠어. 아무튼 그랬어.
사람들 만나고. 느끼고.
아! 이런 사건이 있었어. 1년을 채우고 와야하는데, 나는 무조건 적어도 1년이었어.
그런데 한 번은 6개월 만에 돌아가야하는 상황이 생긴거야. 난 보험을 안 들고갔었어. 미쳤었지. 보험비마저 너무 비쌌으니까 그냥 안 들고 갔어.
그랬는데 가던 비행기 안에서 14시간 장비행을 하고나서 뭐 쓰는 게 3가지 있었는데 그걸 다 쓰고 가방에 넣는데 그 끝이 눈동자에 긁힌거야.
헐.. 어떡해.. 기분이 싸햇다? 내가 스무살 때 학교에서 알바를 하다가 화분을 옮기는데 난 끝에 왼쪽 눈을 찔렸었어. 근데 그 때랑 상황이 똑같은거야. 그 느낌이. 근데 그게 어떤거였냐면은 망막 위에가 찢어져가지고... 막 눈물이 계속나. 그리고 계속 부어. 막 빨개지고 눈을 못 떠.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어. 그 다음 날 병원갔더니만 무슨 렌즈 껴줬거든. 그게 만 원이었는데..
세관신고서 넣으면서 기분이 쎄한거야. 그래서 어떡하지, 뭔가 기분이 좀 이상한데? 그러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눈물 계속나고.. 막 빨개지고.
그래서? 병원에 결국 갔지. 나는 이게 뭔지 알겠는거야. 막 삼촌도 그렇고 괜찮을 줄 알고 안약사주고 뿌리고 그랬는데 내가 알지.
안약이 소용이 없다는 걸. 이건 병원에 가야한다는 걸. 근데 병원을 어떻게 가. 엄청 비싸잖아. 삼촌이 데려다주셨지.
갔는데 또 한국병원이었어. 그래서 더 비싼거야. 기본이 12만원이었는데 보험을 안 들어서 19만원부터 시작된거야.
삼촌이 막 그냥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그러고. 삼촌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정말 다행이었지. 그 때 진짜 도움 많이 받았어.
삼촌한테. 결코 나 혼자 했다고 말할 순 없어. 그래서 너무 감사하게 도움주셔서 했고.
아무튼 만 원인데.. 거기서 십구만원 막 이러고 하니까... 아오... 그런 거 겪으니까 또 무서운 게 없어지더라고.
근데 너 진짜 어릴 때 갔다. 그렇지. 되게 신기한 건 내가 베이커리에서 일했는데 손님이 막 엄청 많진 않아. 몰릴 때가 있고, 안 몰릴 때가 있거든. 손님 없을 땐 막 일하는 언니랑 같이 얘기를 하잖아. 난 늘 어렸어. 막 언니들 스물 둘, 스물 셋 이러고. 난 막 앉아서 뭔가 계속 쓰고 있었거든. 언니들이 뭐하녜. 근데 난 계속 종이에 몇 월 몇 월 하면서 계속 뭔가 쓰고 있는거야. 이 땐 뭘 하고, 이 땐 뭘 할거야. 막 꿈꾸고 그러고 있던거지. 언니들은 뭘 저렇게 맨날 쓴다고 신기해 하는거지. 그 중 한명은 아직도 한국에 와서 연락하고 있고.
근데 신앙의 힘은 진짜 무시를 못하겠는게 진자 미국은 총체적인 나의 삶의 전환점의 총집합이었던 것 같아. 하나님 없이는 진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하루 아침에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거고. 난 아니라고 했어도.
6개월만에 돌아가야되는 상황이 생겼는데 방이 없었어. 내가 더 이상 지내야할 곳이 없었어. 그래서 어떡해야하지? 고민을 엄청 많이 했는데... 일년을 있기로 했는데 와야하는거야. 고민을 엄청 많이 하다가 진짜 말도 안되게 기적적으로 그 같이 일하는 언니, 부산 언니가 자기네 집에 마침 딱 그 알바하는 가게 뒷 쪽 집이었어. 걸어서 5분걸리는. 말도 안 돼.. 진짜. 방이 하나 났대. 방 하나를 빌려주는데 300불이라는거야. 아. 350불.
말이 안되는 가격이야. 35만원이면.. 진짜 말도 안되는 가격이야. 엄청 싼거거든?
(밴쿠버 와보니까 저 가격이 얼마나 싼 건지 알겠음... 것도 미국 땅에서)
근데 거기에 있는 주인 아주머니가 오전에 1층에서 유치원을 하신대.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나오신 분이셔, 근데 전도사님이신거야. 그래서 되게 좋은 마음으로 하시는거야. 한국애들을 대상으로. 그래서 너무 좋잖아. 그 땐 듣는 척도 안했어. 왜냐면 난 아주 집에 갈거라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고.
되게 상처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냥 한국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그게 일 주일 내내 마음에 걸리는거야.
삼촌네 집 가면 막 계속 눈치 보고. 그러다보니까 언니가 했던 그 제안이 자꾸 들어오는거야. "야, 들어오라고"하던게.
그래서 일주일만에 용기를 내서 주인아줌마에게 연락을 드렸어. 근데 이러는거야. 누가 들어왔다고. 보증금까지 냈대. 그럼 거의 끝난거야.
리셋이거든. 보증금내면 그냥 들어가겠다고 한거야. 근데 너무 신기한게 내 마음에 자꾸 이 사람이 나갈 거 같은 느낌이 드는거야. 진짜 그랬어.
그 순간은. 같이 일하는 언니가 '어떡하냐...' 막 이러는데.. "언니, 나 이거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자꾸 그 사람이 나갈 것 같아"라고 말헀어.
근데 언니도 보증금까지 걸었으면 잘 안나간다 하더라고. 나도 아는데 왠지 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기도해보자고 그랬는데..
그 언니가 그 다음주에 나랑 같이 일할 때 떨면서 오더니 진짜 미쳤다고 하면서 그 사람 나갔다고 하는거야. 들어오기 하루 전 날 물렀대. 왜? 몰라.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대. 그래서 그 주인 아줌마가 너한테 연락해보라고 얘기 했다는거야. 나이스지.
너무 감사하지. 그게 당연히 얻어지는 거지만 기도해서 얻어지는거랑 그냥 얻어지는거랑 느낌이 진짜 다르잖아. 다르지. 그래서 가서 거기서 6개월, 7개월 더.. 그렇게 오기 전까지 살다가 삼촌이 들어와서 2주만 살아라 해서 삼촌집에 있고 들어왔어.
나는 진짜 혼자라고만 생각해서 진짜 삼촌 생각 못했는데 삼촌이 있으니까 내가 혼자하려고 하는 것에 제약이 있는거야. 보호자잖아. 그래서 따로 살 땐 나 혼자 알아서 다 하고, 막 여행가는 것도 진짜 캐리어들고 나 혼자 공항가겠다고 하는 걸 삼촌이 데려다주겠다고 하셔서 데려다주시고 또 집에 올 땐 혼자 오고 막 캐리어 질질 끌면서 오고. 아마 삼촌은 혀를 내두르셨을거야.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어.
그렇게 갔다오니까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겠더라. 그렇게 다녀오니까? 응. 진짜 뭣도 안 보여. 다 할 수 있겠어. 남자여자 할 것도 없고.
다 할 수 있겠는거야. 근데 또 그런건 아니더라고. 맞아. 어려운 건 또 그대로 어렵고. 근데 어린 나이에 갔다왔다는 게 참 메리트가 크고, 그리고나서의 내 삶도 바뀌었으니까 뭐랄까 얻은 게 훨씬 더 많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잘 다녀왔지. 나는 강추야. 무조건 갔다와야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도 조만간 또 갈 생각이고. 난 자꾸 미국이 가고싶더라. 애들이 꼭 유럽 가고 싶다고하는데 유럽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근데 내가 생각하는 건 그거야. JTBC에 들어가서 사회부에 있다가 국제부로 넘어가서 국제부 기자 일을 하고 싶어. 국제부기자는 진짜 하나의 선물이거든? 진짜 쉽지 않은 기회인데. 국제부 기자 일을 하면서 미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미국이 되게 자본주의 사회가 만연하고 자유롭다고 하잖아. 근데 엄청 보수적이야. 그리고 되게 많이 썩었어. 막 퀴어법도 생기고. 거기 상위 1% 지배층이 너무 많이 지배하고 있어서 재기능을 하지 못해. 근데 거기 밑에서 분명히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 그래서 가고싶어. 목표가 그래. 국제부 가려면, 그래. 조만간 갈 거 아니야. 조만간 기자 하겠지 뭐. 기자하다보면 국제부에 7-8년 안에 가겠지?
사회를 모르는 사람들(실은 나를 위한)에게 추천하는 책이나 이렇게 하면 좋아요~라는 게 있어?
너무 뻔해. 신문을 보거나 뉴스를 보는 건 진리인 것 같아. 되게 신기한 건 되게 어려운 것 같아도 매일매일 보다보면 그게 내 사건처럼 느껴지고 그러다보면 내 시야가 확장될 수 밖에 없게 돼. 내가 모르는 단어를 듣는거랑 알고듣는거랑 느낌이 너무 다르거든. 근데 한 번이라도 티비에서 뭘 봤다고 했으면 그게 자꾸 눈에 보인단 말야. 인터넷검색에 올라오면 보게되고. 그러다보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고.
추천하는 영화는.. 요즘 되게 많이 나오는데 정치, 사회적인 부분에사도 그렇고. 카트 알지? 카트? 그거 영화. 비정규직 어머님들 얘기 다룬 거 몰라? 몰라. 소수의견. 부러진 화살. 그건 많이 들어봤어. 부러진 화살은 유명했잖아. 진짜 모르네.
이번에 새로 시작한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있어. 송곳? 몰라. 관심이 없네.
미생은 알잖아, 그치. 그 다음으로 나온 게 송곳이야. 송곳이 진짜 너무 너무 괜찮은 웹툰인데 내가 듣고있는 수업 중 하나가 사회권쪽에 있어가지고, 중립적인 이야기를 들으려고 듣고 있기는 한데.. 현대사회와 노동문제를 듣고 있거든? 근데 그 교수님이 굉장히 유명하신 교수님이고 그러는데.. 뭐 관심을 가지려고하면 어떻게든 가지게 되어있으니까. 뉴스보고 신문보고 그런 게 힘들다 그러면 영화라도 보고 자꾸 내 의견을 써보는 게 되게 좋은 것 같아. 자기 의견을 갖고 있는 게. 네! 알겠습니다.
20대 안에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 하나를 말하자면?
진짜 진짜 엄청 절절한 사랑. 연애. 버킷리스트 1위. 이건 나 혼자 할 수 없는 것 1위. 상대가 나타나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냥 어설프게 영화보고 그런 거 말고, 진짜 서로서로 위해주고 내가 사랑받고있는 느낌이 드는 그런 연애를 하고 싶어. 어떻게 보면 나도 모솔이야. 너만 모솔은 아닌 것 같아.
그 말이 날 더 슬프게 해.(지못미) 솔로나 모솔이나 이런 얘기 엄청 듣는단 말야...(니무룩)
그래. 다르지.. 그래서 어떤 연애하고 싶은데? 절절한 연애. 20대만 할 수 있는 연애가 있다고 생각해? 그럼!!
어떤? 이제 와서 무슨 풋풋한 연애를 찾겠냐. 찾아야지... 마인드가 풋풋해야 풋풋하지. 지금 내 마인드가 풋풋하지 않잖아.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 연애를 하고싶어. 자상한 남자를 원하는거야? 어. 근데 나는 자상한 남자가 연애할 때 자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리고 되게 쿨하고 누가 봐도 딱딱해서 누가 저 사람 옆에 있을까 싶은 사람도 어떤 사람을 이성적으로 좋아하게 되면 정말 바뀌어. 난 그게 너무 신기해. 그럴 수 밖에 없잖아. 계속 보고싶고, 좋아하는데 그걸 표현하고 싶고. 사귀는 사이면 또 감출 게 뭐야. 그럼 그 사람에게 굉장히 잘 해주겠지?
어떻게 보면 박윤혜 너도 그렇잖아. 굉장히 논리적이잖아. 이럴 땐 여자같긴한데.. 왜 갑자기 부끄러워하냐(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래서 너같은 경우엔 바빠서 연애를 못한다고 생각해? 나는 바빠서 연애에 번번히 실패했어. 진짜야. 그래. 바쁜 사람들이 보통 그래. 아, 너무 짜증나.
난 바쁘지 않거든? 아, 근데 바빠. 막상 결정적으로 만나야할 때 못 만나. 그러니까 자꾸 실망이 되기 시작하고. 서로 실망이 쌓이고 안 보면 또 멀어지잖아. 그런 것도 좀 크고. 아무튼 난 그건 확신해. 사람이 좋으면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스타일이야. 되게 표현도 잘하고 좋아한다고도 얘기 많이 하는데 또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리고 또 내가 정말 좋아했는데도... 아, 그냥 타이밍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 내가 그 사람이 정말 좋고 다 할 수 있는,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만약에 안되거나 받아줄 준비가 안되면은 또 그건 안되는거니까. 그런거지. 그래서 나는 타이밍도. 처음에만 타이밍이 딱 맞으면은 관계유지하는데는 그렇게 나쁘지만 않을 것 같아. 주위에 너무 예쁘게 연애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우헤하핳 웃는듯 우는듯한 내 웃음소리) 보면서 그래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연애를 하고 싶다? 아... 지금인데. 지금 해야하는데..
내가 왜 너한테 인터뷰하자고 한 것 같아?
같은 기수 친구니까(명랑낭랑). 아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얘기 해야되? 어. 왜!!!!(버럭) 하지마 그러면...
아, 뭔데~ 빨리 얘기해봐. 그냥 너가 좋아서♥ 아오. 손영은언니같아. 그래. 그걸로 충분하네.
또 있는데. 그냥 털어낼 게 많을 것 같아서. 아, 탈탈 털 게 많을 거 같아서? 아..........더 털 수 있는데.....
그럼 더 털어놔 봐. 아, 평소에 그런 주제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
아, 이런 거 싫어. 왜 그렇게 정의하는 게 많아. 난 원래 그런 걸 좋아해. 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데? 난 답이 있어. 이건 너의 인터뷰야.(회피)
근데 너는 뭐냐고. 궁금해. 다른 사람은 어떤지 궁금해. 나? 나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잠시 말을 잃은 박윤혜)
요즘 드는 생각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잖아. 근데 사실 나는 내 안에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특훈도 그랬지만 특훈을 나와서도 느끼는데 요즘엔 어떤 언니랑 막 친해지는데 내 안에 부족한 사랑들을 그 언니를 보면서 막 느끼는거야. 나한테 지금 부족한 건 돈이야.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또 그 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부분에 있어서 아낌없이 베푸는 걸 더 보는거야.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야.
나 스스로도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왔고, 그치만 어떤 부분에선 내가 사랑이 아예 없는거야. 또 사랑을 줄 때 어떤 기준치가 있는거야. 딱 이 정도만 줄 수 있는 사람인거야. 근데 하나님은 그 이상을 주라고 해. 난 그럴만한 감이 안되는데.
근데 자꾸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보게 되는거야. 그래서 그냥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누가 뭘 달라고 해도 그걸 아낌없이 주고 내밀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게 참 힘들어. 깎여나가는 과정인 것 같고.
연애는 뭐든 사랑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사랑이 많은 사람이고 싶어. 어떤 결핍도 내 안에 있으니까. 그걸 잘 보듬고 또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결국엔 채우면서. '하나님, 나 이거 했어요!'이런 거 있잖아. 내가 사는 동안에 나 이 부분에 있어서 극복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걸 뛰어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요즘엔 그런 생각이 많았어. 워홀 준비하면서도 그렇고. 그런 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면 좀 행복할 것 같아. 그리고 진짜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나중에 막 인기가요같은 거 보면서 맞춰주면서 대화할 수 있는 할머니. 인턴이라는 영화 봤어?
보진 않았어. 앤 헤서웨이 나오는거야 아냐? 맞아. 오늘 아침에 조조로 보고왔어. 거기 나오는 할아버지같은 느낌? 나의 삶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빠질 수 없는거같아. 습관들도 그렇고. 전기장판도 그렇고. 이상해.
너는? 나는 늘 얘기했었어. 일기도 많이 썼던 것 같아. 고등학교 때 결심했어. 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그 멋지다는 말이..
참 사람 멋져보인다는 거 있잖아. 진실해질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은 얼굴이 잘 생기거나 예쁘거나 뭘 잘한다거나 하는 어른이 아니었거든? '아,, 진짜 저 사람 어른같다'라고 인정하게 되는 어른들이 분명 있었는데 그런 분들은 자기 책임감이 있고, 자기가 뭘 해야할지 알며 그런 사람들이었어. 나도 컸을 때 남에게 비춰졌을 때 그래보이는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 딱 정의해야되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아.
인터뷰도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같아. 왜? 인터뷰를 하는 사람도 능력이 있어야겠지만 인터뷰당하는 사람도 그래. 맞아. 인터뷰 하다보면 어떻게 해야되요? 생각할 시간 좀 줘요. 하면서 계속 생각하기도 하고. (blah blah 수다중)
맞다. 나는 나를 몰아갈 때 끝까지 몰아가. 막 넌 쓰레기야. 쳐박혀 있어. 혼자 잠이나 자. 그냥 자. 이러면서 그러고 잘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1년 후의 박윤혜에게
이건 좀 중요하다. 나한테 편지쓰면 돼?
윤혜야. 안녕. 넌 지금쯤 JTBC공채를 지원하고 입사설명회를 한 번 갔다왔을거고 장문시험을 봤을지도 몰라.
물론 이번엔 떨어졌지만, 다음엔 붙을거야. 1년이면 정말 딱 그 기간이네. 그냥 윤혜 너한테 하고싶은 말은...
너가 말한 반만큼만 하면 된다. 윤혜야. 제발 좀. 말만 이렇게 하지말고 반푼어치만큼 살았음 좋겠네. 제발 쓰레기처럼 살지 말고 너가 말했던 것처럼 현장에 가보겠단 약속 꼭 지켰으면 좋겠어. 누구보다도 1년을 치열하게 살았음 좋겠어. 근데 그 치열함이 다른 사람이랑 비교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너를 보고. 소리드림의 1년은 정말 엄청난 시간들이었는데 그 시간을 너가 어떻게 활용할지가 궁금하네. 우선 지금 당장 있는 중간고사나 잘 보고, 저널리즘스쿨도 한 번 가보고 괜찮다 싶으면 내년에 지원도 하면서 준비를 차근차근하면서 했음 좋겠어.
넌 지금 배스킨라빈스 알바를 하고 있어. 1년 뒤에는 안하겠지?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멋진 언론인이 되어가면 좋겠다. 그럼 안녕!
Thanks to 박윤혜♥ & Comment
윤혜는 소리드림을 통해 만난 친구이자 영은언니와 더불어 일상의 대화를 뛰어넘는 신앙적으로 깊은 대화로 나에게 늘 도전을 주는 친구였다.
출국 4일 전, 10월 10일. 박윤혜를 만났다. 인터뷰를 써내려가면서 정말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짧지만 급하게 만날 수 있었기에 나는 인터뷰를 타이핑하고, 엄청난 속도로 퍼붓는 박윤혜의 생생한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친구의 말하는 속도는... 마치 내가 영어리스닝이 아닌 한국어리스닝을 테스트하는 듯 착각을 일으키게하는 그 정도의 속도다. (오바야?)
실제 타이핑 중에 나는 잠시 윤혜의 목소리를 멈추고 내 속도와 윤혜의 속도의 차이를 느껴보려 멘트를 따라해보기도 했는데....
'그래. 이건 탤런트다. 너무나 효율적인 탤런트를 가진 박윤혜같으니라고!'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똑같은 1시간을 대화했다해도 더 많은 이야기를,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친구. 그만큼 생각이 잘 정리되어있고, 자기 주장을 할 줄 알며 똑소리나는 친구이다. 나와는 정말 다른 성격을 가졌고, 그래서일까.. 더 옆에서 많은 걸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이 친구를 만나서 나는 엄청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것 역시 하나님 계획 안에 있었겠지만, 정말 감사드린다.
인터뷰를 하던 중에도 내가 부족한 부분이 여실히 드러날 때가 많은데 그 때마다 콕콕 찝어주는 박윤혜란 여자는 정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조언들이나 말투같은 것들에 하나하나 신경을 썼을텐데, 지금은 이런 친구들이 말해주는 것들을 인정하며 받아드리게 된다.
글은 4일동안 조금씩 나눠서 타이핑을 했다. 말했듯이 속도가 빨라서 다시 듣고, 또 듣고 해야했다.
타이핑하면서 윤혜한테 얼른 연락해야지,하고 아직 업로드할거란 얘기도 안한 채로 안부를 물었는데 요즘은 정말 '취준생'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야기를 나눠봐야겠지만 해외에 나와있는 나에게 보여지는 대한민국의 취준생의 삶은 좀 힘들어 보인다.
저게 내 미래겠지,라고 한 3년 전부터 생각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미루고 미뤄둔 취업은 때론 미뤄둔 숙제가 다 되어버린 느낌.
나 역시 쓰는 내내 너무나 찔리는 게 많았고, 워홀러로 살면서 힘들었던 것들. 겪어내야했던 것들. 실수했던 것들. 그런 게 스쳐갔다.
그렇지만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 또 친구들, 우리나라 20대들에게 기대해보는 것 하나는 윤혜 인터뷰 내용대로 "준비하는 마음을 다르게 먹는 것" "마인드를 다르게 가지는 것"이다. 워홀생활도 마찬가지다. 자꾸 내가 여기 왜 왔나,란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내야한다. 그럼 분명히 어딘가 다르다. 하루를 살아갈때도 그렇듯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공유되어 보게 된 안젤리나졸리의 말처럼 남들에게 쓸모있는 인생을 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분명 남을 위해 남들이 원하는대로 살라,라는 말이 아니다. '쓰임받는 인생'을 뜻하는 거다.
나를 '쓸모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쓸모있는 인생'을 선택해가며 사는 것. 결코 그런 인생이 쉽다고 말할 순 없고 늘 순탄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런 삶을 살아냈을 때 비로소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시 인터뷰 얘기로 돌아와서, 이 글은 내 친동생들부터 읽게 하고 싶다. 청소년기의 나 역시 나를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였고, 너무나 소심해서 내게 주어진 선택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분명 사회적인 구조나 분위기도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침체되어있었다.
그런 이들을 끌어줄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우연히 TV예능에 나오는 연예인으로부터, 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강남의 한 열정 넘치는 스승님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로부터, 한 블로그의 글을 쓴 이로부터. 이렇게 늘 영향을 주고 받는 인간관계 안에서 우리를 노출시키고, 또 그것을 통해 한 발씩 나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모쪼록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는 무엇보다 친구의 꿈을 응원하고, 기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박윤혜찡!!!!!!!!!!!!!!!!!!!!!!(급 애교...) 잘하고 있다! 너 말대로 지금까지도 너무 잘 왔으니까 늘 하던대로 더 힘내서 힘내서 감당치 못할 능력, 마음, 쭉 성장해가는 멋진 어른이 되길 응원한다!!!!!!!!!!!!! <3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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