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중요하지.
힘들다. 힘드르들다. 상대적으로 나보다 더 힘들 사람들을 떠올리며 참아봐도 그건 역시 나의 편견에 갇힌 또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렇게 비교하다보면 나의 비교를 위해 그들이 존재하는 것 마냥 아주 내 자신의 교만은 하늘을 찌른다. 답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무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다. 게다가 오늘은 원망까지 했으니 더욱 죄송한 밤이다.
몸이 아프니까 마음이 아프다는 건 핑계일까. 핑계겠다. 핑계다. 몸이 아플지라도 마음은 건강할 수 있잖아. 음.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많이 흔들리는 나지만 중심은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그런 바램을 갖고 한 해를 시작했는데 나의 기준이 이리저리 흔들릴 것만 같을 때 나의 의지는 너무나 약함을 나의 평안은 너무나 나약함을 처절히 느낀다.
몸이 아프기 때문에 그것을 더 깊게 느끼고 아파할 수 있다. 아프니까 더 짜증났고, 원망했다. 왜 이렇게 약하냐고. 사랑하면 애초에 이렇게 약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됐지 않았냐고. 내 길을 보여주시면 조금이라도 덜 시간낭비할텐데 왜 자꾸 이도저도 아니게 하시냐고. 그렇게 실컷 따졌다. 아픈 주제에 온 정신을 모아 원망했다. 그런데 조용했다. 조용하셨다.
나도 조용해질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고, 죄송했기 때문에. 내가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바란다. 그런데 결혼하고 애를 낳아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듯이 어쩌면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그 분의 섭리를 내가 이해하려고 한 것이 교만이 아니던가. 날 좀 더 바라봐주시고, 좀 더 지켜주시고, 좀 더 이끌어주셨으면 좋겠는데.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앞으로도 용서하실 그 분에게 내가 너무 뻔뻔하게 굴었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내 뜻대로 흘러가던 인생이던가. 아니다. 아니였다. 아닐 것이다. 난 한 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일 뿐. 미친 듯이 아파하다 어느 순간 원망을 몇 초간 멈췄다. '교만' 그렇게 스쳐간 단어였다.
엄마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아프지만 강하게 살아가야한다고 그렇게 외치던 우리 엄마가 늦게까지 돌아다닌다고 뭐라고 했을 때 난 다시 한 번 아이러니를 느꼈다. 분명 난 놀러 나간게 아닌데. 왜 몰라줄까. 타당한 외출이였고, 어쩌면 하나님은 칭찬할 수 있는 외출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잔소리를 들었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하나를 고민했을 때 다시 '교만'을 떠올린다.
적어도, 나에게 엄마는 물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물같은 존재.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순간에도 나를 품고 있던 엄마. 그리고 태어난 후에도 날 감싸안아주시는 엄마.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찬물을 퍼붓는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를 향해 원망의 눈으로 나는 그대로 찬물을 맞는다. 그 때 따뜻한 물이 나온다. 어라. 왜 따뜻하지? 아,좋다. 행복하다. 감사하다.
엄마에게도, 하나님께도 교만한 나의 모습은 한결같았던 것이다. 다 안다고 피식 웃을지라도 뒷통수를 팍 맞은 듯 기분이 나쁘다. 근데 그게 잉어즙처럼 기력을 회복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주고 약주고. 정말 이러기에요?
내 질문에 그저 씩 웃으신다. 그러니까 너가 내 자식이지. 내 딸이지.
난 또 울상이다. 근데 마음 한 켠엔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든다.
미안해서, 감사해서.
그렇게 나의 기준은 다시금 하나로 맞춰진다. :D